언젠가 유투브로 TED talk 등을 보는 데에 빠져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 우연히 송길영 박사가 하는 '세바시' 강연을 연달아 두 개 정도 봤던 것 같다. 컴퓨터공학이라면 공학 중에서도 좀 '다른' 공학이지만, 일단은 우리 분야와 마찬가지로 '공학'이라는 말이 들어가니 대략 동종업계인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학계에서 산업계로의 변신(?)을 아주 잘 해낸 케이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도 썼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책을 사서 봐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달 말, 여행 갈 일이 있어서 그 전에 책을 몇권 샀다. 비행기 안에서나 공항 안에서 읽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기(!) 때문이다.
머릿말에서 첫번째 예시부터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1970년대~2000년대 미국의 범죄율 그래프가 나온다. 90년대를 기점으로 범죄율이 뚝 떨어지는데 (사실 y축 제목이 없어서 정확히 어떤 것을 그린 건지는 알수 없다. 인구 n명당 범죄 발생 건수였을까?) 각종 추측이 난무하지만 (예를 들면 노령인구 증가라든가 실업율 감소라든가.) 그 진짜 이유는 20여년 전 합법화된 낙태 시술이었다.
내가 하는 일도 인과를 밝히는 것이다. 무엇이 인풋이고 무엇이 아웃풋인지를 알고 싶다. 일반적인 데이터마이닝은 상관관계 (correlation)를 볼 뿐, 인과관계 (causality)를 볼 수는 없다. A와 B가 연관 있다는 것은 데이터로는 알 수 있지만, A 때문에 B가 일어났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책에 수록된 예시 하나하나가 인상깊고, 데이터사이언스를 매개로 해서 내가 알던 세계 밖의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워서 즐거운 독서였다.
그럼에도 아웃도어 마케팅하는 사람들은 통기성과 발수성을 말해야 한다. 그게 그 옷이 비싼 이유이고, 기꺼이 지갑을 여는 구실이 되어주므로.
이것이 마케팅이다. 마케팅은 숨겨진 욕망을 끝까지 뽑아내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것을 에둘러 표현해야 한다. 대놓고 이야기하면 품격이 떨어져서 그것을 사는 사람들까지 없어 보이게 만든다. 기업은 그들이 떳떳하게 살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마케팅이 무엇인가 하면, 이미 있는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부분 없는 것을 억지로 상상해서 만들려다가 실패하는데, 이미 있는 것을 건드려주면 실패하기 어렵다. 특히 현재 사람들이 암암리에 실천도 다 하고 있는데 차마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던 금기를 깨주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 20대 청춘들의 머릿속은 온통 사랑과 연애로 가득하고 열심히 실행에 옮기는데, 그런 이들에게 순결을 강요하면 죄책감을 느낀다. 그런데 '괜찮아, 다 해~'하며 유쾌하게 풀어내니 20대들이 기뻐하며 앞 다퉈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아닌가.
그 외에 몇 가지 생각이 드는 구절들이 있었다.
월경을 할 때는 여자로 살다가 월경이 끝나면 다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온다는 주옥같은 뜻 아니겠는가.
이것은 갱년기 여성들과 그들의 발화에서 보는 스스로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것과 마케팅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갱년기'라는 한자말을 풀어서 설명하다가 나온 문장이다. '갱년' 자체가 '다시 갱'에 '해 년' 으로 이루어진 단어이고, 또 이 단어의 뜻 자체를 저자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니 뜻에 대해서는 저자를 탓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이 것을 말하는 그의 자세이다. 나는 가임기 여성이기 때문에 매달 월경을 치른다. 그러나 나는 월경을 시작하기 전 나 자신과 비교해서 현재의 내가 '나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다. 아무래도 이 책은 다양한 계층/성별의 사람들이 읽을 것이기 때문에 나도 저자가 나름대로 경솔한 발언을 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 대목을 읽으면서는 이 사람에게는 집단으로서의 여성은 어쩌면 고객이라 느끼지 않는것 같다고 느꼈다. 상황이야 어쨌든 간에, 본인이 여성이 아니면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온다' 는 의미를 가지고 '주옥같은 뜻'이라고 첨언하는 것은 경솔했던 것 같다. 적당히 '남성 중심적인 세계관에서 이름붙여진 단어' 라는 식으로 조금 더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외국의 기업들과 비교할 때 한국 기업들의 특징 중 하나는 R&D 기반이 강하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들면 시장에서 알아서 팔리던 시절이기에 그런지, 마케팅보다는 제품개발에 무게 중심이 실리는 듯 하다.
여기서 언급하는 '외국'이 어떤 나라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문맥상 '미국'을 들여다 놓아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이 문장을 읽으며, 이래서 미국에 공학전공 대학원생들 중 미국인 비율이 상당히 낮은 편인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상대방을 위해 'No'라고 말할 때 신뢰가 쌓이고 롱런할 수 있다. 고객의 사정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나의 매출도 오르는 것이지, 고객의 주머니를 털어 나만 돈 벌 수는 없다. 기업에 두 번 당하는 고객은 없다.
이것은 비단 고객과 기업 사이에서만 옳은 말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도 옳은 말이다.
당신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의 표정을 본 적 있는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못 읽는 사람도, 자기 아이 얼굴에서 언뜻 스치는 미묘한 표정 변화는 귀신같이 포착한다.
애정이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물건을 팔고 싶으면 그것을 살 사람들에게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
나는 그래서 애정이 있는 사람이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기 일에 대한 애정과 내 결과물을 향유할 사람들에 대한 애정 모두가 필요하다. 강연을 할 때 나는 청중들에게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다면 빨리 그만두라고 말한다.
최근 계속 느끼는데 '어떤 대상에 대한 애정'은 정말로 중요하다. 가족, 연인, 친구 사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일을 할 때나 동료와 교류할 때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