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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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김형경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별 느낌이 없었다. <한겨레>에 실렸던 그의 연재소설이나 심리상담을 그저 그렇게 주목하지 못하고 넘어갔다. 그에 대해 기억하는 정도는 <국민일보>1억고료 당선작인 장편소설 <새는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의 작가라는 것 정도였다. 그러던 참에 이번에 나온 <천개의 공감>이라는 책의 광고를 신문에서 자주 보면서 '한번 사서 볼까'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우선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표지의 그림도 인상적이었으며, 빨간색 버버리를 입고 찍은 작가의 사진도 매력적이었다. 어찌어찌하다가 서점에서 그 책을 샀는데 바로 읽지는 못했다. 어느 잠 못 드는 밤에 우연히 뒤져본 책 속의 사연들에 마음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나서 바로 그 책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사람풍경>이라는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을 보니 해외여행과 인간심리의 기본적인 쟁점들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고 되어 있어서 <사람풍경>을 먼저 보고 <천개의 공감>은 나중에 보자고 마음을 정했다. 책을 사서 본 처음 소감은 책 표지는 <천개의 공감>이 훨씬 낫다는 것이었다. 이 책 표지에 나오는 GROTTO라는 이탈리어어를 달고 서있는 두 가지 옷 모양은 마음에 쏙 들지가 않는다. 어쩌면 내 마음 속 방어기제인지도 모르겠다.
심리여행에세이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심리학의 문제와 여행(이탈리아와 프랑스,독일, 뉴질랜드가 대부분인)경험을 풀어쓴 에세이다. 김형경이 처음으로 낸 에세이집이라고 한다. 책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 유럽여행의 경험과 거기에 연관된 심리학의 개념을 소개하고, 자신이 과거에 겪은 어떤 문제들을 분석하고 있다. 어찌보면 고백록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부분 부분 소개되는 글쓴이의 어린시절이나 대학시절, 직장경험을 조립하면서 김형경이라는 사람의 삶을 재구성하게 된다. 태어난 곳은 강원도 강릉이며, 어린시절에는 외할머니 댁에서 자랐다고 한다. 동생이 있었던 것 같고, 부모는 서로 사이가 안 좋았던 것 같다. 결국 부모는 이혼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엄마는 엄격한 편이었으며, 아빠는 중등학교 과학선생님이셨던 모양이다. 일곱 살 때까지 외할머니댁에서 보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어린시절에 엄마와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빠의 뒷모습에 절망했다고 나온 것으로 보면 청소년 시절에도 부모 때문에 마음이 아주 괴로웠던 모양이다. 글쓰기에 재능이 있어서 소설도 쓰고 신문기자도 되었지만 삼십대의 삶이 절망적이었던 것 같다. 40살 무렵에 집을 다 팔아서 마련한 돈으로 9개월 정도 유럽과 뉴질랜드 등지를 떠돌아다니는 여행을 했다고 한다. 이 정도가 내가 이 책을 읽고 대강 추려낸 지은이의 살아온 내력이다. 내가 무슨 여성잡지 기자가 된 느낌이 든다.
이십대와 삼십대가 절망적으로 느껴졌다고 하는데, 그것의 원인을 작가는 대부분 어린시절의 부모, 특히 엄마에게서 찾는다.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린시절의 마음풍경이 공허했고, 그 원인 때문에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겨서 젊은 시절을 행복하지 못하게 보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 때부터 명리학이나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400권도 더 되는 심리학 관련 책을 읽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서는 정신분석도 오랫동안 받았고, 그 경험이 자신의 마음 속에 공허하게 뚫려있던 구멍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은 마음이 평안한 어떤 상태에 도달했다는 느낌인데, 그것을 작가는 여행과 정신분석(어찌보면 누군가가 그의 이야기를 무조건 들어주는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된 상태로 이야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실의 삶을 떠나서 낯선 곳으로 간다는 것, 내 이야기를 비판없이 무조건 들어주는 사람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나는 남자인데도 그의 경험과 심리분석에 많이 공감하게 되었다. 나 역시 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이 알 수 없는 시스템이 결국에는 어린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것을 상당히 정확하게 집어서 자세히 보여준다. 내 경우에는 어린시절에 억압을 많이 느끼다보니 무의식 속에 상당히 많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쟁여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억압적 상황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사용한 심리적 방어기제들도 다양하다. 십대 시절에는 회피와 나르시시즘, 세상일에 초연한 듯이 화내지 않는 착한 사람 행세하기, 어떤 대상에 나를 동일시 하는 것들을 통해서 그 모든 심리적 억압의 상황을 견뎌내는 생활을 해왔다. 스스로 생각해보면 나는 '건강한 자아 중심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른바 인정과 지지를 받지 못하다보니 생겨난 결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많은 콤플렉스의 덩어리이면서도 남들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나름대로의 나르시시즘을 통해서 내 자아를 지키는 방식을 써온 것이 아닌가 싶다. 전형적인 방어기제들을 써 온 셈인데, 그게 결국은 자아의 현실가 대결하는 것을 회피함으로써 자아를 견고하게 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스물다섯살이 지나면 부모를 원망하면 안된다는 서양속담도 있다고 하는데, 결국 지금의 나이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심리를 분석해서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김형경의 책은 그런 길을 자신의 사례를 통해서 잘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종의 멘토 같은 역할을 하는 책이다.
이틀이면 다 볼 수 있을 정도 책인데, 한번 보고 책꽂이에 꽂아두기에는 아까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번 읽어보고 나에게나 주위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내 보고 싶다. 책 속에 소개한 심리적 개념들을 자세히 알게 해주는 책들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고, 김형경의 <세월>이나 <성에>,<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단종은 키가 작다>같은 소설들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40대 전문직 여성이라는 작가의 위치를 염두에 두고 그의 글을 읽어야 하겠지만, 우선은 편견없이 그의 글 속에 빠져서 공감하고 감동되고 싶다. 다음은 <천개의 공감>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