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영화 - 지각의 병참학, 패러다임 총서
폴 비릴리오 지음, 권혜원 옮김 / 한나래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무릇 인간이란 서로를 죽이는 일에 너무도 열심히 몰입하는 존재라 문명의 역사는 곧 전쟁과 살인의 역사임에 다름 없었어라. 기술의 발전은 곧 얼마나 많이, 혹은 효율적인 죽음을 수행해낼 수 있는지 연구한 끝에 얻어진 부수적인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에서 현대 영화에서의 조명과 카메라의 개념이 전쟁으로 인해 태어났다고 설명하는 것에 대해 그리 놀랄 필요가 없다. 지금 편의점으로 가보면 KGB의 이름을 들먹거리는 숙취해소제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을 터이니 한 번 확인해보시라.

이미 이미지는 우리의 삶에 진하게 침식해 들어와 있다. 그래서 이 책의 화두들 대부분이 영화와 이미지의 진화가 전쟁의 양상과 결합되어 있는 세기초에 머무르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자면 당나귀만 타면 패리스 힐튼 본인조차도 어디서 찍었는지 기억도 안 날 미공개 포르노 비디오를 볼 수 있는 이 시대의 시점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고고학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충실하게 저자는 차분하게 영화, 정확히는 이미지라는 괴물과 전쟁의 근친관계를 해부해나간다. 우리는 여기서 이미 시선과 이미지의 전쟁이었던 1차 세계 대전과 이미지의 폭격장이었던 2차 세계대전, 이후 존재했던 수많은 전쟁들과 전시에 이뤄졌던 영화산업의 '참전 양상'을 보게된다.

인간은 오랫동안 너무도 발달한 시각 덕분에 허상의 궁전에 많은 것을 바쳐왔고 바칠 것이다. 나는 본다, 그래서 존재한다 라는 화두는 옛현자들에 의해 깨어진지가 어언 수 천년 전이건만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이미지는 인간을 잡아먹어간다. 우리는 이미 가상의 이미지를 진짜처럼 여기는 것이 습관화되었고([블레어 윗치]와 [알포인트]의 성공을 보라) 동시에 엄청 잘 까먹어버리게 되었다(쫄딱 망한 [블레어윗치]의 속편을 보라). 그것은 마치 더 새롭고 강렬한 이미지를 받아들이기 위한 뇌용량 확보로 보인다. 테크놀로지는 이제 표현 못할 것이 없어보이고(우리는 중간계라는 완전한 가상의 동네에서 정체불명의 종족들이 펼치는 모험담을 봤다) 그 정점을 추구하는 헐리우드는 과거의 유산-신화를 표현하는 대서사극의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그리고 경이적인 광경들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점점 무디어간다. 그 기술적-이미지적인 상호간의 경쟁은 마치 전쟁 같다.

그러나 그보다도 네트는 우리의 일상 속에 쉽사리 스펙타클이 펼쳐지게 만들었다. 우리들 중에서는 닉 버그와 김선일이 참수 당하는 동영상을 자신의 의지와는 별 상관 없이 봐야했던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하룻밤동안 전지현의 결혼의 배경(정작 문제의 기사에서조차 결혼이 취소됐다고 써 있었다)에 대해서 그 어느 때보다 열띤 토론(과 욕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몇 개나 되는지 샐 수도 없는 게시판에 박힌 순진한 제목을 재수없게 누르게 되면 로튼닷컴에서 갓 퍼 온 시에라리온 내전 중에 죽은 이의 입 속에서 기어다니고 있는 구더기 사진을 볼 수도 있다. 정보는 전쟁이 되었다. 이미 정보의 진실성에 대한 문제는 2차적인 것이 되어간다. 정보는 속도인 것이다. 우리는 인류의 멸망을 우리가 죽기 전에 네이버 게시판에서 더 먼저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순간, 혹은 그 순간에야 우리는 죽은 것이다.

이 책이 발간된 것이 1991년이라는 걸 생각해보자. 그 때 우리는 날마다 미국의 미사일이 되어 이라크 건물들을 하나씩 부수고 있었다. 말하자면 저자가 지적한 먼저 보는 시선의 승리의 예가 CNN에 완벽하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폭탄은 목표에 닿아 폭발해버리는 순간 제 시선을 잃어버린다. 그러면 나도 같이 실명해버리는 거다. 지지지직. 난 그 기분나쁜 동영상을 매일마다 봐야하는 것이 정말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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