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습관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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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은 상당한 글솜씨를 가진 작가다. 다소 상투적이고 저급한 소재가 될 수도 있는 여성의 성 문제를 그다지 특이하달 것 없는 구조, 즉 여러 여성들의 입을 빌어 얘기하고 있다.

이 소설은 여성들이 성에 대해 어떤 다른 경험들을 했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기 보다는, 섹스에 대해 냉소와 허무의식에 차있던 작가가 그것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각 여성들의 이야기는 다소 미화되거나 추상적으로 느껴져서 언뜻 공감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실제 삶과는 달라 보이는,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야말로 읽을거리로는 가치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다를 것 같다. 그것은 전적으로 소재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전경린이 다른 소재로도 그녀만의 독특한 글쓰기를 멋지게 계속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 나도 그녀의 나이쯤 되면 이 소설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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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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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은희경의 책 중에 가장 실망스러운 책이다. 일단 그녀가 남자의 시각에서 글을 쓰려 노력한 것부터가 그녀의 이전 작품들과 차이를 두며, 그 시도는 별로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제껏 그녀의 소설들은 자신의 얘기일 가능성들이 많아 공감이 많이 가고, 독특한 문체의 매력에 빠지게도 했던 것 같다.

이 소설은 4명의 남자들이 고교부터 중년까지 얽히고 섥힌 일들, 그 와중에 바뀌어온 우리의 현대사를 보여주고 있다. 얼마간 풍자적으로, 다소 냉소적으로 그려져 재미있게 읽을만한 요소들도 많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설명조로 이야기를 끌어간 것이나, 그래서 인물의 내면 묘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멈춰 생각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게 되는 술술 읽히는 소설이 되고 말았다.

나는 이 책을 출판한 작가의 의도가 사뭇 궁금하다. 그녀답지 않을 뿐 아니라, 전작들과도 상당한 수준차를 느끼게 하는 이 글에 대해 그녀는 어느 정도 책임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멀리 가버린 그녀가 좀더 멋진 작품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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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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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얘기하면, 아니 줄거리만 보자면, 이 소설은 '불륜'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가 어디 그냥 소설가인가? 불륜조차 아름답게, 그보다 더 진지할 수 없게 만들어 놓는 마력이 이 소설에 있다. 언젠가 TV 베스트극장인가에서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를 본 것 같다. 그 인상이 깊게 남아 이 소설을 읽는 데 약간 애를 먹었다.

남편의 외도로 완벽할 것 같았던 사랑의 환상에서 벗어나 무기력하게 자신의 삶을 놓아버리고 살다가 어느날 홀연히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의 이야기. 어찌보면 어디서나 자주 들어온 유부녀의 불륜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은 한 명 한 명 너무 여리고 따뜻하다. 상처 준 사람을 미워하지만, 적극적으로 복수하지도 못하고, 결국은 자기를 더 상하게 한다.

비극적인라면 비극적이랄 수 있는, 그러나 처음보다는 한결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 주인공을 보면서 내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 같다. 사랑의 환상에 빠지지 말되, 주는 사랑에 만족하고 상처를 주고 받지 않기를, 그렇게 살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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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의 강
은희경 외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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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른이 되었다. 이 책에 글을 쓴 대부분의 작가들처럼, 나도 내가 서른이 된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내겐 스물 일곱 이후의 삶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어떤 삶이 펼쳐질지 막연하고 알 수 없었다.

그만큼 서른은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숫자이다.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던 시기이며, 현재 우리 사회에서 배울 걸 어느 정도 배우고 본격적으로 사회에 정착하며 살아갈 나이다. 이 책에 글을 쓴 이들은 작가라는 특성상, 20대에 겪을 수 있는 경험에 한계가 있어 보인다. 정착하지 못한 자의 불안함, 아웃사이더로 머문 삶, 여기에 결혼과 출산까지 겹치면 극도의 우울증을 동반한 이들의 삶으로 압축된다. 안타깝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주의한다.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려 하면서도 극단으로 치닫는 그들의 정서에는 깊이 동화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의 실제 삶이 소설처럼 거의 정신병자 수준이라면, 세상은 참 살맛 안나며 꽉 죽는 게 상책인 것.

그러나 이 소설들 하나 하나는 내게 어떤 면에서 위로가 되어 주었다. 아, 나만 불안한 게 아니구나, 나만 특이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 가끔 우울해지기도 하고, 바닥도 치고 해야 다시 살 힘이 생기니까...서른의 강을 건너는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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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밭으로 오세요
공선옥 지음 / 여성신문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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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처럼 어미의 마음을 가슴 아프게 드러내는 작가는 없다. '어머니의 사랑'이라던가, '엄마의 마음'이라던가 하는 좀더 다듬어진 정서가 아니라, 헤어나오기 힘든 가난 속에 죽을 힘을 다해 자식들을 키워가는 '어미의 마음'. 거의 본능에 가까운 이 치열함에 우선 기가 질리고, 마음에 거칠게 생채기를 낸다.

그녀의 본능적 모성애 앞에서, 소위 배운자들의 가식은 위선으로 드러난다. 강필순의 두번째 남편이 되는 의사 심이섭은 가난한 자에 대해 드물게 사랑을 베풀던 결혼 전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게 결혼 후 차가운 사람으로 변해간다. 그 변화가 좀 낯설다. 그러나 심이섭을 중심으로 한 배운자, 가진자들의 세계는 얼마나 자아도취적이고 자기만족적인지, 강필순의 말대로 스스로가난하기로 결심한 자들의 모임 같은 것은 한번도 절대 가난 속에 살아본 적 없는 이들이나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 쪽에 있는가? 이 소설의 주인공 강필순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적이다. 가족 이기주의에 깊이 빠져 자기와 친밀한 어떤 집단 속에서만 안정과 기쁨을 추구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공선옥은 아픈 진실을 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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