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너 일기장 내놔 봐!" 엄마가 방에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손을 내밀었어요. .... ...중략. 엄마가 책꽂이를 뒤지기 시작했어요. "거기 없어!" "그럼 어디 있어?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내놓으라니까." "엄마는 왜 남의 일기를 보려고 해?" "엄마가 보면 좀 어때서?" 엄마는 책상 밑에 둔 책가방을 열어서 뒤적거렸어요. "엄마, 왜 그래?" 나는 겁도 나고 기분도 안 좋았어요.
-9p-11p쪽
엄마는 가방 속에서 기어이 일기장을 찾아 냈어요.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 녀석아, 글씨가 이게 뭐야? 좀 또박또박 예쁘게 쓸 수 엇어?" 엄마는 일기장을 펼치자마자 버럭 화부터 냈어요. "너도 눈이 있으면 좀 봐라. 이 따위로 써 놓으면 누가 알아 먹기나 하겠니?" "남한테 보여 주려고 쓴 거 아니야."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어요. "선생님이 검사하는데 좀 예쁘게 정성들여 써야지, 이렇게 지렁이 기어가듯 네 멋대로 써 놓으니까 검사 받을 때마다 일기 좀 잘 쓰라는 소리를 듣지." "내 글씨가 원래 그런 걸 어떡해?" 나는 일기 쓰기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요. 선생님이나 엄마가 검사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쓰는 것예요. 그래서 검사 받기 하루 전날 한꺼번에 몰아 써요. 엄마나 선생님이 보니까 솔직하게 쓰지도 않고요.
-11p-12p쪽
"진선이는 글짓기를 잘 해서 또 상을 받았다며? 그런데 너는 왜 맞춤법이랑 띄어쓰기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이 모양이니?" 엄마는 오늘도 진선이 엄마한테 진선이 자랑을 들은 게 틀림없어요. 그래서 샘이 났을 거예요. 엄마 때문에 까닭없이 진선이만 미워져요. 사실 진선이는 예쁘고 나한테도 정말 잘 해 주는데 말이죠. "안 되겠다. 너도 진선이처럼 글짓기 학원에 다녀야지." "또?" "못 하는 게 있으면 보충을 해야지." 진선이 때문에 다니게 된 학원이 벌써 두 개째에요.-12p-13p쪽
다른 건 몰라도 태권도는 쉬고 싶지 않아요. 물론 태권도학원도 남자답지 못하다면서 엄마가 다니라고 한 곳이지만, 그래도 학원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곳이 태권도 학원이거든요. "태권도는 방학 때 보내 줄게. 엄마가 약속해. 그러니까 내일부터 태권도 갈 시간에 글짓기 학원에 다녀. 알겠지?" "곧 품세 끝나는데 지금 그만두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돼." "너 선수 되게 하려고 태권도 배우게 한 줄 아니?" "그럼 방학 때 글짓기 학원 다니면 되잖아!"엄마는 일기장을 디밀면서 소리쳤어요. "꾀부리지 말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해!" "앞으로 일기 잘 쓰면 되잖아!"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엄마는 일기장을 책상 위에 던져 놓고 거실로 나가 버렸어요. "씨!" 일기장을 확 찢어 버리고 싶었어요.'다 이놈의 일기 때문이야!'일기장이 눈앞에 보이는 것조차 싫어서 서랍 속에 처박아 버렸어요.-15p-16p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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