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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작가 미치오 슈스케는 '호러 서스펜스 대상 특별상'을 시작으로 '본격 미스터리 대상, 오야부 하루히코 상, 야마모토 슈고로 상, 나오키 상' 등 여러 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독자들의 관심도도 높은 작가 중에 한 명입니다. 이 소설로는 2009년 제 62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미치오 슈스케라는 작가라고 하면 반전이 일품인 특징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일종의 서술트릭과 같은 스타일을 중시하는 면이 있지요. 그래서 즐겁게 출간을 기다리는 작가 중에 한명입니다. 그렇지만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부분에서 약간은 불완전하달까 어딘가 매끄럽지 않은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많았는데요. '달과 게' 이전에는 그런 측면 덕분에 아쉬운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본 작품들로는 '술래의 발소리'를 가장 인상깊게 봤고 여러 작가의 단편 모음집 <<도박눈>>에서의 '여름의 빛'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감상을 가진 제가 읽은 이 '까마귀의 엄지'란 소설은 '미치오 슈스케'스러운 반전과 완성도를 동시에 지닌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른이 주인공이 되어 작품을 다룰 때 무언가 늘어진달까 너무 전형적으로 매끄러운 작품이 되는 그의 특징을 잘 보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술래의 발소리'에선 그런 부분을 공포로 잘 대치했다고 보기 때문에 가장 인상깊은 작품으로 꼽습니다.)
전체적인 느낌으로는 '외눈박이 원숭이'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읽는 내내 이사카 코타로적인 소설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 '외눈박이 원숭이'를 떠올리니 미치오 슈스케적인 소설과 거리가 먼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네요.
주인공은 사기꾼입니다. 화자가 '다케자와'로 '데쓰'와 함께 동업하여 사기를 치는 장면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 둘의 조합이 참 재미있는데 다케자와는 점잖고 신중하며 상당히 배테랑의 사기꾼같은 느낌이 드는 반면, 데쓰는 어리면서도 철없는 것 같지만 종종 의외로 두뇌파 같다는 일면이 보이는 인물입니다. 데쓰는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는데 영어단어에 대응하는 일본어의 동음이의어 덕분에 읽는 종종 긴장을 늦추지 않게 됩니다.
사실 다케자와는 사채업자들에게 피해를 당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쪽 일에 종사하다가 결국 도망치게 된 인물이고 데쓰 역시 비슷한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둘의 만남도 흥미로운데 약간의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긴 합니다. 그리고 사기꾼들이 사기를 치는 이야기지만 전반적으로 홈드라마같은 느낌이 강렬한데 그 이유가 아무래도 이들은 피해자였고 복수를 꿈꾼다는 이야기로 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가 만난 소매치기 소녀와 그녀의 언니 커플도 이 상황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괴롭혔던 사채업자들을 상대로 크게 사기칠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미치오 슈스케 답지 않은 훈훈한 결말로 간다 싶더니 역시나 그 답게 결론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결말이 없었다고 해도 - 미치오 슈스케 팬들은 실망했겠지만 - 그대로 이 소설은 충분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케와 데쓰의 대화들이 참 즐거웠거든요.
뭔가 불안하고 걱정했던 복선들도 역시 미치오 슈스케 식의 처리를 한 것 같구요. (개인적으로 그다지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미치오 슈스케 스럽달까요.) 결말 역시 그렇습니다. 항상 다른 소재로, 다른 반전으로 글을 쓰는 작가이긴 하지만 몇 작품들 속에서 우울한 결말 덕분에 우울한 기분에 빠져들 때도 있었지요. 그에 비하면 이런 결말이 훨씬 낫지 않나 싶습니다.
'까마귀'와 '엄지'에 대한 데쓰의 이야기는 정말 가슴 뭉클하게 한 면도 있구요. '이번에도 미치오 슈스케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구나'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외눈박이 원숭이'도 그랬지만 외톨이인 한 인물, 한 인물들이 모여 어딘가 '유사가족'을 만드는 유대성 같은게 느껴지고 여러 작품 속에서도 혈연이나 핏줄 같은 것들을 그 어느 작가보다도 더 많이 사용하지 않나 싶습니다.
'달과 게'로 좀 더 아이들의 관점에서 유려한 문체로 성장한 것 같은 미치오 슈스케. 이번에는 좀 더 치밀하고 꼼꼼한 설정으로 어른들의 이야기를 잘 그려냈습니다. 사기꾼의 이야기를 그렸지만 그들을 옹호하지 않고 사채업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인물의 당위성을 내세우지 않는 부분들도 주목할만 하구요. 그렇지만 소설과 달리 그 어두운 뒷골목 인생은 사실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겠지요.
다케의 그런 양심을 잃지 않는 부분과 - 양심이라기엔 너무 많은 일을 해버렸겠지만요. - 한 인물의 그 대단한 계획과 상상력은 - 혹은 바람(바램)은 - 이 작품을 꽤 중요한 작가의 저작으로 기억하게 될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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