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9. 이슬비(4)

 

 

 

 

 

 

 

 오늘 점심엔 오랜만에 햄이 나왔다. 계란에 넣어 부친 탐스런 햄이 나의 침샘을 자극했다. 오랜만에 이게 무슨 고기냐, 그 분홍빛을 한입 크게 베어 먹자 이성이 돌아왔다.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하고 살갑게 이야기 했던 적이 언제더라, 생각해보니 오빠라고 부르던 그 인간과의 대화들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그 인간과 대화할 때만 빛이 날수 있었다. 그 인간은 내가 말하는 허접한 이야기도 다 받아주었다. 생각해보면 그 반응들이 전부 과장돼있었던 것 같다. 내가 허무개그 같은 이야기를 할 땐 뒤늦게 박장대소 한다거나, 내가 억울한 이야기를 하면 내가 다 미안해질 정도로 화를 많이 내던 그 인간이었다. 그 인간의 그런 점 때문에 난 중학교 시절을 잘 지낼 수 있었다.

 그 인간의 말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느낌으로 느낄 수는 있었다. 지금도 느껴진다. 그 숨결이, 그 감촉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되는 부드러운 바다의 풍경. 눈을 깜빡거리면 그 풍경이 시뻘건 거품을 내며 사라질 것만 같아서, 눈물이 날 때까지 눈을 감지 않았다.

 

 밥을 먹고 다시 교실에 돌아와 자리에 앉아 수업준비를 했다. 슬비도 내 옆자리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왠지 안심이 되었다. 드디어 무언가가 반듯하게 정리가 된 듯했다. 고개를 돌아 창밖을 봤다. 학교 길이라도 걷고 싶게 만드는 하늘이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슬비의 모습이 하늘 옆에 비쳤다. 슬비 요녀석, 뭐하고 있나 바라보다가 그만 둘이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누구 말할 것도 없이 돌아서서 웃었다. 푸흐흐흐흐흛, 쿡쿡쿡쿡쿡쿡, 하하하하하하하하, 오랜만에 정말 미친 듯이 웃었다.

 “, 왜 쳐다봐? 푸흡!”

 “.... 난 그냥, ! 니가 내 뚫어지게 보는 것 같아서 어쭈 이 녀석 봐라하고 돌아봤지....”

 “뭐어? 난 저 드넓고 푸른 하늘만 바라봤지! 내가 어째 니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겠냐?”

 “..... 쿡쿡! 그려. 내가 착각했네.”

 슬비 얼굴에 조금 해당화가 비친 것 같았다.

 

 종소리가 들리고 우리는 수업에 들어갔다. 다른 반하고 합쳐서 보충과 심화 반으로 듣는 영어시간이었다. 슬비와 나는 보충 반이었기에 교실을 옮겼다. 잘생겼지만 왠지 어정쩡한 느낌이 드는 보충 반 영어 선생님이 열심히 열변을 토하셨다. 우리는 눈에 불을 켜고 들으려고 했지만 그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아 떠들기만 하다가 선생님에게 두 번이나 지목당할 뻔 했다.

 그렇게 수학, 일본어 순으로 수업은 지나갔고 우리들은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다 이해가 쏙쏙 되는 명 강의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머릿속에 들어왔어도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다시 어려워질 테니 나중에 다시 정리를 하자.

 가장 좋았던 것은 수업시간에 슬비에게 어려운 것을 물어볼 수 있는 것이었다. 슬비는 내가 어려워하는 것이 있는 것 같으면 나에게 먼저 다가와 어려운 건 없냐고 물었다. 내가 찰나의 환희를 느끼며 어려워하는 것을 가르쳐주면 슬비는 자기가 아는 범위 내에서 정말 자세히 가르쳐주었다.  아, 난 이런 좋은 친구를 놓칠 뻔 했구나. 새삼 내 안경 속에 있는 쭉쭉빵빵 외계인이 고마워졌다.

 

 청소를 끝내고 종례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저녁을 먹었다. 찬스의 그 시간이 다가오면 올수록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야 오랜만에 나누는 친구와의 대화니까 그런 게 당연할 것이다.

 기름이 둥둥 떠 있는 쇠고기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으면서,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생각해 보기도 하다가, 본론에서 슬비의 고민에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 지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별로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외계인에게 물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히 들었지만 이런 바보 같은 내가 또 무슨 수로 녀석에게 물어보려고 하는 지, 그럴 바에야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나았다.

 

 여전히 해답은 나오지 않은 채로 내 방으로 돌아갔다. 책상아래 바닥에 잔뜩 긴장한 채로 난 기다렸다. 어떻게 이야기를 건네야할까, 어떻게 하면 나에게 찾아온 인연을 빛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나 혼자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생각한 것은 겨우 일상이야기를 앞에 하자.”밖에 없었다. 이때까지 그것밖에 생각하지 못한 내가 바보 같았다.

 이방인의 발소리가 들리는 밤을 지나, 내 방으로 슬비가 왔다. 슬비의 손엔 감자 칩 한 봉지가 들려있었다. 카드가 돌려지고 나와 상대방은 자기들의 패를 확인했다, 이 안개 속 원카드에서 내가 낼 수 있는 패는 일상 이야기갓 짜낸 감정둘뿐이었다.

 “어서와.”

 게임은, 내 선공이었다.

   

 

-

10화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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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방용

 

 


 

 

빨리 드시면 이 그림의 진미를 알 수 없습니다.

천천히 씹어, 맛있게 드십시오.

주방장 비스무리로부터


오늘의 메뉴 : 맛이 알쏭달쏭한 하늘색 티라미수




 

                   세상에서 가장 높은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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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기쁜 날보다 우울한 날이 많았다.

思えば、嬉しい時より悲しい時が多かった。

길을 잃고 멍하니 마음의 벽만을 쳐다보는 때가 많았다.

道を迷ってぼんやりと心の壁を見つめている時が多かった。

하지만 그때의 진짜 나를 찾는 것이 괴로워서

でも、あの時の『本当の自分』を探すのが苦しくて

다 보지 못한 만화 속에만 숨어 들어가 있었다 

読み切れの漫画の中に隠れて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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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8. 이슬비(3)



 오늘도 학교에 빨리 간다. 늘 똑같은 길에, 늘 똑같은 풍경. 하지만 내가 지금 마시고 있는 이 공기는 평소에 내가 마시던 어둡고 축축한 공기가 아니었다. 어둡지만 달짝지근한 공기, 그래서 더욱 더 힘이 나는 공기였다. 이 공기와 함께라면 어느 곳이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에 가서 책상에 잘 봉해진 봉투를 올려놓았다. 봉투의 입에 깜찍한 스티커가 인상적인 꽃무늬 봉투였다. 나는 그 봉투 속 넣어진 편지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 했다.

 

  슬비에게

 

 하이! 니 짝꿍 선우야.

 저번에 내가 너무 집요하게 물어본 거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할게. 난 정말로 니가 걱정돼서 웃겨줄려고 했는데 그게 너무 심했던 것 같아. 정말 미안해! 나쁜 의도는 아니었어.

 근데, 슬비. 미안한데 네가 어떤 고민으로 마음고생 하는 지 알 수 있을까? 알 수 있으면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는데.. 말하기 힘들다면 안 말해도 돼.

 네가 이걸 보고 화 풀었으면 좋겠어!

 

선우가

 

 

 어젯밤에 정성들여 쓴 악필의 문장들이 머릿속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문장을 쓰기 위하여 무한 반복하던 지우개 질도 생각나 부끄러워졌다. , 이 문장들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머리를 쥐어짰는지. 다른 사람에게 나의 생각을 조심히 전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였구나, 새삼스럽게 다시 느낀다.

 슬비의 책상 속에 편지를 재워두고, 엠피쓰리를 들으며 잘 가지도 않는 시간을 보냈다. 내가 그동안 슬비 책상을 열 번 이상 쳐다 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길 줄 알았으면 적당히 늦게 올 것을 뭐 이리 빨리 왔을꼬. 슬비 책상을 살짝 훔쳐 본 횟수만큼 후회하다 나도 모르게 잤다. 수업 종소리에 그때서야 잠을 깼는데, 슬비는 늦잠을 잤는지 헉헉 대며 소보로 빵을 반쯤 입에 끼고 있었다.


 꼬박 하루를 아무 일 없이 지냈다. 아무 일이라도 일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책상 안도 깨끗했다. 슬비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할 수 없지. 이건 슬비가 결정해야 되는 문제니 나는 입 다물 수밖에. 슬비가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하지만 내가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하루를 지내려하면 오히려 욕도, 쓴 웃음도 평소 때보다 많아졌다. 걔가 나를 버린 거야! 걔가 나를 버렸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

 편지를 보내고 나서 이틀이 지났다. 나는 학교에 가 내 책상에 앉았다. 책상 속, 준비해두었던 교과서를 펼치고 예습을 시작했다. 예습한 지 얼마 안 되어 수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은 기계적으로 흘러갔다. 슬쩍 책상 속을 뒤져보기는 했지만 편지는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다른 아이들은 전부 짝을 지어 밥을 먹으러 갔고 나는 잠시 책상위에 드러누워 쉬고 있었다. 수업시간엔 공부하랴 쉬는 시간엔 종이쪽지 하나 없는 책상 뒤지랴 완전히 지쳐버렸다. 정말 오지도 않을 편지에 이렇게 미련이 남을 줄이야. 징하다, 징해.

 그래도 공부는 해야 되니 밥은 제때 먹어야지. 밥을 먹으러 학교식당에 가려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또 책상이 나를 끌어당겼다.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책상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드디어 내가 미쳤나보군. 나는 그 목소리를 떨쳐버리지 못해 이끌려갔다. 그래, 딱 한번만 더. 이번에 정말 뒤져서 안 나오면 나 이 짓 그만둘 거야. 비장한 각오로 책상을 뒤졌다. 책상 깊숙한 곳에 종이쪽지가 만져졌다.

 어?

 바로 꺼내 확인해보았다. 예쁘게 접혀진 종이쪽지의 꼬리에 선우에게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몸 전체에 떨림이 전해왔다. 으왓!!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To. 선우


 편지 잘 받았어. 읽느라 좀 고생했다ㅋㅋ(뜨끔. 나름 잘 쓴다고 쓴 건데.)

 아, 내 걱정해준 건 고마워.

 근데 니가 그때 갑자기 부담스럽게 나오니까 내가 다 부끄럽드라. 그래서 니 눈도 당분간 못 쳐다봤잖아부끄러워서. 그래도 내 걱정해주는 사람은 너 밖에 없네.

 그래서 말인데, 나 선우 니방에 놀러가도 되남? 같이 맛있는 거 먹으면서 얘기 좀 하자. 사실 요즘 답답해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잘됐네! 오늘 저녁 먹고 쉬는 시간에 내가 맛있는 거 사가지고 니방에 갈게. 나중에 방 번호만 알려주라. OK?

 너 그때까지 니방에 꼼짝말고 있어라!

슬비가

 

 

 

 희망이 떠오르고 있었다. 저 산골짝에 걸린 빛나는 해 조각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곧장 달려가 슬비를 안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쪽지를 내 가방에 넣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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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짧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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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드시면 체할 수 있으니

천천히 씹어 맛있게 드십시오.

싸구려 주방장로부터


오늘의 메뉴 : 왠지 애절해지는 수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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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을 하고 싶다.

누구라도 포옹을 하고 싶다.

 

우리의 몸과 맘에 쌓여있던 고물들과

각각의 눈에 비쳤던 하늘과

답답함을 실어 나르던 증기 기관차와

깊숙히 박힌 어둠들을  

같이 불태워버리기 위해서

 

포옹을 하고 싶다.

누구라도 포옹을 하고 싶다.

 

우리의 기운을 하나로 모으고

우리를 동시에 치유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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