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하루
다이라 아즈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아사다 지로를 좋아한다.

이래도 안 울테냐의 신파를 야쿠자 협박하는 듯이 아니라(야쿠자가 등장인물로는 상당히 등장하나) 상처딱지에 후시딘 바르고 대일 밴드 감아놓으면 어느샌가 딱지가 아물듯(비유가 이상하지만 지금 손가락에 밴드를 붙이고 있어서) 그 신파가 내게 다가와 눈물을 찔끔 흘리게 만들어 좋아한다.

다이라 아즈코는 그녀의 첫 소설 <멋진 하루>로 올요미모노 신인상을 수상한다. 그 심사위원이 바로 아사다 지로. 아사다 지로가 평하길, "제목 그대로 나에게 멋진 한때를 선해주었다. 읽는 동안 내가 심사위원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것은 이 작품뿐이었다."

표제작 <멋진 하루>를 비롯한 6편의 단편이 실린 이 작품집은 아사다 지로의 단편들을 바로 연상시키는 씩씩한 신파의 인물들이 활개친다.

이십만엔을 꿔준 옛 남자친구에게 돈을 받으러가 그 남자친구가 돈을 꾸러 다니는 현장을 함께 목격하는 여자의 하루(<멋진 하루),

임종 직전 집 나간 딸과 상면시키겠다며 딸의 대리 역할을 해달라며 시골까지 끌려간 아가씨의 하룻밤(<애드리브 나이트>),

중매쟁이가 되는 게 꿈인 중년의 부장에게 아끼는 후배가 결혼하겠다며 소개하는 여자가 자기의 불륜 상대였던 아가씨(<누군가가 누군가를 사랑한다>)...

궁상맞고도 지리멸렬한 상황일 수밖에 없는 각개의 사건들 속에서 다이라 아즈코는 신파의 건강한 에너지를 건져 올린다. 그 사건들 속에서 누군가는 상처 입지만 그 상처들은 다시 일어나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상처이고,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는 소소한 삶의 진실을 때로 애교 있게, 때로 천진하게 시치미 떼고 이야기한다.

 

작가 후기를 읽어보면 이 작가, 더욱 맘에 든다.

 

작가 후기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싫은 것 투성이고, 꿈과 희망은 북극성처럼 멀리서만 빛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일곱 살 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엄청나게 비뚤어진 아이여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책만 읽었다. 책 속의 세계가 현실보다 훨씬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좋아한 것은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다. 삐딱한 아이여서 그랬는지 웃는 것은 그런 프로그램을 볼 때뿐이었다. 웃으면 마음이 해방되는 것 같았다. 삐딱한 아이는 그렇게 웃으면서 어느 틈엔가 뻔뻔스런 명랑소녀로 변신했다.

그러나 역시 인생은 만만치 않고, 세상은 비정한 것이다. 어른이 된 후로는 좌절의 연속. 행복할 때도 있었지만 어두운 날들이 더 길었다. 그런 나를 위로해준 것은 다나베 세이코 선생의 유머 소설과 가쓰라 시자쿠의 만담, 그리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독단과 편견으로 가득찬 세상에 대해 수다를 떨고 뒹굴며 웃는 것이었다.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싫은 것들도 외로움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떠오른 이야기들을 적어두었다가 읽어보니 이것이 또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유머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군. 내 차례야. 그렇게 이 일에 힘을 내서 매진하다보니 드디어 나뿐 아니라 남들도 재미있다고 웃어줄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쿡쿡 웃게 되는, 어딘가 자기 이야기 같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어른들의 코미디를.

이제 책을 펼쳐놓고 있는 동안은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하고 이 21세기와 함께 태어난 밀레니엄 유머 작가인 나는 선언한다.

책을 사주신 독자님, 고맙습니다. 다이라 아즈코, 이 바닥에서 마구 설칠 예정이오니, 오래오래 사랑해주세요. 서점에서 후기를 읽고 있는 당신, 듣기 싫은 말 하지 않을 테니 우선 사서 읽어주세요. 그냥 돌아가면 말이죠, 당신 나쁜 사람이에요.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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