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템플 기사단 1
레이먼드 커리 지음, 한은경 옮김 / 김영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이야기는 이렇다.
'바티칸의 보물' 전시회가 열리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중세 템플 기사단원의 복장을 한 괴한이 나타나 암호 해독기를 훔치고 사라진다. FBI 요원 라일리와 고고학자 테스는 이 암호해독기의 행방을 좇던 중 과거 그리스도교의 형성과정에서의 조작과 템플기사단의 비밀에 다가가며 가톨릭의 추악한 실상과 조우한다.

예수, 요새 참 욕본다. <다빈치 코드>에서는 유부남 만들더니 이 책에서는 예수는 가톨릭에서 선택한 한 명의 조작된 인물이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설득적인가? <다빈치 코드>는 그럴싸했다. 그리고 수백만 부를 팔아치웠다. 이 책은? <다빈치 코드>만큼은 설득적이지만 <다빈치 코드>만큼 충격적이지는 않다. <다빈치 코드>는 영리하게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끌어들였고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최후의 만찬>을 머릿속에 박아놓고 그 이미지를 해체하며 이야기를 만들었다. <최후의 템플기사단>은 그런 머릿속 시각적 이미지가 쉽게 형성되지 못하며 그렇기에 부서지는 충격감이 덜한 것이리라. 두 편이 모두 영화로 나왔을 때(<다빈치 코드>는 제작중이고 <최후의 템플기사단>은 애초에 시나리오였다) 그 시각적 충격성이 어느 쪽이 더 강렬하지는 역시 영화의 문제겠지만.

*우연히도 최근 읽거나 작업하는 책끼리 뭔가 포개진다. 1월에 곧 출간될 <아틀란티스로 가는 길>에서는 템플 기사단이 아랍인들과의 교류 속에 중요한 비밀을 얻었을 것이며 해상왕 엔리케 왕자가 그토록 해외 원정을 떠난 이유는 무어인과의 접촉 속에 긴밀한 정보를 획득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리고 엔리케 왕자 당시 그리스도 기사단은 가장 강렬한 무장세력으로 거듭났으며 콜럼버스도 이 종단과 관련이 있었다(콜럼버스의 배 산타마리아 호는 종단의 상징인 붉은 십자가 깃발을 달았다). 또 요새 번역 원고가 들어온 한 팩션에서도 '사해문서'와 관련한 가톨릭 교회의 추악한 면모를 고발하고 있다(현재 딱 반을 읽은 상태에서 재미로는 이 책이 <다빈치 코드>나 <최후의 템플기사단>보다 더 재밌다!).

**함부로 가톨릭의 교리에 대해 욕할 자격은 아니지만 최근의 한국 가톨릭이 보여주는 행태는  욕 먹어 싸다. 특히나 김수환 추기경의 헛소리는 곱게 늙기란 참 어렵다는 걸, 나이는 괄약근으로 드시면 안 된다는 걸 여실하게 보여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ono 2006-01-14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탐나는 리뷰가 많습니다, 솔로님... 괜찮으시다면 share 해주시길... 팩션을 꾸준히 기획하시는 중이군요. 기대 많이 하고 있겠습니다.

한솔로 2006-01-16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hare할 꺼리도 별로 없어요. 그냥 위에서 받아서 일하고 있는지라^^
 

블로그를 시작하며 가끔 읽은 책을 기록하기도 했고 나중에 리뷰로그라는 게 생겨 조금 더 자주 올려놓긴 했는데 업무상 읽어야 되는 책이나 흝어 넘겨야 하는 책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책들도 있긴 하다(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책도).

그래서 여기다가 읽었다는 기록만이라도 남기기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멋진 하루
다이라 아즈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아사다 지로를 좋아한다.

이래도 안 울테냐의 신파를 야쿠자 협박하는 듯이 아니라(야쿠자가 등장인물로는 상당히 등장하나) 상처딱지에 후시딘 바르고 대일 밴드 감아놓으면 어느샌가 딱지가 아물듯(비유가 이상하지만 지금 손가락에 밴드를 붙이고 있어서) 그 신파가 내게 다가와 눈물을 찔끔 흘리게 만들어 좋아한다.

다이라 아즈코는 그녀의 첫 소설 <멋진 하루>로 올요미모노 신인상을 수상한다. 그 심사위원이 바로 아사다 지로. 아사다 지로가 평하길, "제목 그대로 나에게 멋진 한때를 선해주었다. 읽는 동안 내가 심사위원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것은 이 작품뿐이었다."

표제작 <멋진 하루>를 비롯한 6편의 단편이 실린 이 작품집은 아사다 지로의 단편들을 바로 연상시키는 씩씩한 신파의 인물들이 활개친다.

이십만엔을 꿔준 옛 남자친구에게 돈을 받으러가 그 남자친구가 돈을 꾸러 다니는 현장을 함께 목격하는 여자의 하루(<멋진 하루),

임종 직전 집 나간 딸과 상면시키겠다며 딸의 대리 역할을 해달라며 시골까지 끌려간 아가씨의 하룻밤(<애드리브 나이트>),

중매쟁이가 되는 게 꿈인 중년의 부장에게 아끼는 후배가 결혼하겠다며 소개하는 여자가 자기의 불륜 상대였던 아가씨(<누군가가 누군가를 사랑한다>)...

궁상맞고도 지리멸렬한 상황일 수밖에 없는 각개의 사건들 속에서 다이라 아즈코는 신파의 건강한 에너지를 건져 올린다. 그 사건들 속에서 누군가는 상처 입지만 그 상처들은 다시 일어나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상처이고,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는 소소한 삶의 진실을 때로 애교 있게, 때로 천진하게 시치미 떼고 이야기한다.

 

작가 후기를 읽어보면 이 작가, 더욱 맘에 든다.

 

작가 후기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싫은 것 투성이고, 꿈과 희망은 북극성처럼 멀리서만 빛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일곱 살 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엄청나게 비뚤어진 아이여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책만 읽었다. 책 속의 세계가 현실보다 훨씬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좋아한 것은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다. 삐딱한 아이여서 그랬는지 웃는 것은 그런 프로그램을 볼 때뿐이었다. 웃으면 마음이 해방되는 것 같았다. 삐딱한 아이는 그렇게 웃으면서 어느 틈엔가 뻔뻔스런 명랑소녀로 변신했다.

그러나 역시 인생은 만만치 않고, 세상은 비정한 것이다. 어른이 된 후로는 좌절의 연속. 행복할 때도 있었지만 어두운 날들이 더 길었다. 그런 나를 위로해준 것은 다나베 세이코 선생의 유머 소설과 가쓰라 시자쿠의 만담, 그리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독단과 편견으로 가득찬 세상에 대해 수다를 떨고 뒹굴며 웃는 것이었다.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싫은 것들도 외로움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떠오른 이야기들을 적어두었다가 읽어보니 이것이 또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유머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군. 내 차례야. 그렇게 이 일에 힘을 내서 매진하다보니 드디어 나뿐 아니라 남들도 재미있다고 웃어줄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쿡쿡 웃게 되는, 어딘가 자기 이야기 같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어른들의 코미디를.

이제 책을 펼쳐놓고 있는 동안은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하고 이 21세기와 함께 태어난 밀레니엄 유머 작가인 나는 선언한다.

책을 사주신 독자님, 고맙습니다. 다이라 아즈코, 이 바닥에서 마구 설칠 예정이오니, 오래오래 사랑해주세요. 서점에서 후기를 읽고 있는 당신, 듣기 싫은 말 하지 않을 테니 우선 사서 읽어주세요. 그냥 돌아가면 말이죠, 당신 나쁜 사람이에요. 잘 부탁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로테스크
기리노 나쓰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지독히 잔인하다.
방실방실 웃으며 폐부에 칼을 뽑고 한 바퀴 돌리듯 잔인하다.
어떤 등장인물에도 깊은 호감을 가질 수 없을 만치 모든 인물들은
어딘가 끔찍하게 비뚤어져 있고, 그걸 드러내는 데 작가는 일말의 망설임이 없다.
등장인물에 대한 혐오는 읽으면 읽을수록 점층되고 그 등장인물이 표하는
악의들, 역시 점차 강렬해진다. 그리고 그 악의는 인간의 외면마저 추하게 만든다.
그리고 작가는, 역시 잔인하게 "너는 추하다"라고 노골적으로 서로 이야기하게 한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다다르고 작가는 '구원'을 잠시 보여주는 척하다가
인간의 '악의'는 변할 수 없다는 걸, 그 추함은 영원불멸토록 추하다는 걸
확인시키며 매조지한다.
이 지독한 이야기를 침대가에서 해치우고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는 건
내 안의 선함이 그나마의 존재감을 표출한 것일까
아님 내 안의 추함이 이제 나를 뒤덮으러 하는 것일까.
외모의 추함이 그 증거라면 나에게 너무 잔인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뚜유 2005-12-27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보니 더 읽고 싶어지네요. ^^

한솔로 2005-12-27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데도 읽고 나서도 고통스럽지만 자기 안의 마조히즘에 깜짝 놀라실지도 몰라요^^
 
피아노 이야기
러셀 셔먼 지음, 김용주 옮김, 변화경 감수 / 이레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대해 별다른 서평은 필요없다. 일류 피아니스트가 일류 에세이스트일 수도 있음을, 그 황홀경은 책을 펼쳐 내키는 대로 골라 읽으면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내가 내키는 대로 고른 문장들이다.

 

피아노를 아는 것은 우주를 아는 것이다. 피아노를 마스터하려면 우주를 마스터해야 한다.(22-23쪽)

피아노의 아름다움은 변화무쌍한 유연성에 있다. 피아노는 뭐든지 할 수 있으며 뭐든지 될 수 있다. 불한당, 성자,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 물의 요정 옹딘의 목소리를 흉내 낼 수도 있고, 티티새, 벌새, 착암기, 어릿광대, 요부나 나폴레옹의 목소리도 흉내 낼 수 있다. 하지만 피아노의 중심음이 색깔의 어머니인 흰색이 아니라면 이런 목소리를 하나도 횽내 낼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순백색(또는 수수한 회색)만이 그런 도발적이고 난폭한 빛깔들을 감추고 억제할 수 있다. 소리가 너무 아름다우면 우리는 그 포로가 된다.(50-51쪽)

긴장은 불안에서 비롯되고, 불안은 무지에서 비롯된다. (...) 음표가 확실하게 지시되어 있고 전체적인 체계가 질서정연할 경우에는 긴장의 제거가 아니라 긴장의 분배에 해답이 있다. 긴장은 음악의 칼이자 접착제이기 때문이다.(64-65쪽)

그(러셀 셔먼의 선생이었던 쇤베르크의 제자 에드워드 스토이어만)는 당대의 유명인들에게는 관심이 없었으므로, 그의 제자들은그의 커피 탁자에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연주한 베토벤의 7아파시오나타> 음반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직 뜯지 않은 것이었는데, 6주 뒤에도 여전히 그대로 탁자에 놓여 있었다. 누가 물었다. "왜 들어보지 않으셨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장난끼와 빈정거림이 섞인 그 특유의 말투로 이렇게 대꾸했다. "마음에 들까 봐."(116-117쪽)

언젠가 한 학생이 선생님께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D단조>를 클리포드 커즌이 연주한 것이 좋은지 루돌프 제르킨이 연주한 것이 좋은지 물었을 때 선생님은 무뚝뚝하게 이렇게 대꾸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내 음악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데."(118쪽)

베토벤은 숭고하고 순수하며 장엄한 독일 이상주의의 황태자가 된다. 그러나 괴짜이자 과격파이며 모험가인 베토벤은 마약처럼 파괴적이며 중독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우리가 일종의 치료로서의 도피주의에서 경건한 위안을 얻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133쪽)

(현대 스포츠의 환멸적 변화를 비난하고 난 뒤) 야구는 지명타자 규칙이 있긴 하지만, 기술과 전략, 행동과 생각이 이상적으로 조화된 스포츠로 남아 있다. 야구가 건재하는 한 이 나라(미국)는 구제될 수 있다. 핫도그의 기름기가 너무 많고 설익은 것이 탈이지만.(189쪽)

"당신의 편견을 고수해라. 편견은 당신의 유일한 취향이다 - 아나톨리 보로이어드(268쪽)

취향과 지식은 상상력을 연마하고, 상상력은 취향과 지식에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하면 어떨까. 간단한 진리다(실천하기는 간단하지 않지만). 자유분망한 상상력이 분별없는 포괄성에 이를 수 있고, 지식은 갖춘 취향은 확실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상상력 없는 취향은 단순한 멋으로 전락한다. (272쪽)

냉혈한 베토벤. 그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지시를 한다. 열정은 농축된 결심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가르쳐준다. (323쪽)

왼손(반주로서의)은 청지요, 집사요, 시종이요, 가정교사요, 유모요, 완벽한 신사이다. 또한 외손은 배의 선장이요, 심판이요, 자선가이다. 오른손(멜로디로서의)은 저돌적이고, 변덕스럽고, 조울증적이고, 까다로우며, 자비의 천사다. 이 둘은 공존하며 때로는 사이좋게 지낸다. (341쪽)

멜로디는 여전히 여왕벌이다. 다른 목소리들은 열심히 여왕을 보좌함으로써 집단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여왕의 건강과 안녕과 광채가 없으면 집단 전체 - 그리고 곡 -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349쪽)

내키지는 않지만 로큰롤에 대해 우호적인 말을 한마디 하자면, 그 음과 가사 속에 줄기찬 힘이 들어 있다. 평등한 기회라는 이름으로 모든 인종과 종교의 사람들이 출발선에 소환된다. 하지만 메시지가 조악하게 만들어져서 내가 먼저라는 욕망과 집착의 케케묵은 유아독존론으로 타락해버렸다. 방종한 선동과 파괴는 명분 없는 반역이 된다. (35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