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조명애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서평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제목을 접하고는 이 소설은 굉장히 코믹하거나 혹은 블랙코미디 쯤 되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해봤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장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저자와 저 사이의 '거짓말'에 대한 인식의 크나큰 차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제가 받아들인 '거짓말'이란 'A를 A가 아닌 B라는 형태로 속이는 행위'로 인식했거든요. 그래서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그런 거짓말을 통해 쫓고 쫓기는 관계에 놓이지 않을까라고 추측했었지요.

그러나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거짓말'은 그런 형태가 아니라 '진실의 반대' 행위를 뜻합니다. (혹은 감춰진 진실이나 보여지는 것과 다른 진실이라거나) 이렇게 볼 때 제가 생각했던 '거짓말'과는 다르지만 좀 더 포괄적인 의미의 '진실이 아닌 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여기에서 추측해볼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조금 철학적인 꺼리를 독자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물론 '철학'이란 단어 때문에 무작정 덮어버릴, 읽으면서 머리아픈 소설은 아니구요.

저자는 아르헨티나 사람으로 여러 나라에서 살다가 지금은 프랑스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이 소설 속에서 필자는 역시 프랑스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30년 전에 사망한 한 작가의 일대기를 쓰고자 합니다. 그 작가는 아르헨티나인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사망했습니다. 기대를 받았던 처녀작을 발표한 전도유망한 아르헨티나 작가가 사망한 사건을 통해 그에 대해 알아보고자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는데 이 소설이 바로 그 작가 '알레한드로 베빌라쿠아'의 지인인 네 명의 인터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지인 '알베르토 망구엘'은 차분한 사람으로 동향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베빌라쿠아와 친해졌다고 합니다. 그는 항상 망구엘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30년전의 이야기를 이토록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세세한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베빌라쿠아의 선대부터 시작해서 살아왔던 삶들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이 인터뷰에서 등장합니다. 망구엘의 이야기 속에서 베빌라쿠아는 한없이 여리고 선하지만 소설을 쓸 재주는 없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두 번째 지인은 베빌라쿠아가 죽기 전 함께 살았던 여인 '안드레아'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이 부분을 읽기 시작하면서 독자는 망구엘의 이야기가 진실이 아니라는 점에 흥미로운 시각을 지니게 됩니다. 그는 물론 자신이 듣고 보았던 베빌라쿠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많은 부분 '자신의 시각'일 뿐이었다는 것이 안드레아의 이야기 속에서 드러납니다. 안드레아가 알았던 베빌라쿠아는 허구를 술술 말하며 - 망구엘의 진술과는 달리 - 여색도 밝히는 남자였습니다. 

망구엘과 안드레아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존재를 서술하는 것만 같아서 대체 이 베빌라쿠아라는 인물의 실체는 무엇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망구엘에게 베빌라쿠아가 가련한 아르헨티나인으로 사실만을 말하는 성실한 남자였다면 안드레아에게 베빌라쿠아는 멋있고 예술가적 기질이 넘치지만 그것을 숨기고 살아가는 천재였습니다. 

의문을 품고 세 번째 지인인 '돼지'로 넘어갑니다. 앞선 두 명의 이야기가 개인의 관점을 추구하는 시각에서 본 인터뷰였다면 이번에는 좀 더 '진실'에 다가서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망구엘과 안드레아가 감정적으로 혹은 거리상 가까운 지인이었다는 측면 덕분일 것이고 이 '돼지', 마르셀리노 올리바레스는 전혀 다른 감정을 가진 지인이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는 쿠바인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베빌라쿠아를 만났는지를 기술합니다.

우리는 이 쿠바인의 이야기 속에서 진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 단순히 이 소설은 '알레한드로 베빌라쿠아'의 일대기를 위한 소설이 아니라 그의 소설인 <<거짓말 예찬>>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닐까란 생각에 미치며 이 소설은 어쩌면 추리소설의 형태도 취하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이야기의 더 뚜렷한 진실을 보여줄 한 인물의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티토 고로스티사'입니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는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실 그야말로 베빌라쿠아의 인생에 어떤 전환점들을 주었던 인물이라고 알게 됩니다. 아쉬운 것은 그의 글은 인터뷰가 아니라는 점 정도이지않나 싶습니다.

이 소설 속 필자인 기자 장 뤽 테라디요스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각을 덧붙입니다. 각 인물들의 인종과 고향, 선대를 밝혔듯 그 또한 그런 수순을 거칩니다. 그는 '알레한드로 베빌라쿠아'의 일대기를 쓰고자 했지만 하나의 글로 그를 단정짓는 행위를 하지 못해서 이런 글을 적었다고 합니다.

사실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는 자신조차도 진실을 쓰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의도하던 그렇지 않던지 간에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모습과 관점을 보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인물에 대한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과연 그 진실은 존재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답변이겠지요. 

아르헨티나인으로 태어나 스페인에서 머물다가 프랑스에서 살았던 망구엘과 스페인인이면서 남미문학에 심취했고 아르헨티나인 남자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그의 천재성을 믿고 있는 안드레아, 쿠바인으로 고통 가운데 살았지만 결국 스위스에서 살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사랑하나만 택한 마르셀리노 올리바레스.

그리고 아르헨티나인으로 누구보다 예술적인 기질을 타고났지만 아버지의 영향으로 국가를 위해 일하고 결국 자신의 사적인 복수심을 위해 국가의 권력을 잘못 이용한 티토, 마지막으로 이런 이들의 삶을 들으며 책으로 펴내고자 했던 장 뤽 테라디요스는 스페인 핏줄이지만 프랑스로 망명한 조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인물들은 모두 조국에서 행복하지 못했고 정착할 수 없었던 시대적 배경과 함께 살아가는 인물들입니다. 각자가 바라보았던 베빌라쿠아의 모습도 달랐고 믿고 있는 부분도 전혀 다르지만 그들이 바라보았던 베빌라쿠아의 진실이나 <<거짓말 예찬>>에 대한 진실은 그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은 누구도 진실 가운데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태어난 곳이 고향이고 그곳에서 줄곧 살아온 선조들이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대를 이어갈 그런 진실이 그들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령 그러고 있는 안드레아조차도 타국의 문학에 흠뻑 빠저 자신이 소유한 진실을 외면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그들에게 어떤 것도 중요한 진실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닐까요. 그것이 결국 인생은 아닐까요.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 소설이었습니다. '지적이고 매혹적인 소설'이라는 수식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습니다.

 



책 정보 

Todos los hombres son mentirosos by Alberto Manguel (2008)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
지은이 알베르토 망구엘 
펴낸곳 세종서적(주) 
초판 1쇄 발행 2011년 8월 10일
옮긴이 조명애
디자인 박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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