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케네스 C. 데이비스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상당히 두꺼운 책이라서 도전하기가 망설여지는 책이다. 쪽수를 보니 670쪽 정도 된다. 이 정도면 보통 책의 두 배 정도 되는 덩치다. 그렇지만 책 속으로 들어가면 금방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자신을 느낄 수 있다. 케네스 데이비스라는 작가의 글쓰기 내공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이미 번역되어 나온 다른 시리즈(영어로 하면 Don't know much about )가 상당하다. 우리 나라에서도 상당히 잘 팔리는 외국작가인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번역본 중에서 한 권 정도를 더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필력을 다른 곳에서도 한번 맛보고 싶어지게 된다. <나를 부르는 숲>을 쓴 빌 브라이슨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작가이다.

미국역사를 시초에서부터 현재까지 통사적으로 훑고 있는 책인데도 중간에 지루하지 않고 잘 나간다. 우선 책의 체제가 보통과는 다르다. 시대별로 중요한 물음을 두고 거기에 대답하는 방식이다. 마치 인터넷 게시판에 있는 FAQ처럼 느껴진다. 내가 미국사에 무지한 상태인데도 잘 넘어간다. 예를 들자면, 나는 디즈니의 영화 <포카혼타스>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존 스미스 선장이 뭐하는 사람인지 잘 몰랐다. 그런데, 여기서는 우선 독자 대부분이 존 스미스 선장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알고, 포카혼타스도 누군지 잘 안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한다. 마치 우리나라 역사에서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를 이야기하면 우리는 잘 알지만, 외국인은 그 이름조차 생소한 것과 같은 이치다. 무지를 하나하나 돌파해가면서 새로운 사실을 익혀서 알게 된다.

역시 미국역사의 시점은 콜롬버스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1492년 콜롬버스가 스페인왕가의 후원을 받고 인도와 중국으로 가는 항로를 찾기 위해서 대서양을 건너가기 시작한 지 꼬박 두달 만에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딛게 된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서 함락되면서 중국과 인도와 교통하던 직항로가 사라지면서 유럽인들은 우회하는 길을 찾기 위해서 고심하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이후에 콜롬버스가 아메리카에서 한 일은 앞으로 이 대륙에서 벌어질 일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주민에 대한 학살과 착취, 개척이라는 일은 앞으로 500년 이상 내내 그 대륙에서 벌어진 일이다. 빙하기 때 베링해협을 통해서 건너갔다고 추정되는 그 섬의 원주민들은 사실상 황인종, 그 중에서도 몽골족에 가까운 사람들로 보인다. 시베리아와 만주 지역의 족속들이 가지고 있던 종교와 습속들과 많이 닮아있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문화를 보면 우리는 은연 중에 인디언의 심정이 되어 백인들을 비판적인 눈길로 보게 된다. 인디언이 베풀 친절을 백인들은 침략과 착취로 보답한다. 남미에서 스페인이 벌인 일이나 북미에서 영국이 벌인 일이나 모두가 똑같이 신과 왕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들이다. 어쩌면 그것은 기독교 문명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정신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콜롬버스 이후로 계속된 신대륙 발견의 시대를 유럽인들은 '대항해 시대'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에게는 '대침략 시대'나 '대학살 시대'라고 할 만하다.

미국사의 전환점을 몇개 보자면 1776년에 일어난 독립혁명과 1861년에 일어난 남북전쟁, 1929년의 대공황 같은 사건들을 들 수 있겠다. 2000년에 일어난 911 테러는 겨우 몇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우리가 워낙 민감하게 느껴서 그렇지 미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건은 아니었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많이 바뀌었다는 정도로 볼 만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독립혁명과 내전, 대공황은 미국사회를 그야말로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명적인 사건들이었다. 독립혁명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사건이었다면, 내전은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성과를 내었지만  이후에 영원히 아물지 않는 남북간의 증오와 불신의 시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1929년의 대공황은 자본주의에 대한 미국민의 태도를 많이 바꾸어 놓았다. 기업의 자유에 대해서는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생각을 벗어나서 비로소 경제에 국가가 개입하는 자본주의의 수정을 행한 것이다. 지금의 미국사회와 대외정책을 이해하려면 1929년의 대공황과 그 이후에 미국이 벌인 대외전쟁들-2차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의 역사와 본질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것이 긴요할 것 같다.

미국사의 전개를 보니까 거기에도 독립이후 200여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근본정신이 있다. 미국 정신의 쟁점은 자유와 민주주의, 제국주의에 대한 끝없는 투쟁의 역사인것 처럼 보인다. 미국유권자연맹의 사무실 벽에 붙어있다는 '자유는 영원한 감시의 대가'이다라는 경구처럼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영원한 감시와 투쟁의 결과로 지금의 미국이 이만한 정도로 존재하는 것 같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제국주의 정책과 인종차별, 빈부격차 밖에 보이지 않지만, 미국 내부에는 세계 제일의 국가로 존재하는 만큼의 무수한 장점들이 많은 국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피상적인 관찰이다. 미국의 현재에 대한 분석들도 더 깊이 알아 보아야 하겠고, 미국을 현지에서 경험해보는 것도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한 개의 나라가 아니라, 현재의 세계를 상징하는 나라라고 보면 되겠다. 대한민국을 아는 것만큼이나 미국을 자세히 아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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