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의 엄지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0
미치오 슈스케 지음, 유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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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출판사에서 공개한 내용 이외의 주요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이 소설의 작가 미치오 슈스케는 '호러 서스펜스 대상 특별상'을 시작으로 '본격 미스터리 대상, 오야부 하루히코 상, 야마모토 슈고로 상, 나오키 상' 등 여러 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독자들의 관심도도 높은 작가 중에 한 명입니다. 이 소설로는 2009년 제 62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미치오 슈스케라는 작가라고 하면 반전이 일품인 특징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일종의 서술트릭과 같은 스타일을 중시하는 면이 있지요. 그래서 즐겁게 출간을 기다리는 작가 중에 한명입니다. 그렇지만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부분에서 약간은 불완전하달까 어딘가 매끄럽지 않은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많았는데요. '달과 게' 이전에는 그런 측면 덕분에 아쉬운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본 작품들로는 '술래의 발소리'를 가장 인상깊게 봤고 여러 작가의 단편 모음집 <<도박눈>>에서의 '여름의 빛'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감상을 가진 제가 읽은 이 '까마귀의 엄지'란 소설은 '미치오 슈스케'스러운 반전과 완성도를 동시에 지닌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른이 주인공이 되어 작품을 다룰 때 무언가 늘어진달까 너무 전형적으로 매끄러운 작품이 되는 그의 특징을 잘 보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술래의 발소리'에선 그런 부분을 공포로 잘 대치했다고 보기 때문에 가장 인상깊은 작품으로 꼽습니다.)

전체적인 느낌으로는 '외눈박이 원숭이'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읽는 내내 이사카 코타로적인 소설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 '외눈박이 원숭이'를 떠올리니 미치오 슈스케적인 소설과 거리가 먼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네요. 

주인공은 사기꾼입니다. 화자가 '다케자와'로 '데쓰'와 함께 동업하여 사기를 치는 장면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 둘의 조합이 참 재미있는데 다케자와는 점잖고 신중하며 상당히 배테랑의 사기꾼같은 느낌이 드는 반면, 데쓰는 어리면서도 철없는 것 같지만 종종 의외로 두뇌파 같다는 일면이 보이는 인물입니다. 데쓰는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는데 영어단어에 대응하는 일본어의 동음이의어 덕분에 읽는 종종 긴장을 늦추지 않게 됩니다.

사실 다케자와는 사채업자들에게 피해를 당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쪽 일에 종사하다가 결국 도망치게 된 인물이고 데쓰 역시 비슷한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둘의 만남도 흥미로운데 약간의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긴 합니다. 그리고 사기꾼들이 사기를 치는 이야기지만 전반적으로 홈드라마같은 느낌이 강렬한데 그 이유가 아무래도 이들은 피해자였고 복수를 꿈꾼다는 이야기로 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가 만난 소매치기 소녀와 그녀의 언니 커플도 이 상황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괴롭혔던 사채업자들을 상대로 크게 사기칠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미치오 슈스케 답지 않은 훈훈한 결말로 간다 싶더니 역시나 그 답게 결론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결말이 없었다고 해도 - 미치오 슈스케 팬들은 실망했겠지만 - 그대로 이 소설은 충분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케와 데쓰의 대화들이 참 즐거웠거든요.

뭔가 불안하고 걱정했던 복선들도 역시 미치오 슈스케 식의 처리를 한 것 같구요. (개인적으로 그다지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미치오 슈스케 스럽달까요.) 결말 역시 그렇습니다. 항상 다른 소재로, 다른 반전으로 글을 쓰는 작가이긴 하지만 몇 작품들 속에서 우울한 결말 덕분에 우울한 기분에 빠져들 때도 있었지요. 그에 비하면 이런 결말이 훨씬 낫지 않나 싶습니다.

'까마귀'와 '엄지'에 대한 데쓰의 이야기는 정말 가슴 뭉클하게 한 면도 있구요. '이번에도 미치오 슈스케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구나'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외눈박이 원숭이'도 그랬지만 외톨이인 한 인물, 한 인물들이 모여 어딘가 '유사가족'을 만드는 유대성 같은게 느껴지고 여러 작품 속에서도 혈연이나 핏줄 같은 것들을 그 어느 작가보다도 더 많이 사용하지 않나 싶습니다.

'달과 게'로 좀 더 아이들의 관점에서 유려한 문체로 성장한 것 같은 미치오 슈스케. 이번에는 좀 더 치밀하고 꼼꼼한 설정으로 어른들의 이야기를 잘 그려냈습니다. 사기꾼의 이야기를 그렸지만 그들을 옹호하지 않고 사채업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인물의 당위성을 내세우지 않는 부분들도 주목할만 하구요. 그렇지만 소설과 달리 그 어두운 뒷골목 인생은 사실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겠지요. 

다케의 그런 양심을 잃지 않는 부분과 - 양심이라기엔 너무 많은 일을 해버렸겠지만요. - 한 인물의 그 대단한 계획과 상상력은 - 혹은 바람(바램)은 - 이 작품을 꽤 중요한 작가의 저작으로 기억하게 될 것만 같습니다. 

 


책 정보

Karasu no Oyayubi by Suosuke Michio (2008)
문학동네 블랙펜 클럽
까마귀의 엄지
지은이 미치오 슈스케
초판 인쇄 2011년 7월 25일
초판 발행 2011년 8월 1일
옮긴이 유은정
펴낸곳 (주)문학동네
디자인 윤종윤 유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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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는 자 2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시공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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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본 서평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편 서평 http://lanpaper.blog.me/100133733929

작가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범죄학과 행동과학의 전문가라고 합니다. 연쇄살인범에 대한 논문을 쓰던 와중 이 소설의 소재가 될만한 부분을 발견하고 집필한 첫 번째 장편소설입니다. 본 소설로 유럽 문학계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프레미오 반카렐라 상 등 자국에서만 4개의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전편에서는 다섯 명의 소녀의 실종과 여섯 개의 왼쪽 팔이 발견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여섯 번째 아이의 팔에서는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수사진들은 마음이 다급해집니다. 아동납치 전문수사관 밀라가 낯선 이 수사진에 합류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뤘습니다. 그러나 제목에서 알 수 있는 '속삭이는 자'가 대체 누구인지 전혀 힌트가 없었기 때문에 2편에 대한 궁금증은 상당히 커질 수 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1편의 마지막 부분이 '드디어 범인의 등장이구나!' 라는 작은 힌트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상하기로는 2편의 400 페이지가 넘는 분량 속에서는 바로 그 '속삭이는 자'가 등장해서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나 막상 펼쳐본 이 2편의 이야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역자는 가장 기억에 남는 반전이랄 수 있는 영화 <식스센스> 이후의 반전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마지막 결말 뿐만 아니라 2편에서는 정말 색다른 이야기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자면 이 소설의 결말이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면 2편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새로운 이야기가 자칫 조잡해 보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럴 정도로 여러 범인들이 등장하고 악한 행동과 DNA를 남겨둔 자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

마지막까지 읽은 후라야 결말의 세련된 맺음 덕분에 이 이야기 속의 색다른 부분들이 더 빛이 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2편에서는 정말 상상치도 못했던 지뢰들이 많이 놓여져 있습니다. 범인들도 그렇긴 하지만 여러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예상할 수 있었던 부분과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마구 뒤섞여서 한시도 편히 읽지 못하게 만들어줍니다.

'대체 '속삭이는 자'는 언제 나오는 것인가, 내가 혹시 지나친 범인 중에 등장했던 것인가'라는 고민과 인내심의 한계가 달하는 지점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다 읽고 나면 단순한 범인 찾기를 넘어서 더 무서운 인물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범인 자체가 그 이전에 나왔던 범인들을 모두 보잘 것 없는 캐릭터로 전락시키는 정말 상상 이상의 인물이었습니다.

충동적이나 우발적인 범죄자들이 아닌, 두뇌를 겸비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같은 계획적이고 비뚫어진 인물들의 범인상을 뛰어넘는 더 잔혹한 인물이 존재한다면 정말 수사가 닿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물이 인내심까지 겸비했을 때에는 언제 다시 범죄가 시작될지도 예상할 수 없구요.

책 뒷편에 보면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작가에 대해 놀란다고 하는데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소설을 읽는 와중에는 그렇게까지 대단한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역시 결말이 주는 충격은 그 어떤 형태의 추리 소설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차기작을 구상하고 있다는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책 정보


IL SUGGERITORE by Donato Carrisi (2009)
속삭이는 자 2
지은이 도나토 카리시
발행처 (주)시공사
2011년 3월 28일 초판 1쇄 인쇄
2011년 4월 8일 초판 1쇄 발행
옮긴이 이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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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조명애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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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평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제목을 접하고는 이 소설은 굉장히 코믹하거나 혹은 블랙코미디 쯤 되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해봤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장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저자와 저 사이의 '거짓말'에 대한 인식의 크나큰 차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제가 받아들인 '거짓말'이란 'A를 A가 아닌 B라는 형태로 속이는 행위'로 인식했거든요. 그래서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그런 거짓말을 통해 쫓고 쫓기는 관계에 놓이지 않을까라고 추측했었지요.

그러나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거짓말'은 그런 형태가 아니라 '진실의 반대' 행위를 뜻합니다. (혹은 감춰진 진실이나 보여지는 것과 다른 진실이라거나) 이렇게 볼 때 제가 생각했던 '거짓말'과는 다르지만 좀 더 포괄적인 의미의 '진실이 아닌 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여기에서 추측해볼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조금 철학적인 꺼리를 독자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물론 '철학'이란 단어 때문에 무작정 덮어버릴, 읽으면서 머리아픈 소설은 아니구요.

저자는 아르헨티나 사람으로 여러 나라에서 살다가 지금은 프랑스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이 소설 속에서 필자는 역시 프랑스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30년 전에 사망한 한 작가의 일대기를 쓰고자 합니다. 그 작가는 아르헨티나인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사망했습니다. 기대를 받았던 처녀작을 발표한 전도유망한 아르헨티나 작가가 사망한 사건을 통해 그에 대해 알아보고자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는데 이 소설이 바로 그 작가 '알레한드로 베빌라쿠아'의 지인인 네 명의 인터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지인 '알베르토 망구엘'은 차분한 사람으로 동향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베빌라쿠아와 친해졌다고 합니다. 그는 항상 망구엘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30년전의 이야기를 이토록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세세한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베빌라쿠아의 선대부터 시작해서 살아왔던 삶들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이 인터뷰에서 등장합니다. 망구엘의 이야기 속에서 베빌라쿠아는 한없이 여리고 선하지만 소설을 쓸 재주는 없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두 번째 지인은 베빌라쿠아가 죽기 전 함께 살았던 여인 '안드레아'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이 부분을 읽기 시작하면서 독자는 망구엘의 이야기가 진실이 아니라는 점에 흥미로운 시각을 지니게 됩니다. 그는 물론 자신이 듣고 보았던 베빌라쿠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많은 부분 '자신의 시각'일 뿐이었다는 것이 안드레아의 이야기 속에서 드러납니다. 안드레아가 알았던 베빌라쿠아는 허구를 술술 말하며 - 망구엘의 진술과는 달리 - 여색도 밝히는 남자였습니다. 

망구엘과 안드레아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존재를 서술하는 것만 같아서 대체 이 베빌라쿠아라는 인물의 실체는 무엇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망구엘에게 베빌라쿠아가 가련한 아르헨티나인으로 사실만을 말하는 성실한 남자였다면 안드레아에게 베빌라쿠아는 멋있고 예술가적 기질이 넘치지만 그것을 숨기고 살아가는 천재였습니다. 

의문을 품고 세 번째 지인인 '돼지'로 넘어갑니다. 앞선 두 명의 이야기가 개인의 관점을 추구하는 시각에서 본 인터뷰였다면 이번에는 좀 더 '진실'에 다가서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망구엘과 안드레아가 감정적으로 혹은 거리상 가까운 지인이었다는 측면 덕분일 것이고 이 '돼지', 마르셀리노 올리바레스는 전혀 다른 감정을 가진 지인이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는 쿠바인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베빌라쿠아를 만났는지를 기술합니다.

우리는 이 쿠바인의 이야기 속에서 진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 단순히 이 소설은 '알레한드로 베빌라쿠아'의 일대기를 위한 소설이 아니라 그의 소설인 <<거짓말 예찬>>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닐까란 생각에 미치며 이 소설은 어쩌면 추리소설의 형태도 취하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이야기의 더 뚜렷한 진실을 보여줄 한 인물의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티토 고로스티사'입니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는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실 그야말로 베빌라쿠아의 인생에 어떤 전환점들을 주었던 인물이라고 알게 됩니다. 아쉬운 것은 그의 글은 인터뷰가 아니라는 점 정도이지않나 싶습니다.

이 소설 속 필자인 기자 장 뤽 테라디요스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각을 덧붙입니다. 각 인물들의 인종과 고향, 선대를 밝혔듯 그 또한 그런 수순을 거칩니다. 그는 '알레한드로 베빌라쿠아'의 일대기를 쓰고자 했지만 하나의 글로 그를 단정짓는 행위를 하지 못해서 이런 글을 적었다고 합니다.

사실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는 자신조차도 진실을 쓰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의도하던 그렇지 않던지 간에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모습과 관점을 보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인물에 대한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과연 그 진실은 존재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답변이겠지요. 

아르헨티나인으로 태어나 스페인에서 머물다가 프랑스에서 살았던 망구엘과 스페인인이면서 남미문학에 심취했고 아르헨티나인 남자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그의 천재성을 믿고 있는 안드레아, 쿠바인으로 고통 가운데 살았지만 결국 스위스에서 살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사랑하나만 택한 마르셀리노 올리바레스.

그리고 아르헨티나인으로 누구보다 예술적인 기질을 타고났지만 아버지의 영향으로 국가를 위해 일하고 결국 자신의 사적인 복수심을 위해 국가의 권력을 잘못 이용한 티토, 마지막으로 이런 이들의 삶을 들으며 책으로 펴내고자 했던 장 뤽 테라디요스는 스페인 핏줄이지만 프랑스로 망명한 조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인물들은 모두 조국에서 행복하지 못했고 정착할 수 없었던 시대적 배경과 함께 살아가는 인물들입니다. 각자가 바라보았던 베빌라쿠아의 모습도 달랐고 믿고 있는 부분도 전혀 다르지만 그들이 바라보았던 베빌라쿠아의 진실이나 <<거짓말 예찬>>에 대한 진실은 그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은 누구도 진실 가운데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태어난 곳이 고향이고 그곳에서 줄곧 살아온 선조들이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대를 이어갈 그런 진실이 그들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령 그러고 있는 안드레아조차도 타국의 문학에 흠뻑 빠저 자신이 소유한 진실을 외면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그들에게 어떤 것도 중요한 진실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닐까요. 그것이 결국 인생은 아닐까요.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 소설이었습니다. '지적이고 매혹적인 소설'이라는 수식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습니다.

 



책 정보 

Todos los hombres son mentirosos by Alberto Manguel (2008)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
지은이 알베르토 망구엘 
펴낸곳 세종서적(주) 
초판 1쇄 발행 2011년 8월 10일
옮긴이 조명애
디자인 박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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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가출
노나미 아사 지음, 박승애 옮김 / 뮤진트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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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평

이 책은 총 열두 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단편집입니다. 자극적인 제목을 하고 있지만 중년의 여성들이 집을 떠나는 여행을 통해 겪은 일을 그리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겹치는 장소없이 일본의 열두 지역을 소개하는 목적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여행서나 설명서가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설명을 덧붙이는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표제작인 '엄마의 가출'을 비롯해서 각각의 단편들은 겹치는 이야기 없이 다양한 소재로 접근하기 때문에 각각의 이야기에 도입할 때마다 색다르고 그렇게 길지 않은 단편들로 이루어져있어서 읽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짧아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 특징도 있지요.

만약 이 소설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없이 단순히 제목만을 보고 골라야했다면 절대 잡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불륜이라던가 자기 성찰류의 좀 무거운 소설이 아닐까란 추측을 하기 쉬웠을 것 같거든요. 물론 그런 이야기들도 있고 쉽고 가벼운 소재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읽은 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긴 하지만요.

저는 저자 '노나미 아사'의 다른 소설을 통해 그녀의 필력을 알게되어서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가 되었습니다. 역시 차분하고 정교하게 써내려가는 솜씨는 이 책에서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와 비슷한 연배의 주인공들을 설정했기 때문인지 굉장히 설득력있는 감정 표현들이기도 했습니다.

아키타, 구마모토, 홋카이도, 오사카, 니가타, 야마나시, 오카야마, 후쿠시마, 야마구치, 후쿠이, 미에, 고치라는 지역들이 배경이 되어 각각의 이야기들이 진행됩니다. 월간 <<미세스>>에 일 년간 연재되었던 단편들이라고 합니다. 이 소설 속 지역의 분포도를 보면 작정하고 지정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균일한 거리들입니다.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그리기 위해 시어머니의 고향으로 발길을 옮긴 며느리, 남편의 독설로 괴로워 고향에 왔다가 친구를 만나게됐는데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독설로 상처를 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 남편과 바람피는 여자의 집을 찾아가는 이야기, 바람피는 사람과 함께 여행을 간 이야기, 예전에 아이를 잃었던 한 엄마가 우연히 아이와 비슷한 나이의 청년을 만나는 이야기, 

가출한 엄마를 찾아 낯선 마을로 가는 딸의 이야기, 도자기 장인에게 미쳐 수많은 도자기를 구입한 아줌마의 이야기, 남편의 사업실패로 언니에게 도움을 청하러 간 동생의 이야기, 남편의 외도를 옛 남자친구에게 하소연을 하며 이메일 친구를 하다가 만나러 가게 된 이야기, 가출을 한 수험생 아들을 찾으러 낯선 곳에 간 엄마의 이야기, 어린 나이에 결혼해 시어머니에게 구박받고 남편도 도와주지 않아 쫓겨난 한 여자가 딸을 만나러 온 이야기, 엄마의 묘지를 옮기러 고향에 돌아왔다가 친구를 만나는 이야기.

이렇게 열두 명의 아줌마가 각각 다른 열두 장소로,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들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단순히 사실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중년의 아줌마로 살아가는 것, 남편이나 자식과의 관계,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리게는 30대, 많게는 50대 정도까지의 연령대의 이야기들이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라도 그 나이를 경험해야하고 혹은 그 나이대인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하는 인생이기에 나를 위해서도, 혹은 함께 살아가는 상대방을 위해서도 여러 생각이 드는 그런 소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책 정보

Yukitsu Modoritsu by Nonami Asa (2000) 
엄마의 가출 
지은이 노나미 아사
펴낸곳 (주)뮤진트리
첫판 1쇄 펴낸날 2008년 12월 22일 
옮긴이 박승애
디자인 Studio Bemine 

* 오타 : p. 80 "우리 큰딸 남자친구 녀석이 집에 놀러왔와서 예기해주더군."
* 역자의 글 아래 앞의 단편의 제목이 계속 써 있네요.



   p. 233

   "다시 돌아오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가끔 뒤를 돌아보는 것은 필요해. 자신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또 인생에 있어서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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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비틀 Mariabeetle - 킬러들의 광시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이 소설은 이사카 코타로의 전작 '그래스호퍼'의 후속편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로 읽어도 전혀 내용 이해에는 문제가 없지만 -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이 항상 그렇듯이 - 순서를 지키거나 반대로 읽어도 몇 인물들을 공유하기 때문에 재미있습니다. 

전작이 그랬듯이 이번 이야기 역시 '킬러들'이 주인공입니다. 킬러이긴 하지만 넓게 보자면 '심부름꾼'정도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간업자를 거쳐서 누군가의 의뢰를 통해 물건을 운반하거나 사람을 처리해주는 일을 맡은 킬러들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인간관계는 킬러와 중간업자가 주로 나오는 편입니다.

'그래스호퍼'에서는 결국 이야기가 모아지긴 하지만 외로운 개인의 모습에서 조망되었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아무래도 장소가 '신칸센' 내부로 한정되기 때문에 조금 더 가까운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래스호퍼'가 상당히 암울하달까 우울한 분위기가 자욱하게 깔린 기분이 드는 소설이었다면 같은 암울한 킬러들의 이야기이지만 상당히 경쾌한 감이 있습니다. 등장 캐릭터들 덕분이겠지요.

살인청부업자를 한때 했지만 알콜중독에 걸려 지금은 그냥 아저씨인 기무라는 '왕자'의 협박을 통해 다시 총을 잡습니다. '왕자'는 성 덕분에 붙은 별명인데 아주 부잣집의 성실해보이는 모습을 한 중학생입니다. 그러나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입니다. 잔혹한 모습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데 운을 타고난듯 늘 자신의 마음대로 사람들을 조종하게 됩니다.

한편 이들과 별개로 '밀감'과 '레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살인청부업자 파트너가 등장합니다. 미네기시의 아들을 구하고 몸값이 든 트렁크도 함께 구해와야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문학을 많이 읽고 박식하며 차분한 '밀감'과 아이같이 즉흥적이고 상식도 없고 지식도 없지만 '꼬마 기관차 토마스'에 대해선 완벽 암기를 하고 있어서 사람이든 상황이든 토마스의 기관차들을 인용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업무를 맡아 신칸센에 타게 되는 나나오는 정말 불운을 타고난 인물입니다. 별것 아닌 일을 수행하면서 남들은 일생에 한번 당해볼까말까한 어마어마한 사건에 휘말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불운의 인물. 소위 무당벌레라고 불리웁니다. 이런 불운의 사나이가 어떻게 이런 일을 계속 해나가는건지 알 수 없었지만 결국 그 이유가 있더라구요.

이 신칸센의 이름은 '하야테'호로 도쿄에서 모리오카까지 운행하는 기차입니다. 작가의 실제 거주지가 센다이 지역이라 몇 작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이 센다이가 배경이 많습니다. '그래스호퍼'가 예외적으로 도쿄가 배경이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잠시 센다이를 지나서 그것도 흥미거리였습니다.

배경은 일단 이렇구요. '마리아비틀'은 무당벌레의 영어인 '레이디비틀'에서 성모마리아를 가리키는 '레이디'에 '마리아'를 넣어 만든 단어라고 합니다. 이 킬러들이 탑승한 위험한 '하야테'호 안에서 정말 상상도 못한 일들이 마구 벌어집니다. 

이사카 코타로 소설을 읽으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의 소설에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도 뒷이야기의 복선으로 사용되어 성실히 읽는 독자들에게 소소한 기쁨을 안겨주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그래서 별것 아닌 대화처럼 보인 이야기도 나중에 반드시 재등장하곤 합니다.

밀감과 레몬은 미네기시의 아들을 구출해 신칸센에 탑승하지만 난데없이 아들이 죽어있습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트렁크가 사라집니다. 한편, 나나오는 옮기고자했던 트렁크를 잘 찾아내지만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왕자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충 그들이 누구인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를 채게 됩니다.

대체 미네기시의 아들을 죽인 자는 누구인지, 이들의 트렁크는 어디로 간건지, 왕자가 죽이려는 자는 누구인지, 기무라의 아들은 무사할 수 있을지 이 복잡한 상황들은 후반부로 갈 수록 더 복잡해져서 죽음과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과 전혀 상상치 못했던 결말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읽는 사람들은 글의 중간쯤에 느꼈던 '이 소설의 실제 주인공은 이 사람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맞았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스호퍼'에서 등장했던 인물들과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 나왔던 인물들의 등장을 찾아내신다면 더욱 큰 재미를 느낄 수 있구요. 왕자의 의문에 대한 대화들을 통해 작가는 정말 이 소설을 쓴 이유를 여기에 뒀던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 파더'를 통해 이사카 코타로가 늘 비슷한 작품만 써왔던 것 같아서 새로운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그 이후 소설들이 바로 '골든슬럼버', '그래스호퍼'와 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전반기의 그의 작품들과는 확실히 많이 달라는 느낌이 듭니다. 

'러시라이프'에서 살짝 보여줬던 '킬러'에 대한 생각과 암울함은 '그래스호퍼'에서 좀 더 세분화된 기분이 들고, '그래스호퍼'의 느낌을 좀 더 이사카 코타로적인 유머로 풀어낸 것이 바로 이 '마리아비틀'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딘가 '명랑한 갱~'의 인물들이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자신의 전작의 인물들을 재등장시키는 기법은 마치 지속적으로 자신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을 잊지 않는 기분이 들어 발견할 때마다 항상 즐겁습니다. 다음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도 기대될 것 같습니다.

 

 


책 정보

MARIABEETLE by Kotara Isaka (2010) 
마리아비틀 
지은이 이사카 고타로 
펴낸곳 (주)북이십일 21세기북스 
1판 1쇄 발행 2011년 6월 28일 
1판 2쇄 발행 2011년 7월 13일 
옮긴이 이영미
디자인 공중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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