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벽 1 발란데르 시리즈
헤닝 만켈 지음, 권혁준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헤닝 만켈의 '발란더' 시리즈 중 8번째 이야기. 국내 출간작으로는 5번째 이야기.

사실 정통적인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이 책을 평가하면 무지막지하게 재미없다.

트릭과 알리바이를 구성하고 그것을 순간에 허물어뜨리는 빼어난 추리를

과시하는 결정적 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미소지은 남자' 같은 경우의 플롯을

보면 한심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주인공인 발란더는 이 소설에서 오십 줄에 접어들어 끊임없이 인생의 회한을

토하고 당뇨 병력을 걱정하며 전처와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다가 신문에

공개 구혼 편지까지 쓰는 추태와 직면한다.

같은 수사팀의 동료들이란, 정년 퇴직할 날만 기다리며 발란더에게 투정하는 이,

경마 대박을 꿈꾸며 수사에 성의가 없는 이, 남편의 바람에 이혼을 준비하며

아이들의 보챔에 시달리는 이, 발란더의 자리를 빼앗으려 음모를 꾀해

서장에게 모함하는 이. 그리고 서장은 발란더를 불신한다.

걸핏하면 안개에 휩싸이는 스웨덴 남부 이스타드 시를 배경으로 경비견의 지루한 추적과

같은 수사 활동, 그리고 발란더의 쉴새없는 신음 소리가 이 소설의 주조이다.

그럼에도 숨은 자기 학대의 욕구와 직면이라도 한 양, 헤닝 만켈의 발란더 시리즈는

밤샘 독서의 마력을 자꾸 소구한다.

 

(2004.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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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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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미야베 미유키는 이야기를 자꾸 미룬다.
단도직입하여 사건의 정체를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인물을 계속 방사하며
인물의 사연과 사건의 윤곽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인물의 사연은 조금씩 포개지며 벤다이어그램을 넓히면서
버블 경제 이후 90년대 중반이라는 일본이라는 사회를 펼쳐놓는다.
(직전에 읽은 텐도 아라타의 <고독의 노랫소리>를 연상시키면서)
한 의사(pseudo) 가족의 결합과 그 파멸을 에둘러 그리며 함부로 가치판단을 개입하지 않는다.
결코 평범할 수 없는 각개의 인물이며 그들의 사연이지만 그 인물과 그 사연들의 축척이
그 사회의 역사이며 당대의 현실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들이 '지금' 살고 있는
'여기'라는 걸 각개의 악기와 그 합주로 들려준다.
왜 일본의 독자에게 그토록 호응을 얻었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듯하며
그 짐작되는 내 안의 사연에 쓰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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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노랫소리 - 제6회 일본추리서스펜스대상 수상작
텐도 아라타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난자와 정자가 만나 생명을 부여한 부모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고 그 부모와 자식이 느슨하게라도 공동체를 이루는 것, 그것이 가족이라는 거겠지.
핏줄의 인력? 자기 유전자에 새겨진 정보가 익숙한, 또는 유사한 유전자 정보를 가진 타인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 그런 게 아닐까.
그래서 가족의 파편화니 해체니 하는 작금의 경향 속에서 개인은 고독에 익숙해져야만 하고 그 고독 안에서 의사(pseudo) 가족을 구성하고자 한다.
<고독의 노랫소리>는 이 의사 가족의 구성에 대한 욕구가 표출되는 방식을 각개의 인물 안에서 표현한다.
준페이 - 혈연과 의절하고 자기 노래를 녹음기에 담아놓고 소통의 의지를 차단하고 있지만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소통의 욕구와 충돌하는 존재
후키 - 어릴 적 트라우마가 현재의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고 삶을 견인하면서 그 트라우마의 '극복'이 아니라 '회복'을 갈망하는 존재
다카시 - 파괴된 가정을 자기 공상에서 퍼즐 끼우듯 짜맞추며 마지막 한 조각의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조각을 찾아 완결을 추구하는 존재
그리 길지 않은 분량 안에 담긴 세 인물들의 '사연'들은 독자에게 밀착되기에 조금씩 부족하지만 이야기로서 우리는 이해한다. 아마도 그게 우리의 '사연'과 조금씩 포개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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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피아드 -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 세계신화총서 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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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의 첫장만큼 휘황하게
독자를 이끄는 문장을 만나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주술을 걸듯 순식간에 흡입하는 그 첫장.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에는 그런 문장들이 존재한다, 라고 한정 지어버리면
그녀의 소설, 그 이야기의 흡입력을 얼른 언급해야 한다는 강박이 따른다.
이 책 <페넬로피아드>도 너무나 익숙하지만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오디세이아>
(심지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관한 인문서를 편집한 인간조차!)를
바닥에 깔고 지그소 퍼즐 맞추듯 (베짜듯!) 새로운 이야기를
너무나 마거릿 애트우드답게 만들어냈다.
그녀의 소설이 한국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게 참으로 아쉽다.
<이갈리아의 딸들> 같은 어설픈 패러디에 괜히 호들갑 떠는 게 속상할 정도로.
당신에게, 특히 여성들에게 마거릿 애트우드를 권한다
(라고 시건방을 떨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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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 Two Lap Runners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9
가와시마 마코토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돌고래 등선 같은 미끈함과 날렵하게 물을 채는 팔딱임이
이야기 속에서 파득거리는 소설.
묘하게 청소년의 육체를 전시하며 야릇한 성적 코드들 자극시키는 부분이
불쾌하지 않고 그것이 그때다라고 괜히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드는 이야기, 문장들.
이미 십 년 하고도 한참 전인 나에게 용케 잘 지냈구나 하고 머리를 쓰다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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