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은희경의 책 중에 가장 실망스러운 책이다. 일단 그녀가 남자의 시각에서 글을 쓰려 노력한 것부터가 그녀의 이전 작품들과 차이를 두며, 그 시도는 별로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제껏 그녀의 소설들은 자신의 얘기일 가능성들이 많아 공감이 많이 가고, 독특한 문체의 매력에 빠지게도 했던 것 같다. 이 소설은 4명의 남자들이 고교부터 중년까지 얽히고 섥힌 일들, 그 와중에 바뀌어온 우리의 현대사를 보여주고 있다. 얼마간 풍자적으로, 다소 냉소적으로 그려져 재미있게 읽을만한 요소들도 많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설명조로 이야기를 끌어간 것이나, 그래서 인물의 내면 묘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멈춰 생각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게 되는 술술 읽히는 소설이 되고 말았다. 나는 이 책을 출판한 작가의 의도가 사뭇 궁금하다. 그녀답지 않을 뿐 아니라, 전작들과도 상당한 수준차를 느끼게 하는 이 글에 대해 그녀는 어느 정도 책임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멀리 가버린 그녀가 좀더 멋진 작품으로 돌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