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꿀벌 7 - 완결
안노 모요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비록 <트럼프스>로 잠시동안 외도를 하긴 했지만(그리고 성과가 좀 아녔지만) 안노 모요코의 장기는 역시 연애물에서 발휘된다. 소위 '쿨하다' 라고 하는 형용사를 완벽에 가깝게 만족시키는 그녀의 캐릭터들, 주로 주체적인 여성들이 등장하는 작품군 가운데에서 이례적으로 남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잡은 이 작품은 그 선택에도 불구하고 이채롭다기보다는 동어반복에 가깝다.

일단 이 작품이 연재된 잡지는 청년지다(영매거진). 그래서인지 기본적인 상황 설정, 코마쯔라고 하는 천하쑥맥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끌고 가는 모습은 소학관 소년잡지에서 시작되어 진화한 전통의 연애물들(전영소녀, 아이즈, 딸기백푸로... 등등, 정확히는 점프쪽 연재물들에서 그 공식이 성립된)에서 나오는 적당히 멍청해서 정겹고도 지겹기까지 한 주인공들의 행각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기존 순정만화에서의 공식을 바꿔 놓은 안노 모요코 만화의 특징은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의 패턴 뒤집기와 개성 강하고 스타일이 탁월한 캐릭터들이 풀어내는 현란한 수다와 유쾌한 오버액션에 있으며 이 작품에서 그녀는 간만에 그러한 자신의 장기들을 유감없이 드러내보인다. 어쩌면 발상과 기본틀이 마사카즈의 매너리즘적인 작품들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이 소위 스탠다드한 영역 밖에서 노는 것은 그러한 그녀의 솜씨 덕이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캐릭터들은 그녀의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실로 거침이 없다. 그게 한심한 모양이든, 쿨한 모양이든, 적어도 행동에 대한 진심을 묻는다면 그들은 당당하다.

또한 이 작품을 청년만화답지 않게 복잡다단하게 만드는 요소는 연애라고 하는 것을 이미 질릴 정도로 다뤄본 작가의 감각이 여성 캐릭터들에게 부여된 탓에 기존의 청년만화에서의 연애물에선 보지 못한 거칠고 쿨하며 동시에 섬세하고 롤렉스시계 속마냥 복잡한 구조의 성격을 지닌 그녀들에게서 빚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당최 고민의 겨를이 없는 한심단순한 코마쯔라는 숫컷 캐릭터의 시선을 빌어 여성들의 심리, 정확하게는 작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성적 연애관을 되짚어보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 점에선 언니들의 재치있고 쿨한 세계관보다는 지독하게 정형화된 우리의 화자 코마쯔의 한심한 행각과 사고관쪽이 보는 이를 지긋지긋하게 만들어준다. 이 부분은 작가의 본바탕이 순정만화쪽에 있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일 수도, 소년만화라는 틀에 맞추려 한 작가의 지나친 오버액션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또한 이 작품의 문제점이라면 그녀의 작품들에서도 소수의 작품군만이 그 재난을 피해갈 수 있었던 특유의 미묘한 용두사미적 흐름과 관심이 없어진 캐릭터에 대한 적극적인 폐기정신이다. 이것은 그녀의 작품이 시트콤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단발마적인 감각에만 목을 매달고 있다는 비판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그 흐름에 철저하게 따라가는 모습이야말로 지독할 정도로 트렌드에 민감한 작가의 사고관을 대변해주는 건 아닌지(그러나 개인적으로 큐티하니 실사판에서 보여준 그녀의 감각은 패션의 패자도 모르는 나에게 꽤나 안도감을 안겨줄 정도의 수준이었다). 지독하게 하드보일드했던 <러브마스터X>의 보다 유연해진 버전인 이 작품은 오랜만에 낄낄거리며 읽을 수 있게 만든 센스 있는 작품이었다(참고로 본인은 딸기 일백푸로를 1권을 채 못 넘기고 던져버린 기억이 있다) 물론 그 안에서 감정과 관계에 대한 무수한 질문들과 답들과 오류들은 각각 진실과 착각을 담고 있다. 그 헛점의 범위가 전성기를 거치고 한동안 헤매면서 보여줬던 그녀의 작품들에 비해 보다 분명히 갈피를 잡고 있는 덕에 그리 크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에 합격점을 주고싶다. 나머지는 그녀의 유희적인 감각이 담당해야 할 몫이고 다행스럽게도 확실하게 유쾌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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