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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평전 - 사람을 얻어 난세를 평정한 용인술의 대가 ㅣ 중국 역대 제왕 전기 시리즈
장쭤야오 지음, 남종진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이중텐의 <삼국지강의>를 읽고 난 뒤 가장 궁금한 인물은 조조였다. 이중텐의 전체 강의 48강 중 전반부 12강이 조조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만큼 조조의 비중이 크다. 또한 다루는 내용도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깨는 측면도 많다. 한편으로는 다른 측면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종류의 책을 찾아보았는데, 이중텐의 강의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장쭤야오의 <조조평전>이 민음사에서 번역되어 나온 게 있었다.
이 책을 저술한 장쭤야오는 1931년 생으로 삼국시대 분야 역사연구의 권위자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은 2000년에 중국에서 출간되고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에 번역본이 나왔다. 장쭤야오는 이미 1990년대에 <조조평전>이라는 제목으로 조조에 대한 비평적인 전기를 이미 간행한 바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정확한 책명은 <조조평전>이 아니라 <조조전>이다. 제목처럼 이 책은 비평적인 성격이 약하다고 느꼈다. 장쭤야오는 좀더 논평적인 성격의 책을 보려면 1990년에 나온 <조조평전>을 보라고 후기에서 권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1990년판 <조조평전>은 번역본이 없다.
어쨌든 이 책은 조조에 대해서 궁금한 거의 모든 것이 나와 있다. 조조의 출생에서부터 출세, 죽음, 정책, 후손들, 그에 대한 후대의 평가들까지 조조에 대한 백과사전적인 성격의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삼국지연의’와 이중텐의 ‘삼국지강의’에서 나온 내용을 또 들으니까 식상한 면도 있었지만, 조조와 삼국시대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다시 그려볼 수 있어서 좋았다.
조조는 정말 다양한 면을 지닌 인물이다. 정치가, 군사전략가, 문학가, 음악가, 건축가, 서예가 등등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던 한마디로 ‘다재다능’했던 인물이다. 현실의 인물로서 조조를 알게 된다면 정말 사랑할 수 밖에 없을 만한 그런 뛰어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조조 주변에 구름같이 모여들었던 인재들이 조조를 그렇게 따를 수 밖에 없던 요소를 그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조조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거나 계속된 승리에 우쭐하여 자만심이 생겨서 적벽대전에서 커다란 곤경을 겪기도 했다. 조조가 유비에 견주어서 나쁘게 평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사람을 너무 쉽게 죽였다는 점이다. 자기 아버지와 가족을 죽인 집단에게 복수할 때는 그 성 주민을 모두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몇 만명의 투항병사들을 구덩이에 생매장하기도 하는 잔혹함을 보였다.
조조가 중국과 동아시아에서 대개 악평을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그 자신에게 있기도 하겠지만 주희의 평가도 있다. 남송의 대학자인 주희는 주자학이라는 거대한 사상체계를 만들어내고, 이후의 동아시아 사상의 지형도를 바꾼 인물이다. 주희는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해설하는 <자치통감강목>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의 목적은 중국사를 주자학적인 개념으로 개괄하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주희는 한나라 역사를 잇는 정통을 조조의 위나라가 아니라 유비의 촉나라에 두었다. 거기서 조조는 유비의 촉나라의 연호를 정통으로 채택한다. 유비는 황제이고, 조조는 황위를 찬탈한 도적이라는 게 이유다. 역사학적으로 보면 역사의 공백이 생기는 오류이기도 한데, 주희는 그렇게 했다. 이후에 주희의 관점은 지식계의 표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명나라 때 나관중이 저술한 <삼국지연의>는 촉한정통론을 관점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조조를 교활하고 잔혹할 뿐만 아니라 한나라 황실을 능멸하는 간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들이 모여서 조조는 대중적으로도 간신으로 기억되게 된다.
조조는 모든 면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삶을 마감했다. 황제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후대에 아들이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모든 장치는 해 놓고 떠났다. 보통 새로운 창업주들의 실수는 후계자를 잘못 세워서 그 업적이 중도에 그치게 되는 법인데, 사실 조조의 아들인 조비는 영민한 통지자였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데서 생겼다. 그 훌륭한 후계자가 너무 일찍 죽어버린 것이다. 조비는 재위 7년만에 40살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음주를 좋아해서 그랬다는 말이 있다. 언제든지 권력이 약해지면 도전자가 생기는 법이다. 사마씨가 권력을 독점하고 결국 그의 손자인 사마염에 이르러 위나라를 멸망하고 진나라가 건국된다. 어찌보면 조조가 악평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위나라의 지속이 너무 짧아서(45년) 그 왕조가 뿌리 내릴 기간이 없었다는 게 아닐까? 한이나 당처럼 300, 400년 정도는 가야 지식인과 백성들의 무의식 속에 뿌리를 내리는 법인데, 조조는 그런 면에서 불운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