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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시티
에릭 라슨 지음, 양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1893년, 미국의 역사를 다시 쓴 살인, 광기, 마법
이런 문구가 표지에 걸려있으면 어쩔 수 없이 눈이 돌아간다.
표4를 좀 보자.
1893년, 광랑의 도시 시카고에 자신의 왕국을 건설한 두 남자와 다양한 인간군상이 펼치는 욕망의 패치워크
시카고에 꿈의 도시 '화이트 시티'를 탄생시킨 시카고 세계 박람회 총감독과 살인의 성에서 수십 명을 살해한 미국 최초 연쇄살인마의 대비되는 열정을 통해 인간 본성과 욕망의 실체를 보여주는 창조적인 논픽션!
그리고 두 개의 문구.
작은 계획을 세우지 마라. 작은 것에는 사람의 피를 끓게하는 마법이 없다.
대니얼 H. 번햄, 건축가, 시카고 세계 박람회 총감독, 1893
나는 내 안에 악을 가지고 태어났다. 시인이 영감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나 역시 내 안의 살의를 어쩔 수 없다.
H.H. 홈즈, 의사, 미국 최초의 연쇄살인마, 1896
'미국 최초의 연쇄살인마'를 다룬 논픽션. 어쩔 수 없다.
바로 사서 읽기 시작한다.
'홈즈 어찌하여 약사하길 멈추고 살인을 사랑하게 되었는가'
내가 궁금한 것은 이거다.
허나 이 책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 책의 주인공은 홈즈도 번햄도 아닌 1890년대, 당대의 시카고, 화이트 시티.
홈즈의 쉼없는 사기와 살인 행각도, 번햄의 끓어오르는 건축의 정열도 이 '창백한 도시' 안에서
그것의 존재 이유를 갖는다.
그렇기에 홈즈는 시카고를 떠나서야 그 범죄행각이 밝혀지며 그가 시카고에 세웠던 악의 성(그가 지은 호텔과 그 안의 시체 실험실 및 소각장)은 불에 타 없어지고 그는 시카고 바깥에서 사형에 처한다.
번햄 역시, 그가 총감독한 박람회장은 화재로 전소되며 노년에 유람선 여행 중 박람회 건축의 동료, 프랭크 밀레가 타이타닉 호 침몰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 45일 후 사망한다.
(실상 한 개인의 잔혹한 욕망이나 빼어난 성취와 무관하게) 압도적으로 성장하는 1890년대의 시카고라는 도시 안에서 번햄과 홈즈라는 자기의 성을 짓고 소유한 두 명의 인물과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간 각개의 인간들의 기록을 직조한 논픽션이라 하겠다.
하나의 아쉬움이라면 주해나 뜻풀이가 거의 없이 그대로 번역돼 있다는 점.
(2004.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