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19. + 오빠와 나의 결심과 비밀 이야기(2)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오빠의 쓰러진 모습만이 내 눈앞에서 녹아내렸다.
사람들을 지나 오빠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피가 기분 나쁘게 흐트러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오빠를 안았다. 오빠가 기척을 느꼈는지 움찔했다.
눈을 떴다. 고통이 몰려오는 듯 신음을 냈다. 나를 보고 뭐가 그리도 웃긴지 웃었다. 자기가 쓰러져 있는 데도 웃었다. 볼을 한 대 아니 될 수 있다면 두 대, 치고 싶었지만 돌이 된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빠가 상체를 일으켜 뭔가를 말하려 했다. 정말로 자기 주제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오빠를 눕히고 내 귀를 그의 입에 가까이 대었다. 그가 아픈지 소리를 내었다.
“미안.....”
미안하면 다인 줄 아는지 나에게 사과를 해왔다.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무덤덤한(무덤덤하지 않은)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어둠 속에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넌 이렇게 갈 사람이 아냐, 넌 이렇게 죽을 사람이 아냐. 아니잖아.
응?
“....넌... 열심히 살어...”
기어이 그의 마지막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야, 신. 이건 아니잖아. 이 사람은 아니잖아. 아직 팔팔한 나이대의 사람을 데려다가 어따 쓸려고? 이 사람, 외고도 가야 되고, 사업가도 되어야 되고, 사람들도 도와야 돼. 아직 살아야할 날이 훨씬 많단 말이야. 이 사람이 뭐 잘못한 거 있나? 이 사람이 왜 죽어야 되는 건데? 이 사람이 왜 죽어야 되는 거냐고!
...... 이 뭣 같은 신! 빨리 대답 좀 해봐!!!
별 볼일 없는 신이 응답 하지 않은 채 119가 불려왔다. 그다음은 순식간이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오빠의 가슴에 제세동기가 올려지고 한 몇 번 전기충격 주다가 안 되니까 그냥 포기하고 그 보기도 싫은 흰 천이 오빠 위에 덮어지고 부고를 들은 엄마가 오고 잠시 후에 기절하고 울고 모든 친척들이 모여서 오빠의 영정사진에 절하고 그렇게 발인을 하고.
난 오빠의 영정을 보지도 않은 채 굳어있었고.
밥도 먹지 않았다. 물도 마시지 않았다. 그 곳에 태초부터 존재한 것처럼 있었을 뿐이다. 온몸의 수분이란 수분은 다 증발하게 놔두었다. 여기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싫었다. 짜증났다. 세계 멸망을 살포시 바라고 있었다.
장례식 마지막 날 밤. 조각 모음 하듯이 겨우 겨우 정신을 차린 나에게 엄마가 찾아왔다. 엄마는 당신의 딸을 뒤에서 껴안으며 말했다. “딸, 혹시 엄마 따라 영국 갈래?”
달콤한 한마디였다. 그 곳에 가면 이제 엄마와 이별하지 않아도 된다. 위로 받을 수 있다. 행복해질 수 있다. 하지만 거절했다. 난 오빠의 꿈을 이어나갈 의무가 있었다. 죽을 때까지 그 의무를 이행해야만 했다. 엄마는 어느새 발에 큰 족쇄가 채워진 딸의 결심을 듣고 슬피 울며 더 꽉 안아 주셨다.
그 뒤부터 이모 집에 빌붙어 살며 미친 듯이 공부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방학 개학 가리지 않고 공부했다. 현명하게 공부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몰라 그냥 무식하게만 공부했다. 취미도 음악 감상 빼고는 없앴다. 오직 ‘대명 외국어 고등학교’만을 위해서 공부했다. 그렇게 딱 죽기 직전까지만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내 손엔 대명 외고의 합격증이 얹어져 있었다. ‘해냈어.’
딱 3년, 오빠만을 보고 살아온 인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