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윤대녕 산문집
윤대녕 지음 / 푸르메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좋아하지만 잘 읽지는 않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윤대녕이라는 작가는 이름은 알지만 소설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은어낚시통신>이라는 초기작은 이름이 독특해서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은 아내가 직장내 도서관에서 빌려온 것이다. 아내는 책을 읽었다 하면 거의 소설을 보는 편이다. 윤대녕 소설도 좀 읽었던 것 같다. 침대에 뒹굴고 있는 것을 우연히 들춰보게 되었다.

글이 솔직해서 너무 잘 넘어갔다.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느낌의 글이 그렇듯이 진도가 잘 나갔다. 그의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연애, 친구, 소설을 쓴 노트북, 독서 이야기 등을 밤에 읽고, 그 다음날 아침에 읽고 나니 벌써 책이 끝이 났다.

윤대녕이라는 작가의 삶과 생각, 문학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의 소설들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또 글에 나오는 절기별로 만나는 친구들 이야기도 개인적으로는 자극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년 한 해 동안 읽은 책의 목록이다. 100권이다.

마음먹고 역사책을 열심히 읽었다.

세계사를 읽어보기 위해서 선택한 것은 윌리엄 맥닐의 책들이었다. 세계의 역사, 전염병의 세계사, 전쟁의 세계사는 맥닐의 시각이 얼마나 거시적인지를 알게 하는 책들이다. 세계사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새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한다. 서양문명의 역사를 통해서 서양사를 개괄하는 책도 좋았다.

백양의 중국사를 읽고 나니 중국사를 통시적으로 한번 훑어보는 것이 가능해졌다. 2015년에는 진순신의 중국사를 한번 읽어보고 싶다.

한국근현대사를 좀더 체계적으로 읽어보고 싶어서 강준만의 한국근대사산책 10권을 읽고, 40년대편 2권을 읽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강준만은 쏟아지는 글의 양이 너무 많아서 그저그려니하고 좀 무시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그 내공이 장난이 아니다. 한국근대사 100년의 역사를 쟁점별로, 시대별로 읽어보는 경험이 되었다.

황석영의 삼국지를 읽었다. 삼국지는 평생에 처음으로 완독했다. 이어서 삼국지강의와 조조평전을 읽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최고의 경험은 삼국지강의였다. 삼국지를 읽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를 3권까지 읽었다. 4,5권은 내년에 읽으려고 남겨두었다. 역사를 왜 문학과 함께 읽어야하는지를 실감했다. 조동일의 업적은 정말 거대하다.

도스토옙스키 읽기는 카마라조프가의 형제들을 마지막으로 일단락했다. 거대한 산맥을 등산한 경험이랄까. 카라마조프는 한번 더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박경리의 토지1부를 읽었다. 강준만의 한국근대사를 읽으면서 같이 보았는데, 소설로 읽는 한국근대사란 말이 실감났다. 역사성도 있지만 소설에 나오는 다양한 인간들, 갈등들이 주는 감동은 참 컸다. 2015년에는 남은 분량을 조금씩 읽어나갈 생각이다.

글쓰기 관련 책들을 읽었다. 윌리엄진서의 책과 김연수의 책, 게일카스레빈의 행복한 글쓰기 등등.

헤밍웨이의 노인과바다가 기억에 남는다. 노인이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청새치, 상어들과 겨루는 장면들이 잊히지 않는 이미지로 남아있다. 짧은 소설이지만 대하소설에 버금가는 감동이 있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도 기억에 남는다. 생텍쥐페리를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알랭드보통의 책은 여행의 기술을 처음 읽었다. 많은 것을 배웠다.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과학서들은 좀 많이 못 읽은 것 같다. 2015년의 과제로 넘긴다.


10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글쓰기 생각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7년 11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5년 02월 18일에 저장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5년 02월 18일에 저장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함민복 지음 / 창비 / 2013년 2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원(1%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5년 02월 18일에 저장

한국문학통사 3 (제4판)-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문학 제1기
조동일 지음 / 지식산업사 / 2005년 3월
25,000원 → 23,750원(5%할인) / 마일리지 750원(3%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5년 02월 18일에 저장



10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스티븐 킹의 이야기는 책으로 된 것은 읽어본 적이 없다. 영화로 나온 것은 여러 번 보았다. '그린마일'이나 '미저리',‘쇼생크탈출같은 영화는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다. 이 책은 스티븐 킹이라는 작가가 어떻게 글을 쓰는가에 대한 고백서같다. 이 책은 일반적인 작문론과는 다르다. 작가의 작가이력이 재미있게 나와 있고, 말미에는 이 책과 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작가의 인생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느 부분을 펼쳐도 단 1분 안에 책 속으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자기장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뜻에서 보면 이 책의 번역제목인 '유혹하는 글쓰기'는 적절하다. 곳곳에서 스티븐 킹은 글쓰기에 대한 자기나름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지론을 펼치고 있다. 내가 지금도 기억하는 것 몇 가지만 적어본다.

 

첫째, 책읽기와 글쓰기는 똑같이 중요함을 자기고 있다.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 킹은 끊임없이 읽는다. 킹은 한 해에 70-80권 정도 읽는다. 텔레비전은 그런 뜻에서 책의 적이다. 영화는 좀 다른 것 같다.

둘째, 늘 일정한 시간동안 노동하듯이 글을 써야 한다. 그런 전제 위에서만 작가는 영감을 얻는다. 예술의 여신 뮤즈는 그런 창조의 순간에만 작가를 찾아온다. 킹의 작업시간은 4-6시간 정도다.

셋째, 불필요한 단어는 과감히 쳐내라. 특히 부사.

넷째, 플롯에 너무 의존하지 마라. 상황중심의 글쓰기를 킹은 지지한다. 소설은 땅에서 파내는 화석 같은 것이다. 플롯은 연장으로 치자면 착암기 같은 것이다. 세부적인 것을 파괴할 수 도 있다.

다섯째, 대화가 살아있는 소설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남의 말을 잘 듣고 대화를 즐겨야 한다.

여섯째, 상징과 주제의식이 뚜렷한 글이 좋은 글이다.

일곱째, 글을 쓸 때는 문을 닫는다. 다 완성되면 가까운 이들에게 비평을 받는다. 이른바 문을 연다는 행위다. 쓸 때는 가상의 독자를 염두에 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지 1 - 1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0월말부터 손에 들고 읽기 시작한 '토지' 1부를 어젯밤에 다 읽었다. 모두 네권이며, 쪽수로는 1600쪽 정도 된다. 읽는데는 두 주일이 걸렸다. 1주에 두권 정도 읽은 셈이다. 학기중에 대하소설을 읽으려니까 다른 책을 읽을 수가 없어서 힘들었다. 나머지분량은 겨울방학중에 읽으려고 벼르고 있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통영태생이다. 19261028(음력)에 태어나서 200855일에 돌아가셨다. 우리 나이로 83세이다. 박경리는 진주여고를 졸업한 이듬해인 1945년에 결혼을 했다. 그러나 남편은 한국전쟁 중에 감옥에서 죽었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쟁통에 세살짜리 아들이 죽는다. 작가의 유일한 혈육은 살아남은 딸 김영주다. 딸은 후일 저항시인 김지하와 결혼한다. 작가는 1955년에 소설가로 등단했다. '토지'를 처음 쓸 무렵인 1969년에 이미 작가는 장편소설 8권과 단편소설집 1권을 써낸 중견작가였다. 사십대 초반의 작가는 어릴적 외할머니에게서 전해들은 거제도의 이야기를 줄기로 하여 '토지'라는 장편소설을 구상한다. 처음에 '토지'1부로 완간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이야기의 무대는 점점 더 넓어지고, 시간도 길어져서 '토지'5부까지 이어진 대하소설이 되었다. 작가는 무려 24년 동안을 '토지'를 쓰기 위해서 고투했다. '토지'를 완간한 뒤의 박경리는 69세가 되었다. 박경리는 그야말로 자신의 혼을 쏟아서 이토록 장대한 이야기를 지어냈다. 이 방대한 소설은 무려 20권 규모의 소설이 되어서 '소설로 읽는 한국근대사'라는 명칭을 얻기에 이르렀다. 시간적으로는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에서부터 1945년의 해방에 이르기까지 50여년 세월이 들어있고, 소설의 무대는 한반도에서 간도, 일본을 아우르고 있다.

 

1부의 배경이 되는 역사는 갑신정변, 동학농민전쟁, 을미사변, 을사늑약, 러일전쟁, 군대해산 등을 포함한다. 조선이라는 오래된 사회는 서양에서 밀려온 거대한 물결에 쓰나미를 맞은 것처럼 흔들린다. 외세의 침략이 있기 전부터 조선은 내부의 모순에 의해서 혼란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서양과 신흥강국 일본의 침략은 그 혼란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소설에서는 그런 역사들이 직접 나오기보다는 최치수나 김훈장, 이동진, 조준구 등의 양반과 목수 윤보 등의 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언급된다. 시대의 변화에 대하여 적극 대응한 것은 평민의 종교인 동학이다. 이에 비한다면 양반은 마지못해 그 흐름에 끌려들어가면서 끝끝내 바뀌어버린 현실을 보기를 거부한다. 양반들은 단발령이나 을미사변을 거쳐서 을사늑약에 이르러서야 전면적인 대일항쟁에 나서지만 이미 때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런 역사들이 이야기의 배경으로 간간히 등장하는데, 최근에 같이 읽었던 강준만의 <한국근대사산책>이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한 박경리가 이 시대의 역사를 세세한 부분까지 꿰뚫어보는 지식을 가지고 소설을 썼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야기는 지리산과 섬진강이라는 자연을 배경으로 하여 하동 평사리의 대지주인 최참판택을 중심으로 하여 인근 마을의 농민들과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을 등장시켜서 전개된다. 최참판댁은 만석꾼이라고 한다. 만섬지기 농사를 짓는 대지주다. 한섬은 열말이다. 요즘 도량형으로 하면 180리터 정도 된다고 한다. 크게 잡아서 논한마지기에 다섯가마가 나온다고 쳐도 최참판댁의 논은 2,000마지기 정도 된다. 대단한 규모다. 자작농이 가지고 있는 논이라야 겨우 3-4마지기인 것을 감안하면 최참판댁은 오늘날로 치자면 대기업의 소유주라고 보면 무난할 것 같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최참판댁이라는 대지주의 토지를 빌려서 농사를 짓고 삶을 영위한다. 농민들에게 최참판댁은 사실상 파라오나 다름이 없는 존재다.

 

1부는 사실상 주인공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윤씨부인과 최치수, 서희라는 최참판댁의 당주들이 최고의 위치에서 중심을 잡기는 하지만,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폭이 넓다. 모든 인물들은 쉽게 풀어낼 수 없는 무섭게 꼬여버린 문제들을 붙들고 고뇌하는 존재들이다. 이 고뇌는 파괴적이다. 인물들은 살해당하거나 죽거나, 미치거나, 좌절하거나, 이상하게 변해버리거나, 적당히 도망가거나, 끝까지 투쟁하거나 하면서 이야기에 참여한다. 용이와 월선이, 칠성댁, 임이네의 관계는 이야기의 중요한 축이다. 용이는 평민의 삶을 보여준다. 최치수와 서희, 윤씨부인, 조준구, 이동진은 양반의 삶을 보여준다. 문의원, 목수 윤보, 강포수, 김훈장 등은 잔반이나 중인같은 중간지대의 인물들이다. 이외에는 평산, 귀녀, 칠성이 같은 범죄인들이 있다. 마을 사람들도 만만찮다. 종의 신분인 삼수, 수동이, 삼월이, 김서방, 김서방댁은 최참판댁의 중심인물을 보좌하는 중요한 역할들이다. 구천이와 별당아씨, 김개주와 우관스님은 국지적인 존재로서 사건의 전개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 조준구와 홍씨, 그리고 일본은 악의 세력이다. 조준구와 홍씨는 양반으로서 염치도 없고 신념도 없다. 오로지 자신의 치부와 권력만이 최고인 존재이다.

 

이야기의 흐름의 중심에는 최치수의 죽음과 윤씨부인의 죽음으로 인하여 생긴 힘의공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힘의 공백은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외부세력의 개입을 불러온다. 이건 마치 조선왕조가 무너져내리는 당대의 상황과 비슷하다. 최치수는 원한에 맺힌 종 귀녀와 몰락양반인 평산의 음모때문에 희생된다. 그 힘의 공백을 메꾼 것은 윤씨부인이다. 윤씨부인은 시종일관 이성적이다. 그러나 윤씨부인조차도 호열자(콜레라)의 재앙은 이겨내지 못한다. 윤씨부인의 죽음과 마름인 김서방, 봉순네의 죽음은 윤씨부인을 축으로 한 권력이 붕괴함을 의미한다. 이것을 대신할 수 있는 서희와 길상, 봉순의 연합은 너무나 미약하다. 아직 나이가 어린 탓이다. 여기에 외부세력인 조준구와 홍씨의 무지막지한 침탈이 이어진다. 먼 친척이라는 인연을 이용하여 조준구는 최참판댁의 심장까지 치고들어와서 그 많은 재산을 통째로 집어삼키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종들과 소작인들을 분열시켜 자기세력을 키우기 위해서 노력한다. 마침내 나라마저 을사늑약으로 일본에게 넘어가고, 조준구는 모든 것을 차지했다고 안심하는 순간 농민들의 반란이 시작된다. 가혹한 착취를 견디지 못한 농민들은 목수 윤보의 지도자로 삼아서 조준구를 죽이려고 한다. 목수 윤보는 얽매인 게 없는 자유인이다. 처자도 없고, 재물에도 매이지 않는다. 아는 것은 많고, 당대의 사건과 반란의 기술에도 능한 사람이다. 그러나 악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조준구는 살아남고, 반란을 꾀한 사람들은 가혹한 응징을 당한다. 1부는 서희와 용이, 김훈장 등이 간도로 탈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간도는 일종의 해방구인 셈이다.

 

모든 재미난 이야기는 사랑과 질투, 배신, 갈등과 투쟁을 구도로 해서 벌어지는 법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은 사랑과 갈등의 이야기다. 1부에는 여러가지 형태의 사랑이 등장한다. 구천과 별당아씨의 사랑, 용이와 월선의 사랑, 귀녀와 강포수의 처연한 사랑, 이제 갓 스물이 된 길상과 봉순의 사랑, 윤씨부인과 김개주의 사랑, 삼월이를 사이에 둔 조준구와 삼수의 난행 등 갖가지 모양의 남녀관계가 나온다. 이 가운데 단연 사랑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용이와 월선의 사랑이다. 이들의 사랑은 정말 초월적이다. 모든 난관을 뛰어넘는 질긴 사랑이다. 정말 그들은 상대를 자기 몸의 한부분인것처럼 아끼고 그리워한다. 둘 다 너무나 심성이 착하다. 이들 사이에 끼어 있는 강청댁과 임이네는 사실은 불쌍한 여인들이다. 강청댁은 볼품없고 아기도 못 낳는 여인인데다가 질투의 화신이다. 이에 비해서 임이네는 예쁘고, 아기도 잘 낳으며, 잡초같이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여인이다. 강청댁의 질투는 강하지만 일찍 죽는다. 이에 비해서 임이네는 끝끝내 살아남아서 용이와 월선이 사이를 훼방놓는다. 임이네는 살인자의 아내가 되어도 살고, 거지가 되어도 살며,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는다. 끝이 어떨지 궁금해지는 인물이다.

 

개인적으로는 맥닐의 <전염병의 세계사>를 읽고 난 뒤에 전염병이 나오는 장면만 나오면 예사로 넘어가지 않게 되었다. 이 책에도 전염병은 어떤 등장인물 못지 않은 막강한 힘을 휘두른다. 윤씨부인을 순식간에 죽게 만드는 것은 호열자라고 불리우던 콜레라다. 마름인 김서방이 하루만에 죽음에 이른 뒤에 최참판댁과 동네는 마치 해일에 휩쓸린 것처럼 쑥대밭이 되고 만다. 윤씨부인, 김서방, 봉순네, 강청댁, 문의원, 김진사댁 청상과부 두명,김훈장의 자식들이 순식간에 소설에서 사라진다. 1부의 4편 제목이 '역병과 흉년'인데, 이 둘은 사실상 당대의 인민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재앙의 쌍두마차와도 같은 것이었다. 특히 역병은 양반과 상놈을 가리지 않는 무서운 존재였다. 결과적으로 승리한 것은 콜레라의 생리를 잘 알고 있던 조준구다. 조준구는 일본인들을 사귄 덕분에 콜레라가 접촉을 통해서 옮는 것을 알고 철저하게 방역을 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는 그 지식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최참판댁이 몰락해야 자신이 일어설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악인의 간지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에서 악인은 반드시 몰락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 악인이 올라간 정상에서 고꾸라지는 과정의 이야기와 최참판댁의 후계자인 서희가 어떻게 다시 재기하는지가 이어지는 이야기의 중심줄기가 될 것이다. 1부는 서희와 길상이 도망가는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간도다. 이야기의 무대는 넓어지고, 이제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때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조 평전 - 사람을 얻어 난세를 평정한 용인술의 대가 중국 역대 제왕 전기 시리즈
장쭤야오 지음, 남종진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이중텐의 <삼국지강의>를 읽고 난 뒤 가장 궁금한 인물은 조조였다. 이중텐의 전체 강의 48강 중 전반부 12강이 조조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만큼 조조의 비중이 크다. 또한 다루는 내용도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깨는 측면도 많다. 한편으로는 다른 측면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종류의 책을 찾아보았는데, 이중텐의 강의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장쭤야오의 <조조평전>이 민음사에서 번역되어 나온 게 있었다.

 

이 책을 저술한 장쭤야오는 1931년 생으로 삼국시대 분야 역사연구의 권위자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은 2000년에 중국에서 출간되고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에 번역본이 나왔다. 장쭤야오는 이미 1990년대에 <조조평전>이라는 제목으로 조조에 대한 비평적인 전기를 이미 간행한 바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정확한 책명은 <조조평전>이 아니라 <조조전>이다. 제목처럼 이 책은 비평적인 성격이 약하다고 느꼈다. 장쭤야오는 좀더 논평적인 성격의 책을 보려면 1990년에 나온 <조조평전>을 보라고 후기에서 권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1990년판 <조조평전>은 번역본이 없다.

 

어쨌든 이 책은 조조에 대해서 궁금한 거의 모든 것이 나와 있다. 조조의 출생에서부터 출세, 죽음, 정책, 후손들, 그에 대한 후대의 평가들까지 조조에 대한 백과사전적인 성격의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삼국지연의와 이중텐의 삼국지강의에서 나온 내용을 또 들으니까 식상한 면도 있었지만, 조조와 삼국시대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다시 그려볼 수 있어서 좋았다.

 

조조는 정말 다양한 면을 지닌 인물이다. 정치가, 군사전략가, 문학가, 음악가, 건축가, 서예가 등등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던 한마디로 다재다능했던 인물이다. 현실의 인물로서 조조를 알게 된다면 정말 사랑할 수 밖에 없을 만한 그런 뛰어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조조 주변에 구름같이 모여들었던 인재들이 조조를 그렇게 따를 수 밖에 없던 요소를 그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조조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거나 계속된 승리에 우쭐하여 자만심이 생겨서 적벽대전에서 커다란 곤경을 겪기도 했다. 조조가 유비에 견주어서 나쁘게 평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사람을 너무 쉽게 죽였다는 점이다. 자기 아버지와 가족을 죽인 집단에게 복수할 때는 그 성 주민을 모두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몇 만명의 투항병사들을 구덩이에 생매장하기도 하는 잔혹함을 보였다

 

조조가 중국과 동아시아에서 대개 악평을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그 자신에게 있기도 하겠지만 주희의 평가도 있다. 남송의 대학자인 주희는 주자학이라는 거대한 사상체계를 만들어내고, 이후의 동아시아 사상의 지형도를 바꾼 인물이다. 주희는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해설하는 <자치통감강목>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의 목적은 중국사를 주자학적인 개념으로 개괄하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주희는 한나라 역사를 잇는 정통을 조조의 위나라가 아니라 유비의 촉나라에 두었다. 거기서 조조는 유비의 촉나라의 연호를 정통으로 채택한다. 유비는 황제이고, 조조는 황위를 찬탈한 도적이라는 게 이유다. 역사학적으로 보면 역사의 공백이 생기는 오류이기도 한데, 주희는 그렇게 했다. 이후에 주희의 관점은 지식계의 표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명나라 때 나관중이 저술한 <삼국지연의>는 촉한정통론을 관점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조조를 교활하고 잔혹할 뿐만 아니라 한나라 황실을 능멸하는 간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들이 모여서 조조는 대중적으로도 간신으로 기억되게 된다.

 

조조는 모든 면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삶을 마감했다. 황제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후대에 아들이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모든 장치는 해 놓고 떠났다. 보통 새로운 창업주들의 실수는 후계자를 잘못 세워서 그 업적이 중도에 그치게 되는 법인데, 사실 조조의 아들인 조비는 영민한 통지자였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데서 생겼다. 그 훌륭한 후계자가 너무 일찍 죽어버린 것이다. 조비는 재위 7년만에 40살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음주를 좋아해서 그랬다는 말이 있다. 언제든지 권력이 약해지면 도전자가 생기는 법이다. 사마씨가 권력을 독점하고 결국 그의 손자인 사마염에 이르러 위나라를 멸망하고 진나라가 건국된다. 어찌보면 조조가 악평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위나라의 지속이 너무 짧아서(45) 그 왕조가 뿌리 내릴 기간이 없었다는 게 아닐까? 한이나 당처럼 300, 400년 정도는 가야 지식인과 백성들의 무의식 속에 뿌리를 내리는 법인데, 조조는 그런 면에서 불운했던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