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깃발 (2disc)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제시 브래드포드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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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일본과 미국 사이에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때다. 이오지마는 한문으로 하면 '유황도'다. 유황이 나오는 화산섬 같은 정도로 이해된다. 영화의 대사를 근거로 하여 판단해보면 이오지마는 일본이 미국에게 뺏었던 괌이나 필리핀 같은 섬과 다르게 일본 본토에 속하는 섬이다. 일본본토에 속하는 만큼 일본은 미국의 공격에 그야말로 목숨을 바쳐서 싸우는 자세를 보인다. 전투는 그야말로 처절하게 펼쳐진다. 영화 속에 그 처절한 전투장면들이 재현되고 있는데, 보면 좀 끔찍한 장면들이 많다. <라이언일병 구하기>에서 보았던 그러한 전쟁의 실감이 여기서도 난다. 기관총에 맞아서 마치 짚단이 엎어지는 것처럼 픽픽 쓰러지는 병사들, 폭탄에 몸의 일부가 잘려나가거나 총알에 맞아서 시뻘건 피를 뿜어내다가 곧 죽음에 이르고 마는 병사들의 모습은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처참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의도한 이른바 '영웅만들기'에 대한 고찰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전쟁자체에 몰입해서 보았다. 이오지마의 섬 곳곳에 굴을 파놓고 저항하던 일본군대 속에는 얼마만큼의 조선인 청년들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했다. 미군과 백병전을 벌이다가 총검에 찔려 죽어가는 일본군 병사는 혹시 식민지 조선의 청년이 아니었을까  영화의 중반에 보면 일본군이 미군에 밀려 전투가 거의 패배에 다다르자 일본군들은 동굴 속에서 수류탄으로 자폭을 한다. "뻥! 뻥!" 하며 동굴 속에서 들려오는 폭음에 미군병사들은 처음에는 영문을 모르다가 자폭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미군병사의 얼굴에 어리는 두려움의 표정을 보면서 오키나와 전투에서 집단자살을 강요당했다는 오키나와 원주민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쟁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야만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전쟁은 가장 생산적인 산업이 되기도 한다. 결국 따지고 보면 1929년의 대공황으로 위기에 빠진 세계자본주의를 구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쟁은 단기간에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그동안 정체되어있던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해버렸다. 그러나 전쟁이 만들어내는 문화의 파괴와 대량살륙은 인류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전쟁은 젊은 세대의 에너지를 착취해서 소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 전후는 한 세대의 공백(그 세대의 10-20%가 죽어버리는 형태로 실현되는)을 가져온다. 2차대전후의 독일과 러시아가 그러했고, 한국전쟁후의 한국과 중국이 그러했으며, 베트남 전쟁후의 베트남과 미국이 그러했다. 이 영화에서도 이오지마 전투에 참가한 주인공의 소대원들 중에 상당수는 이승에 없다. 승리자인 미군이 그러했다면 패배자인 일본군은 어떠했을까. 사회를 지배하고 역사를 이끌어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파괴와 죽음들은 사회를 새롭게 가꾸는 데 필요한 거름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보통 사람들의 가정에서 꼭 필요한 사람들인 것을 생각한다면 민중들에게 전쟁은 필요악이 아니라 절대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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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사진
페터 슈테판 지음, 이영아 옮김 / 예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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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다. 표지에 실려있는 아폴로11호의 달착륙 사진은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사진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기대도 그렇게 크게 하지 않았다. 별 생각없이 넘겨가던 나는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진과 레닌의 유명한 연설 사진에서 눈길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1차대전 이후에 터키는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했는데, 거의 100만명 가까운 대량학살이었다고 한다. 20세기 대량학살의 원조처럼 이야기되는 사건이다. 역사책에서 가끔씩 언급하는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사진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200명 가까운 아르메니아인들이 뼈와 가죽이 상접한 채로 죽어있는 장면은 지옥 그 자체다. 어쩌면 우리는 한국현대사를 통해서 이런 종류의 사진에 익숙한 사람들인데도 그 죽음의 장면은 처참하다. 담요에 덮여있거나 알몸으로 죽어있는 사람들의 군상은 어린아이에서부터 젊은이,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한 마을 사람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한 느낌이 든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있어서 우리는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대해서 바로 알게 된다. 과연 영상은 글보다 직접적이다. 글로 쓴 기록들은 우리에게 상상을 요청한다. 그러나 사진은 상상의 여지를 줄여준다. 인식은 직접적이다. 그만큼 사진의 충격파는 크다.

이 책 속에는 85장의 사진이 들어있다. 20세기를 기록한 가장 유명한 사진들이다. 한번씩은 신문이나 책, 방송들에서 보아왔던 사진들이다. 사진으로 보는 20세기라고 책 제목을 달아서 무방할 듯하다. 이 책을 편집한 사람은 독일의 사진작가인데, 사진을 보는 시각이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미디어를 보는 시각도 비판적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거대방송사와 신문사들이 보여주는 사진은 아무래도 사회적인 진실을 순화시킨 것들이 많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고른 사진들이다보니 극단의 시대이자 폭력의 세기라는 20세기의 본질적인 사건들을 포착한 사진들이 많다. 러시아혁명, 1차세계대전, 스페인내전, 2차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캄보디아학살, 냉전, 냉전의해체, 걸프전쟁. 대부분 전쟁에 관한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다. 21세기의 상징이 된 9.11테러와 이라크전쟁에 관한 사진은 없다. 이 책의 원본이 나오던 2000년의 시점에 가장 비극적인 상징은 걸프전쟁과 보스니아 내전, 팔레스타인 분쟁 같은 것들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21세기는 20세기보다 더한 극단이 시대가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 같은 것들도 들게 한다.

한국에 관한 사진은 딱 한장 나온다. 미국의 폭격기 여러 대에서 눈내리는것처럼 폭탄을 퍼붓고 있는 장면이다. 처음 사진을 볼 때는 늘 보던 사진이라서 별 생각없이 보았는데, 해설하는 사람의 해설이 정신을 번쩍들게 하는 말을 했다. 대강 이렇게 기억이 된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의 산하는 지극히 평화롭다. 그 자연 속에는 특별한 군사적인 목표물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미군은 엄청난 폭탄을 쏟아붓고 있다.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가 그 자리에 있던 피난민이거나 인민군이었다면 어땠을까하고 상상해보니 정말 끔찍했다. 그야말로 어떤 지역을 융단깔듯이 폭탄을 퍼붓는 한국전쟁의 시기는 '폭격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제공권을 장학했던 미군이 한반도에 쏟아부었던 폭탄의 양은 태평양전쟁시기에 일본에 대항해서 투하했던 것보다 더 많다고 한다. 폭탄은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우선 폭탄으로 땅에 보이는 모든 움직이는 목표물과 무기로 쓰일 수 있는 것, 엄폐물로 이용될 수 있는 건물은 모두 부수어버린다. 물론 미군은 한반도를 공산주의의 위협에서 구원해준 십자군이었지만, 그 댓가로 한반도는 셀 수 없는 파괴와 죽음의 시기를 건너왔다. 미군이 한반도에서 퍼부었던 폭탄 중에는 네이팜탄이 많았다. 숲이나 마을을 통째로 태워버리는 폭탄이 네이팜탄이다. 베트남 전쟁 중에 네이팜탄을 맞은 마을을 피해서 아이들이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치는 유명한 사진이 있다. 막 10살 정도 되는 여자아이가 불에 붙은 옷을 벗어버리고 울부짖으면서 도망치다가 미군을 만나는 장면인데, 나는 그 장면이 꼭 20여년 전에 한반도에서 벌어진 장면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단지 사진으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만 다를 뿐이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사진을 들라고 하면 마릴린 먼로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다가 바람에 날려올라간 치마를 누르는 장면이다. 간디가 물레를 돌리고 있는 사진이나 아인슈타인의 사진, 레닌의 연설 장면 같은 사진도 마음에 들지만 웬지 먼로의 사진에 마음이 갔다. 보통 방송이나 신문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인데 먼로의 풍부한 얼굴표정이 드러나있어서 마음이 가는 사진이었다. 그 표정과 눈빛 속에 들어있는 무엇인가가 섹스심벌이라는 기존의 먼로의 이미지와는 다른 느낌을 주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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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의 보물창고 연못과 습지 - 어린이를 위한 갈리마르 생태 환경 교실 2
르네 메틀러 지음, 김희경 옮김 / 키다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제목을 생태계의 보물창고라고 했는데 적절한 것 같다. 연못과 습지가 왜 생태계의 보물이 숨겨진 곳인지는 그 내용을 자세히 알아야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우리가 예전에 갯벌을 메꾸어서 땅으로 만들어야 할 곳으로 인식하였듯이 습지는 대부분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져왔던 역사를 가져왔거든. 나 역시 어렸을 적에는 그랬다. 우리 마을은 바닷가를 접해있는 농촌이었는데,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습지가 여럿 있었다. 그곳을 지나갈 때면 우리는 언제나 알 수 없는 새소리들을 듣곤 했다. 그곳은 우리가 들어가기에는 너무 위험한 곳이었다. 갈대가 우거져있는 곳인데다 물도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으니 꼭 뱀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요즘에야 겨우 그 갈대밭에서 울던 새소리가 개개비가 우는 소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이 생태계의 자궁이요 어린이 놀이터인 줄을 누가 알았겠나. 어른들은 아무도 그런 사실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아마 그분들도 그곳을 그저 논을 만들지 못하는 버려진 땅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인간의 개발욕구는 끝이 없으니까.

프랑스인이 쓴 글과 그림인데도 전혀 낯설지 않다. 프랑스나 한국이나 자연은 비슷한 가 보다. 온대지방이라서 그런 것인지. 몇 개 동물이나 식물을 빼고는 거의 닮았다. 개구리 종류가 좀 다른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더구나 철새들은 지역에 매여사는 존재가 아니다보니 거의 비슷하다. 논병아리니 도요새니 하는 새들은 우리 나라 산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새들이다. 과연 새들은 전지구를 무대로 사는 동물이다보니 그런 것인것 같다. 철새가 부럽다.  여하튼 아이들을 많이 데리고 다니면서 자연을 느끼게 만들어야겠다. 산이나 강, 습지, 논과 밭에서 자라는 동식물을 아이들이 경험하고 어린시절의 친구로 사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요즘 시대의 어른된 자의 의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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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김형경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별 느낌이 없었다. <한겨레>에 실렸던 그의 연재소설이나 심리상담을 그저 그렇게 주목하지 못하고 넘어갔다. 그에 대해 기억하는 정도는 <국민일보>1억고료 당선작인 장편소설 <새는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의 작가라는 것 정도였다. 그러던 참에 이번에 나온 <천개의 공감>이라는 책의 광고를 신문에서 자주 보면서 '한번 사서 볼까'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우선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표지의 그림도 인상적이었으며, 빨간색 버버리를 입고 찍은 작가의 사진도 매력적이었다. 어찌어찌하다가 서점에서 그 책을 샀는데 바로 읽지는 못했다. 어느 잠 못 드는 밤에 우연히 뒤져본 책 속의 사연들에 마음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나서  바로 그 책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사람풍경>이라는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을 보니 해외여행과 인간심리의 기본적인 쟁점들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고 되어 있어서 <사람풍경>을 먼저 보고 <천개의 공감>은 나중에 보자고 마음을 정했다. 책을 사서 본 처음 소감은 책 표지는 <천개의 공감>이 훨씬 낫다는 것이었다. 이 책 표지에 나오는 GROTTO라는 이탈리어어를 달고 서있는 두 가지 옷 모양은 마음에 쏙 들지가 않는다. 어쩌면 내 마음 속 방어기제인지도 모르겠다.

심리여행에세이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심리학의 문제와 여행(이탈리아와 프랑스,독일, 뉴질랜드가 대부분인)경험을 풀어쓴 에세이다. 김형경이 처음으로 낸 에세이집이라고 한다. 책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 유럽여행의 경험과 거기에 연관된 심리학의 개념을 소개하고, 자신이 과거에 겪은 어떤 문제들을 분석하고 있다. 어찌보면 고백록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부분 부분 소개되는 글쓴이의 어린시절이나 대학시절, 직장경험을 조립하면서 김형경이라는 사람의 삶을 재구성하게 된다. 태어난 곳은 강원도 강릉이며, 어린시절에는 외할머니 댁에서 자랐다고 한다. 동생이 있었던 것 같고, 부모는 서로 사이가 안 좋았던 것 같다. 결국 부모는 이혼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엄마는 엄격한 편이었으며, 아빠는 중등학교 과학선생님이셨던 모양이다. 일곱 살 때까지 외할머니댁에서 보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어린시절에 엄마와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빠의 뒷모습에 절망했다고 나온 것으로 보면 청소년 시절에도 부모 때문에 마음이 아주 괴로웠던 모양이다. 글쓰기에 재능이 있어서 소설도 쓰고 신문기자도 되었지만 삼십대의 삶이 절망적이었던 것 같다. 40살 무렵에 집을 다 팔아서 마련한 돈으로 9개월 정도 유럽과 뉴질랜드 등지를 떠돌아다니는 여행을 했다고 한다. 이 정도가 내가 이 책을 읽고 대강 추려낸 지은이의 살아온 내력이다. 내가 무슨 여성잡지 기자가 된 느낌이 든다.

이십대와 삼십대가 절망적으로 느껴졌다고 하는데, 그것의 원인을 작가는 대부분 어린시절의 부모, 특히 엄마에게서 찾는다.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린시절의 마음풍경이 공허했고, 그 원인 때문에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겨서 젊은 시절을 행복하지 못하게 보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 때부터 명리학이나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400권도 더 되는 심리학 관련 책을 읽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서는 정신분석도 오랫동안 받았고, 그 경험이 자신의 마음 속에 공허하게 뚫려있던 구멍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은 마음이 평안한 어떤 상태에 도달했다는 느낌인데, 그것을 작가는 여행과 정신분석(어찌보면 누군가가 그의 이야기를 무조건 들어주는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된 상태로 이야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실의 삶을 떠나서 낯선 곳으로 간다는 것, 내 이야기를 비판없이 무조건 들어주는 사람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나는 남자인데도 그의 경험과 심리분석에 많이 공감하게 되었다. 나 역시 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이 알 수 없는 시스템이 결국에는 어린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것을 상당히 정확하게 집어서 자세히 보여준다. 내 경우에는 어린시절에 억압을 많이 느끼다보니 무의식 속에 상당히 많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쟁여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억압적 상황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사용한 심리적 방어기제들도 다양하다. 십대 시절에는 회피와 나르시시즘, 세상일에 초연한 듯이 화내지 않는 착한 사람 행세하기, 어떤 대상에 나를 동일시 하는 것들을 통해서 그 모든 심리적 억압의 상황을 견뎌내는 생활을 해왔다. 스스로 생각해보면 나는 '건강한 자아 중심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른바 인정과 지지를 받지 못하다보니 생겨난 결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많은 콤플렉스의 덩어리이면서도 남들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나름대로의 나르시시즘을 통해서 내 자아를 지키는 방식을 써온 것이 아닌가 싶다. 전형적인 방어기제들을 써 온 셈인데, 그게 결국은 자아의 현실가 대결하는 것을 회피함으로써 자아를 견고하게 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스물다섯살이 지나면 부모를 원망하면 안된다는 서양속담도 있다고 하는데, 결국 지금의 나이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심리를 분석해서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김형경의 책은 그런 길을 자신의 사례를 통해서 잘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종의 멘토 같은 역할을 하는 책이다.

 이틀이면 다 볼 수 있을 정도 책인데, 한번 보고 책꽂이에 꽂아두기에는 아까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번 읽어보고 나에게나 주위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내 보고 싶다. 책 속에 소개한 심리적 개념들을 자세히 알게 해주는 책들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고, 김형경의 <세월>이나 <성에>,<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단종은 키가 작다>같은 소설들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40대 전문직 여성이라는 작가의 위치를 염두에 두고 그의 글을 읽어야 하겠지만, 우선은 편견없이 그의 글 속에 빠져서 공감하고 감동되고 싶다. 다음은 <천개의 공감>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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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케네스 C. 데이비스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상당히 두꺼운 책이라서 도전하기가 망설여지는 책이다. 쪽수를 보니 670쪽 정도 된다. 이 정도면 보통 책의 두 배 정도 되는 덩치다. 그렇지만 책 속으로 들어가면 금방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자신을 느낄 수 있다. 케네스 데이비스라는 작가의 글쓰기 내공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이미 번역되어 나온 다른 시리즈(영어로 하면 Don't know much about )가 상당하다. 우리 나라에서도 상당히 잘 팔리는 외국작가인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번역본 중에서 한 권 정도를 더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필력을 다른 곳에서도 한번 맛보고 싶어지게 된다. <나를 부르는 숲>을 쓴 빌 브라이슨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작가이다.

미국역사를 시초에서부터 현재까지 통사적으로 훑고 있는 책인데도 중간에 지루하지 않고 잘 나간다. 우선 책의 체제가 보통과는 다르다. 시대별로 중요한 물음을 두고 거기에 대답하는 방식이다. 마치 인터넷 게시판에 있는 FAQ처럼 느껴진다. 내가 미국사에 무지한 상태인데도 잘 넘어간다. 예를 들자면, 나는 디즈니의 영화 <포카혼타스>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존 스미스 선장이 뭐하는 사람인지 잘 몰랐다. 그런데, 여기서는 우선 독자 대부분이 존 스미스 선장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알고, 포카혼타스도 누군지 잘 안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한다. 마치 우리나라 역사에서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를 이야기하면 우리는 잘 알지만, 외국인은 그 이름조차 생소한 것과 같은 이치다. 무지를 하나하나 돌파해가면서 새로운 사실을 익혀서 알게 된다.

역시 미국역사의 시점은 콜롬버스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1492년 콜롬버스가 스페인왕가의 후원을 받고 인도와 중국으로 가는 항로를 찾기 위해서 대서양을 건너가기 시작한 지 꼬박 두달 만에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딛게 된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서 함락되면서 중국과 인도와 교통하던 직항로가 사라지면서 유럽인들은 우회하는 길을 찾기 위해서 고심하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이후에 콜롬버스가 아메리카에서 한 일은 앞으로 이 대륙에서 벌어질 일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주민에 대한 학살과 착취, 개척이라는 일은 앞으로 500년 이상 내내 그 대륙에서 벌어진 일이다. 빙하기 때 베링해협을 통해서 건너갔다고 추정되는 그 섬의 원주민들은 사실상 황인종, 그 중에서도 몽골족에 가까운 사람들로 보인다. 시베리아와 만주 지역의 족속들이 가지고 있던 종교와 습속들과 많이 닮아있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문화를 보면 우리는 은연 중에 인디언의 심정이 되어 백인들을 비판적인 눈길로 보게 된다. 인디언이 베풀 친절을 백인들은 침략과 착취로 보답한다. 남미에서 스페인이 벌인 일이나 북미에서 영국이 벌인 일이나 모두가 똑같이 신과 왕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들이다. 어쩌면 그것은 기독교 문명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정신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콜롬버스 이후로 계속된 신대륙 발견의 시대를 유럽인들은 '대항해 시대'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에게는 '대침략 시대'나 '대학살 시대'라고 할 만하다.

미국사의 전환점을 몇개 보자면 1776년에 일어난 독립혁명과 1861년에 일어난 남북전쟁, 1929년의 대공황 같은 사건들을 들 수 있겠다. 2000년에 일어난 911 테러는 겨우 몇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우리가 워낙 민감하게 느껴서 그렇지 미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건은 아니었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많이 바뀌었다는 정도로 볼 만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독립혁명과 내전, 대공황은 미국사회를 그야말로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명적인 사건들이었다. 독립혁명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사건이었다면, 내전은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성과를 내었지만  이후에 영원히 아물지 않는 남북간의 증오와 불신의 시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1929년의 대공황은 자본주의에 대한 미국민의 태도를 많이 바꾸어 놓았다. 기업의 자유에 대해서는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생각을 벗어나서 비로소 경제에 국가가 개입하는 자본주의의 수정을 행한 것이다. 지금의 미국사회와 대외정책을 이해하려면 1929년의 대공황과 그 이후에 미국이 벌인 대외전쟁들-2차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의 역사와 본질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것이 긴요할 것 같다.

미국사의 전개를 보니까 거기에도 독립이후 200여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근본정신이 있다. 미국 정신의 쟁점은 자유와 민주주의, 제국주의에 대한 끝없는 투쟁의 역사인것 처럼 보인다. 미국유권자연맹의 사무실 벽에 붙어있다는 '자유는 영원한 감시의 대가'이다라는 경구처럼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영원한 감시와 투쟁의 결과로 지금의 미국이 이만한 정도로 존재하는 것 같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제국주의 정책과 인종차별, 빈부격차 밖에 보이지 않지만, 미국 내부에는 세계 제일의 국가로 존재하는 만큼의 무수한 장점들이 많은 국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피상적인 관찰이다. 미국의 현재에 대한 분석들도 더 깊이 알아 보아야 하겠고, 미국을 현지에서 경험해보는 것도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한 개의 나라가 아니라, 현재의 세계를 상징하는 나라라고 보면 되겠다. 대한민국을 아는 것만큼이나 미국을 자세히 아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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