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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지구를 살리는 옷장
박진영.신하나 지음 / 창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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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산업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조리있게 설명하며, 어떤 행동들이 환경에 영향을 덜 끼칠 수 있는지도 알려준다. 마지막에는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본인들의 고민과 실천도 나누어준다.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잘 읽히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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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설명을 읽고 본인들의 브랜드를 만드는 이야기를 나누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의류 산업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춘 책이었다. 저개발국가의 의류공장 노동자처우 문제, 의류 쓰레기 문제, 가죽, 모피 및 양모를 둘러싼 논란 등에 대해서 하나 하나 다룬다. 어디서 한번쯤 들어봤던 이야기지만, 이렇게 정리되어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특정 주제의 책을 골라 읽는 이유는 단편적이고 산발적으로 알고있던 (혹은 알고있다고 생각했던) 지식들을 하나의 주제로 잘 엮어서 정리하고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 역할을 잘 해준다.


* * * 


패션산업은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환경 문제와 윤리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는 중에는 동물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나는 모피나 특수가죽 (뱀, 악어 등등)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섬뜩하고 잔인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어느정도 알고있었지만, 소가죽이나 양가죽, 양모, 캐시미어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우리가 소고기와 양고기 등을 먹으니 부산물로 나오는 것이 가죽인 줄로 알았고, 양이나 염소의 털은 계속 자라나니 덜 잔인한 동물 소재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가죽을 축산업의 '부산물' 이라고만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심장 같은 장기를 비롯해 발굽, 지방, 뼈, 혈액 등 고기가 아닌 다른 것들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수소로 얻을 수 있는 전체 수익의 1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며, 그 중 절반을 가죽이 차지한다. 축산업계가 가죽으로 상당한 이익을 얻는 만큼 가죽은 축산업의 부산물이 아니라 육류와 함께 축산업에 포함된 또 하나의 제품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여기에 가죽을 과연 육식 산업의 부산물이라고 봐야 할지 고민에 빠져들게 하는 예가 있다. 호주에서는 우유를 생산하지 못해 낙농업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수송아지들은 흠 없는 송이지 가죽을 얻기 위해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전문 사육 시설 안에서만 특별히 키운다 .... 아이러니하게도 수년간 목초지에서 바람을 맞으며 비교적 건강하게 살다 도축된 소의 피부는 여러 흠집으로 인해 가죽 상품으로서는 가치가 떨어진다. 동물 복지가 가죽에는 최악인 셈이다.

- '가죽은 육식 산업의 부산물일까' 중에서.


양모를 최대한 많이 얻기 위해서 피부가 쭈글쭈글해지도록 양 품종을 개량한다거나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양을 함부로 다룬다든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염소 털에서 얻는 캐시미어를 많이 얻기 위해서 몽골에서는 들판이 먹여살릴 수 있는 염소의 숫자보다 더 많은 숫자를 방목한다. 그 결과로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황사도 매년 더 심해진다. 인류는 더 풍족하게 살기위해 동물을 비롯한 자연과 지구를 착취하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그 외에 다양한 문제들이 대두되는데, 마구잡이로 소비하고 마구잡이로 버리는 문제, 자원낭비, 의류 제작에 수반되는 다양한 환경오염문제, 노동권문제, 인권 문제 등이다.


SPA 브랜드들로 대변되는 패스트 패션의 물결이 시작된 지 벌써 이십여년이 지났다. 빠르게 바뀌는 유행과 함께 주 단위로 쏟아져 나오는 싼 값의 옷들은 팔리기도 많이 팔렸지만 버려지기도 많이 버려졌다. 물론 빡빡한 납기일에 싼값으로 단가를 맞추기 위해서 의류공장에 만연한 노동문제나 환경오염 문제도 있다.


단순히 패스트 패션의 문제만도 아니다. 몇 년 전 버버리를 포함한 명품 브랜드들이 재고를 버리거나 할인해서 판매하는 대신 소각해버렸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것은 럭셔리 브랜드의 브랜드가치 유지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자원낭비라고 뭇매를 맞았다.


최근 다양한 브랜드들이 환경문제와 동물권문제 해결에 동참하겠다고 나섰다. 모피를 쓰지 않는 브랜드들이 점점 많아지고, 가죽도 비건가죽을 주로 다루는 브랜드들이 점점 더 생긴다. 많은 사람들이 '그린워싱'이라고 의심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들이 똑똑한 소비를 하면 시장은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 * *


마지막 두 꼭지가 인상깊었다. <이 세상에 제품 하나 더하는 것에 대해> 와 <소비가 실천이 되려면>.


<이 세상에 제품 하나 더하는 것에 대해> 에서는 저자들이 동물성 원료를 최소화하고 한 번 사면 두고두고 입을 수 있는, 질좋은 의류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는 실천을 서술한다.


이 세상에는 더이상 생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많은 물건이 있다. 옷장은 입지 않는 옷들로, 집 안은 쓰지 않는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쇼핑몰에 있는 수많은 물건 중 판매되지 못하고 폐기되는 것도 아주 많을 것이다.

...

요즘같은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의 시대에 실천이란 '무언가를 하는 행동' 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는 적극적인 행위'에 더 가깝다.

...

이렇게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행동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해를 덜 끼치려는 '노력'을 하는 것에 가깝다.

...

브랜드를 만들면서부터 빨리 쓰레기가 될 제품은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의 다짐이고 원칙이었다.

- '이 세상에 제품 하나 더하는 것에 대해' 중에서


다른 꼭지에 비해 길지 않은 꼭지였지만, 저자들이 고민했던 지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인상깊었다. 그리고 저자들의 행보를 응원한다. 저자들이 <소비가 실천이 되려면>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완벽한 해법도, 100퍼센터 완벽한 실천이란 것도 없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하며 스스로가 옳다고 믿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대부분의 사회운동들이 그랬다시피, 환경운동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지구를 살리는 옷장』

 박진영, 신하나 지음

 창비

 20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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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재활용' 이라는 것은 연금술과 비슷하게 들린다. 쓰레기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만드는 것과 돌이나 쇠붙이를 금으로 만드는 것. 


사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가난한 나라들로 쓰레기를 수출하는 것. 돈을 주면서 쓰레기를 넘겨버리면 '알아서' 처리하는 것. 


미국에서도 관련 다큐멘터리와 신문기사 등이 나와서 떠들썩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재활용' 했다고, '폐기'했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쓰레기는 다 다른 나라에 떠넘겨진 것인지. 


내 눈으로 보지 못한 과정이 어디선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을 믿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말을 믿은 대중이 잘못한 걸까, 거짓말을 한 정치인들이나 산업체들이 잘못한 걸까? 잘잘못을 가리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쓰레기 수출을 막고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한마디로 덜 소비하고, 다시 쓰고, 덜 버리는 것이다. 





『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

 미카엘라 르 뫼르 지음

 구영옥 옮김 

 풀빛

 20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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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 를 읽고 쓰레기 문제와 재활용 문제에 관심이 많아졌다. 그래서 온라인 서점에 가서 '쓰레기'로 검색을 했더니 <쓰레기 거절하기> 를 비롯한 여러가지 책들이 나왔다. 


많은 기업들이 사은품 증정을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한다. 나는 이전부터 무료증정 상품이라도 나에게 필요없으면 거절했고, 물건을 살 때도 많이 고민한 후에 집에 들이곤 했다. 그런데도 집에는 쓰지 않는 것들이 많고 쓰레기도 매 주 꼬박꼬박 한 봉다리씩 나온다. 


쓰레기로 눈을 돌려보자.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사러 매주 마트에 간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봉투 (종이봉투든 비닐봉투든)를 장당 10센트에 팔기 때문에 집에서 가능한 다회용 장바구니나 이전에 어쩔 수 없이 샀던 종이봉투를 챙겨간다. 그런데도 장을 보고 집에 와서 풀어놓다보면 포장재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 아마도 유통에 편리해서, 청결해보이니까, 상품에 상처나지 말라고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다. 묶음 포장을 위해서 낱개포장을 하고 묶음포장까지 한 것을 풀고 있노라면 과잉포장이 아닌가 살짝 화가 나기도 한다. 


<쓰레기 거절하기> 에는 이런 플라스틱 포장을 최대한 피하며 쓰레기를 줄이려고 하는 가족 이야기가 나온다. 책은 총 세부분으로 나뉘어 "질문"을 던지고, "실험"을 하며, 결국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총 세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저자가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쓰레기를 거절할 것'을 결심하고, 가족들과 토론을 통해서 방식을 정하고, 사는 지역에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까지 모든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을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어떻게 자녀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다같이 결정에 참여하고 실천하는 지를 살펴보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교육과정과 개인적 경험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나이가 어릴 수록 환경 문제에 더 민감하고 환경을 살피려는 노력을 많이 하려고 하는 것 같다. 꼭 환경문제가 아니더라도, 아이들도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사고를 하고 행동하므로 대화를 해서 같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는 자세는 부모로써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꼭 가족단위의 실행과정이 아니더라도, 개인의 차원에서도 "문제인식"이 자연적으로 "행동의 변화"로 변화하지 않는다.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을 결심을 하고, 해결책을 찾고, 행동으로 옮기는 등 일련의 과정은 제법 길고 어려울 수 있다. 그럴 때, 비슷한 일을 한 다른 사람의 예를 알게 된다면 조금 덜 외롭고, 의지가 된다. 


두번째는 개인/가족의 차원에서 지역공동체의 차원까지 변화를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저자의 가족은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데, 가족들 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교류하는 이웃들, 마을 사람들 등도 함께 변화에 동참하고, 나중에는 녹색당에 들어가 정치활동을 하며 지역공동체를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모습까지 나오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작은 지역공동체에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 같았다. 


세번째로는 번역이 좋았다. 번역을 하신 박종대님은 경험이 아주 많은 번역자이신 것 같은데, 적절한 외래어 사용, 국어 단어의 적절한 선택, 국어문장의 흐름 등이 정말 좋았다. 


****


미국에서는 '분해가능한 플라스틱'을 만들거나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기술'에 투자한다. 이것은 무지하게 미국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인구도 너무 많이 늘어났고, 현대사회의 '경제'는 어떤것이든 점점 규모가 커지지 않으면 안되는 방식으로 발전해온 것 같다. 그러나 모두가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소유하기를 원하는 사회를 지속한다면 인류는 생존할 수 없을 것 같다. 자원도, 공간도, 자연의 재생력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무분별하게 소비하고 폐기하고 소유하는 일련의 과정을 깨부수어야할 때가 온 것 같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가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지나며 양적으로 팽창하는 시기를 거쳐왔다면, 이제부터는 양적인 팽창보다는 주변을 살피는 동시에 질적인 팽창을 해야할 것이다. 





『쓰레기 거절하기』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지음

 박종대 옮김 

 양철북

 2020.08. 

개인적인 영역에서 소비를 줄이려는 사람은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몇 겹으로 포장된 상품, 싸다는 이유로 사는 쓸데없는 물건들, 차고 넘치는 비닐봉지, 플라스틱 병, 플라스틱 용기, 질 나쁜 싸구려 장난감, 이 모든 것들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용도로 만들어지거나, 금방 망가지거나, 아니면 다시 고쳐 쓸 수 없도록 만들어져서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자연 곳곳에 쌓인다.

이런 문제들로 관심이 확장되면서 나는 단점이 없는 물질은 없고, 결국 문제는 우리가 모든 물건을 너무 많이 소비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과잉 소비는 결코 포장 용기나 포장 물질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상품과 에너지, 심지어 서비스까지 모든 형태의 소비에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아직 세계적으로 완전하게 합의한 것은 아니지만, 만일 현재의 기후 위기와 점점 증가하는 환경 파괴, 생활공간의 파괴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해결책은 어쨌든 우리가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어떤 특정한 물질을 기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물질과 에너지를 아끼고 지혜롭게 쓰는 데 있다.

미국의 환경 운동과 제로 웨이스트 운동은 오래 전부터 3 R을 신조로 내세웠다. Reduce, Reuse, Recycle. 덜 쓰고 다시 쓰고 재활용하자는 것이다. 나 혼자의 생각은 아니지만, 여기다 한 가지 더 보탤 것이 있다. 어쩌면 이 세 가지에 앞서 실천해야할 것인데, 바로 Refuse (거부)가 그것이다. ‘과잉‘을 거부하자는 말이다.

중요한 일을 해결할 때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끈질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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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2023-01-31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이북으로 읽을 때 주석 숫자를 누르면 미주로 붙어있는 내용이 팝업창에 떠서 너무 편안하고 좋았다. 좋은 이북 만드는 사람들은 보물같다. :)
 


나도 20대를 실험실에서 불태웠다. 어쩌다보니 남들보다 오래 다니기도 했다. 처음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별 것 아닌 이유였으나 어쨌든 시작한 이상 열심히 해서 졸업해야했다.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의 막막함이 생생히 기억난다. 논문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실험을 하긴 하는데 어떻게 나아가야할 지 막막했다. 이런 막막한 느낌때문에 대학원 다니는 동안에는 다들 좀 축 처져있다. 친구들이라도 많으면 저녁때 가끔씩 모여서 치맥이라도 하면 좀 낫다 싶지만 그것도 (각자 스케줄이 달라 만나기 어려워질 때가 많아서) 대학원생들에게는 가끔 사치로 느껴진다. 


이런 막막한 대학원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대학원을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크게 공감할 이야기이다. 저자는 초반에 본인이 '타대생'이라고 정의하고 '자대생'들은 대단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나오는데, 연구를 막 시작한 대학원생의 이야기 중 <절망편>은 사실 '자대생'도 '타대생'도 겪는다. 사실상 모든 사람들에게 맞춤형으로 절망이 찾아온다고 해야 맞을까. 혹시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타대생'이 이 글을 본다면, 본인이 '타대생'이라서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



대학원에서 하는 실험은 학부시절 실험수업에서 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어쨌든 학부수업에서 배운 것들을 기본으로 그 때 배웠던 기법들을 물질 검출이나 분석에 써야하기 때문에 본인의 기술에 자신이 있어야 하고, 물질 합성을 하는 연구를 한다면 학부수업때 했던 합성실험과는 다르게 실패확률이 90%가 넘을 것이다. 이공계 실험 기반의 연구를 한다는 것은, 사실 이런 측면에서는 가학적인 일이다. 남들이 한번도 안해본 일을 하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높고, 그 성공확률을 높이는 작업을 계속 하다가, 성공확률이 상당히 높아지면 논문을 쓰고나서 또다시 실패확률이 높은 일로 돌아간다. 이런 사이클을 여러 번 하다보면 졸업이 다가온다. 


이게 말로 적으면 실제보다 괜찮아보이는 게 문제다. 실제로 매일같이 실패를 마주하다보면 견디기 (정신적으로) 쉽지 않다. 아주 자연스럽게 자책하게 되고 스스로 땅을 파게 된다. 이래서 친구가 필요하고, 연구실 사람들끼리 잘 지내면 좋다. 여가생활도 적당히 잘 해가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주어야 한다. 



끝도 없는 실수와 실패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언제 끝나 효자시장에 맥주나 한잔하러 가자" 하는 말 한마디가 어찌나 고맙던지요. 그 하나로 산더미 같았던 설거지도 단박에 해치울 수 있었습니다. 

- 에필로그 중에서



우리끼리 우스개소리로, 박사를 받는다는 것은 뭔가의 기술을 잘 안다거나, 어떤 것을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어서 받는게 아니고, 어떤 상황에서라도 문제를 찾아서 어떻게든 (욕을 하면서라도) 해결해낸다는 증명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실제로 그렇다. 박사들은 뭘 많이 알고있기도 하지만 그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오래된 것이 되기 마련이라 늘 새로 충전해주어야한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해낸다'는 것은 어쩌면 지식이나 기술 이외의 태도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할 것. 해보면서 다음 할 것을 찾을 것. 시작하지 못해 망설이지 말 것." 

-'될 지 안 될지는 해봐야 알지' 중에서.  



****



어쨌든 대학원 고군분투기도 책으로 나온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글쓴이가 글도 재미있게 잘 썼고. 


대학원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 대학원에 막 들어가서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특히 좋을 것 같다. '나만 고생하는 게 아니야' 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 비록 실제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할지라도, 정서적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 나같이 이미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들도 읽으면 공감대 형성 엄청 잘 된다. 나도 이럴 때가 있었지. 그리고 현실에 직면한 어려움을 이길 힘을 받기도 하고. 


한가지 아주 조금 아쉬웠던 점은, 첫 논문 쓸 때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한국인 학생들이) 환장할 것 같은 경험을 하곤 하는데, 그부분이 거의 묘사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미 너무 매운맛이었어서 그 부분은 빼버린 것일까. ㅎㅎ 







『그렇다면 실험실 죽순이가 될 수밖에』

 도영실 지음

 미래북

 20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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