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여신과의 유희 - 바깥의 소설 29
나카무라 신이치로 지음, 유숙자 그림 / 현대문학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이것은 옛것의 귀환이다. 아니, 아니다. 아무튼 이 작품은 1989년에 쓰여진 것이니까. 그 시절은 이미 충분히 오래 전 아니던가.(윌리엄 버로우즈는 60년대에 '벌거벗은 점심'을 썼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작품을 읽으면 자꾸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가 떠오른다.

70살을 맞이한 노년의 화가가 화자인 이 소설은 화자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며 여자와 삶, 예술이라는 일관된 코드가 화자의 육체를 통해 꾸준하게 현현하는 그리 멀지 않은 죽음, 허무, 종말이라는 코드와 어떻게 갈등하는가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과거는 종종 현재가 되고 그것은 그 영향을 현재에까지 늘려놓음으로써 화자의 삶에 영향을 준다.

이 작품이 서머셋 모옴이 '달과 6펜스'를 썼던 시절에나 어울릴 법 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열거한 저 코드들이 보여주는 뻔뻔스러울 정도의 도식성 덕분이다. 이 작품은 예술 상업 소설이라고 불리웠던 서머셋 모옴의 저 유명한 작품처럼 예술의 신성성과 그와 얽히는 작품적 긴장을 이어나가기 위한 장치로 섹스와 삶, 죽음이라는 도식화된 코드들을 방정식 맞추듯이 써먹고 있다는 점에서 동류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우리는 중간쯤만 가도 화자가 죽음에의 영향을 떨치고 삶과 예술에 대한 의식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리라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를 동시적인 영역에 놓이게 만드는 브릿지인 인생유전 에피소드의 힘이 유난히 힘이 딸리는 것 때문에 품을 수 있게된 잡생각 중 하나이다.

'달과 6펜스'를 즐겁게 읽은 나로선 이 작품에 애정이 안 생기더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실리콘 인형을 묘사하듯 부실하게 묘사되는 소녀가 하나 나오는데 화자(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70살이다)와 숨바꼭질 같은 애정질을 하는데다 인생유전상 얽혀있는 관계라는 설정이다. 70살의 이런 낭만이라니, 내가 어찌 이 작품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웬지 엉뚱한 시절에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까지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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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적긁적 2005-01-28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이키드 런치..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구만; 네놈이 크로넨버그의 네이키드 런치가 야하다고 해서 밤새 NHK를 봤던 기억이 새롭군 ㅋㅋ 그 기괴한 타자기가 장정일의 보트하우스에서 그렇게 나올줄이야..ㅎㅎ

hallonin 2005-01-29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트하우스도 읽어봤냐. 의외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