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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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인 권샘과 술자리에서도 공감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에게는 대단한 야심은 없는 듯하다. 문학사에 남는 걸작을 남기겠다거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겠다거나 하는 류의. 그렇다고 내밀한 자기 토로(나쁘게 말하면 마스터베이션적 글쓰기)도 아니다. '아, 이 이야기 재밌을 거 같아' 그러면서 이야기의 낭비 없이, 문장의 낭비 없이 술술 써내려가고, 그 이야기가 끝나면 다음 이야기로 건너가 새로운 작품으로 들어가는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당대와의 긴장감을 잃지 않는 게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
이번 작품도 이야기로서는 군더더기 없이 단품으로서 깔끔하기 그지 없다. 국내에 소개된 바로 이전 작품인 <게임이라는 이름의 유괴>와 비교한다면 이번 작품의 울림은 조금 더 크다. 그렇기에 아오야마 신지 같은 작가가 영화화를 하지 않았을까. 영화도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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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담은 배 - 제129회 나오키상 수상작
무라야마 유카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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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을 사랑한 오빠,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막내딸, 때늦은 불륜에 빠진 큰아들, 오빠를 잊지 못하는 여동생, 자기 혐오에 빠진 손녀, 전쟁의 악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버지.
이 개인들의 이야기가 별개로서 오롯하게 존재하면서도 그 이야기들은 가족의 이야기로 포개지며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소소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에피소드와 인간 심리를 그려내는 솜씨는 가히 아사다 지로의 수준이면서 세밀한 결, 분위기를 보여주는 솜씨가 대단하다.
마지막 단편에서 전쟁과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다소 분위기가 생경해질 정도로 전쟁의 추악함을 다루는 역사의식을 보면 이 작가가 그저 이야기를 만드는 장인에 멈추려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감탄을 한다.
'나오키상' 수상작,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소설이면서 우리에게 이 작가가 덜 알려져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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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단편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3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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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서 피츠제럴드의 단편들은 <위대한 개츠비>의 변주인 듯하다.
상실한 무엇을 되찾기 위해 다른 무엇을 이루지만 결락한 무엇은 결국 돌아올 수 없다. 되찾을 수 없는 그 '무엇'을 문장으로서 그려내는데 피츠제럴드를 따를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심지어 그 집요함이라니.
너무나 아름답고, 지독하게 처연한 이 단편을 읽는데 많은 힘이 필요하다, 정신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는데 말이다.

세상에는 시간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의 시간과 그녀의 시간 말이다. 그러나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는 순간, 그는 아무리 영원히 찾아 헤매더라도 잃어버린 4월의 시간은 절대로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팔의 근육이 저려올 때까지 그녀를 꼭 껴안을 수도 있었다. 그녀야말로 갖고 싶은 고귀한 그 무엇으로, 분투해 마침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옛날 어스름 속에서나 산들바람 살랑거리던 밤에 주고받은 그 속삭임은 이제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 갈테면 가라, 그는 생각했다. 4월은 흘러갔다. 이제 4월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건만 똑같은 사람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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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맨 - 제임스 브래독, 맥스 베어, 위대한 복서들
제레미 샤프 지음, 박아람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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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헤비급 챔피언, 제임스 J. 브래독에 관한 논픽션.
한때 촉망받는 라이트 헤비급 복서였다가 오른주먹이 골절되며 그의 경력을 깎아먹었고 대공황을 맞아 부두 노동자로서 연명을 해야했던 제임스 브래독과 <모든 여자의 남자>라는 인상적인 제목의 영화에서 주인공으로까지 활동했던 미남 복서 막스 베어의 복서로의 삶을 대조하며 맨주먹에 가깝던 6온스 글로브로 시합을 냈던 1920~30년대 복싱의 영화기를 흥미롭게 그려낸 책.
당시의 기사들의 인용들이 인상적이다. 티비 중계도 없었고 라디오 중계도 근근히 이루어지던 당대에 일반 대중과 스포츠를 매개하는 절대적 권위를 스포츠 기자들이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말빨은 전투적이고 치열했으며 신랄했다.

제임스 브래독이 형편없는 시합 후의 기사들.
"어니 샤프와 제임스 브래독의 대전을 지켜본 후 그 어느 때보다도 제임스가 훌륭한 체스 선수에 잘 어울릴 거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체스에 필요한 스피드를 충분히 갖춘 선수다."

"브래독은 순한 기질과 튼튼한 턱을 가졌다. 하지만 메트로폴리탄 타워에 있는 커다란 시계가 15분에 한 번씩 종을 울리듯이 15분에 한 번씩 펀치를 날렸다. 이것은 종종 권투에서는 부적절한 스피드이다."

"제임스 브래독은 전형적인 거북이 공격형이다. 그는 약 30초 전에 상대의 턱이나 갈비뼈가 있었던 지점에 가장 치명적인 펀치들을 날려댔고, 그의 펀치는 1, 2미터 차이로 안타깝게 표적을 빗나갔다. 브래독의 경기는 더운 여름밤에 보면 좋을 것 같다. 스윙샷으로 시원한 바람을 일으켜줄 테니 말이다."

브래독이 챔피언을 딴 후의 기사
"관중들은 브래독에게 압도당했다. 이 완벽한 영웅을 보라!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패배자. 겸손하며,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이웃집 친구. 아내와 세 아이가 있는 훌륭한 가장. 공황의 희재자. 너무나도 가난하여 구제 기금으로 살아가야 했던 남자. 그러나 자기 자리를 찾은 후 힘들었던 시절 국가에서 받았던 돈을 마지막 한 푼까지 남김없이 돌려줄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사내. 몇 년 전 링에서 자신의 행운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고갈시킨 것처럼 보였던 선수. 그러나 그는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겠다는 꿈을 실현시키고야 말았다! 모두가 지미를 응원한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비록 돈은 반대쪽에 걸긴 했지만 말이다."

"믿기 힘들이 발생했다. 제임스 J. 브래독은 이제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다. 이런 일은 프로 권투 역사상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이 사건은 한 용감한 사내에게 훌륭한 왼손이 주어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브래독 사망 기사.
"만일 죽음이 인간에게 쉽게 찾아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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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 An Inspector Morse Mystery 1
콜린 덱스터 지음, 이정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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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잘난 체 소설일 수도 있게 현학 취미가 농후함에도 작가의 자기 반영성이 즐겁게 노출되며, 심지어 웃기기까지 하다.
병상 추리라는 고전적인 틀(병상에 누워 주변인을 통해 얻은 자료만으로 추리를 수행하는)에 질릴 만도 하지만 모스 경감이라는 캐릭터가 자아내는 속물성이 유쾌하여 즐겁게 읽다.

허나 이 책이 굳이 하드커버로 나올 이유는 무얼까. 이 짧은 분량이. 게다가 해문의 조판의 조야함은 너무나 여전하다. 그리고 모스 경감 시리즈로 왜 8번째 책을 시리즈 첫번째로 잡은 건 졸렬한 상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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