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미래의 고전 1
이금이 지음, 이누리 그림 / 푸른책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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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3학년 때다.
2학년때까진 마을에 있는 분교에 다녔었는데 3학년에 올라가면서 십리나 떨어진 본교로 다녀야 했다.
분교에선 한 반 밖에 없어서 중간을 갈라서 1학년과 2학년을 나눠 수업을 했었는데
본교에 가니 한 학년만 4개 반이고, 1학년에서 6학년까지 모두 있으니 내 존재가 한없이 작아보이고 어리벙벙한 기분이었다.
가장 친한 동네 친구와 한 반이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친구와 학교 교정을 이곳 저곳 돌아다니곤 했는데
가끔은 수업종이 울린 줄도 모르고 헤매기도 했다.

학교생활도 낯설었지만 담임선생님 역시 ’체전’이니 뭐니 해서 늘상 출장중이었기 때문에 임시 선생님들로
늘상 바뀌고, 자주 자습하라며 안들어 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래서 반은 항상 시끄러웠고 개중에 유난히 튀는
까불이들이 자꾸 괴롭히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둘째 시간이 끝나고 중간체조를 하러 나가는데 갑자기 앞이 까매진다.
누군가 휙~ 두 손으로 내 눈을 꼭 가린 것이다. 깜짝 놀란 나는 그 손을 더듬었다. 
당연히 동네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만져보니 사마귀처럼 뭔가 나 있는 낯선 손이었다.
뗄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장난스레 힘을 주면서 죄는게 이게 뭔가 싶었다.
손을 떼고 난 다음에 보니 햇살에 비춘 승용이가 눈부시게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갑자기, 모든 소리, 모든 사물들이 다 사라져 버리고, 내 몸이 비눗방울처럼 가벼워져서 공중에 붕 뜬 것 같고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만이 오로지 존재하는 경험을 했다.
그 일이 있고나서 맨 뒤자리의 승용이는 쉬는 시간이면 맨 앞자리인 내 책상앞에 와서 턱을 괴고
나를 보고 웃고 가곤 했다. 그럴때마다 왠지 부끄러워지곤 했다.

<첫사랑>을 읽으면서 내 첫사랑은 언제였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승용기가 떠올랐었다. 
첫사랑이라고 하기엔 어딘지 부족한, 뭐가 뭔지 몰랐던 기억이지만, 아직도 난 그 손의 감촉을 기억하고 있다. 
아주 가끔씩 가라 앉아 있었던 그 기억은 수면 위로 떠올라 빙긋거리게 만들곤 한다.

이금이 작가의 <첫사랑>엔 참 다양한 사랑들이 나온다. 아이에서 노인까지 많은 사람들이 여러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이란 감정뿐만이 아닌 자기만 아는 뻔뻔하고도 이기적인 모습들도 눈에 띈다.
혼자만의 감정일 때는 상관 없지만 둘이 나누는 과정에선 마찰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도 같다.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물과 데이트 비용에 고민하는 아이들의 이벤트적인 연애법에 놀랍기도 하다.
한뼘 쯤 더 자랐을 것 같은 동재가 다음엔 어떤 식으로 사랑할 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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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는 모두 쉿! - 미국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96
돈 프리먼 글 그림, 이상희 엮음 / 시공주니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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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유쾌하다. 상상이 재미난다. 특히 도서관을 아이와 함께 매주 4회 이상 이용하는 내겐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은 더 큰 것 같다. 주인공 캐리처럼 나 역시 책을 좋아하고 '내가 사서 선생님이라면....'하는 상상을
여러번 해봤기 때문이다. <동물원 친구들>이란 책을 읽으면서 책속의 동물들을 초대하는 상상은
발랄하다. 캐리 자신이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동물들도 책을 좋아할 거라는 상상도 가능할 것이다.

내가 사서 선생님이라면.... 나는 서가 정리를 자주 점검할 것 같다.
요즘 도서관에 가면 책이 일련의 번호에 맞지 않게 꽂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책을 보고 제 자리에 꽂지 않고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제 자리에 있지 않으면 다음 사람이 그 책을 찾을 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도서관엔 정식 사서가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쥐꼬리만한 돈을 받기 때문인지 아님 사서라는 직업이 좋아서가 아니라
생계수단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하게 되어서 그런건지 본연의 임무에 대해 충실하진 못한 것 같다.

내가 사서 선생님이라면 캐리처럼 친절하게 대할 것 같다.
친절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기분이 좋다. 아이가 어려서 모자열람실을 자주 이용하는데
아이들이 조금 큰소리 내거나 뛰면 사서 선생님이 너무 엄하게 대할 때가 있다. 
물론 도서관에선 뛰거나 큰소리 내면 안된다. 하지만 취학 전 어린이는 규칙에 익숙하지가 않다.
그래서 좀 더 따뜻한 목소리로 낮게 웃음을 잃지 않고 주의를 주고 싶다.

이 책처럼 도서관에 동물들이 오는 책이 몇 권 더 있는 걸 봤다.
아이들의 입장에선 매우 신나는 상상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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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책 비룡소의 그림동화 77
클로드 부종 글 그림, 최윤정 옮김 / 비룡소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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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책을 전혀 안읽는 사람들 역시 많다.
책을 정말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 보면 참 이상한 노릇이다.
책처럼 건전하면서도 재밌고, 유쾌하고, 생각하게 하고,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도 없는 데 말이다.

형 토끼 에르네스트가 책 한 권을 주워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책이 뭔지 알지 못하는 동생 토끼 빅토르는 책을 뺏으려고 한다. 
형은 빅토르에게 책은 소중하게 다뤄야 하며 글과 그림을 읽는 것이라고 알려 준다. 
그리고 책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정말 다정한 모습으로 형제는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도 하고 
책을 읽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동생에게 일러 주기도 한다. 책의 내용에 빠져들어 책속의 주인공이 자신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현실에선 여우가 토끼의 적인데도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동생에게 형은 "빅토르, 꿈을 꾸는 건 좋아. 하지만 책에 나오는 걸 그대로 믿으면 안돼. 나름대로 판단을 해야지." 하며 절대 변하지 않는 법칙이 있음을 설명해 준다. 
책의 재미에 푹 빠져 있던 토끼 형제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바로 여우가 슬금 슬금 다가온 것이다. 이때 형제는 보던 책으로 여우를 때려 물리친다. 
그러면서 형제의 책이란 정말 쓸모있는 것이란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 책은 책이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해줘야 할때나, 책이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지 가르쳐 줘야 할 때 제격인 것 같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이 책을 봄으로써 재미와 가치를 깨닫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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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허생전.양반전 외 하서명작선 42
김시습.박지원 지음, 김연호 역해 / (주)하서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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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염라왕 박생): 2010년을 맞이하며 양계(인간세상)의 속인들에게 교훈이 될만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이렇게 좌담회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제 소개를 드리면 저는 남염부 염라왕을 맡고 있는 박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최랑선녀님과 만복사소녀님, 홍생선인님 모셨습니다.




최랑선녀: 안녕하세요.

만복사소녀: 안녕하세요

홍생선인: 네, 반갑습니다.




사회자(염라왕 박생): 그럼 먼저 새 해를 맞이하여 덕담이라고나 할까 뭔가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씀을 들려주시겠습니까?




최랑선녀: 네, 제가 먼저 말씀을 드리지요. 독자 여러분들은 제가 이생규장전에서 남편 이생과 함께 불꽃같은 원앙금침의 사랑만을 나눈 것으로 알고 계시겠지만, 사실은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제 남편 이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용모는 욘사마를 저리가라할 정도로 꽃미남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성격을 보았을 때는 너무 소심하고 답답한 구석이 없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처음으로 상면하여 청춘남녀의 사랑을 불태울 때도 부모님의 꾸중이 무서워서 머뭇거리기도 하고, 또 지방의 농장으로 근신유폐 되었을 때에도 제가 먼저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양가부모님들을 설득시켜 혼인을 성사시켜냈던 것입니다. 홍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아녀자인 저를 내버리고 자신만 도망을 쳐서 결국 제가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던 것이구요.




사회자(염라왕 박생): 네, 사실은 그랬었다고 말할 수 있죠. 또 최랑선녀님 집안에서 중매쟁이를 보냈을 때 이생의 부친이 취한 태도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군요. 왜냐하면 결국 혼례의 모든 비용까지 신부측으로부터 뽑아내고야 말았으니까요.




최랑선녀: 네, 그렇지만 제가 오늘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그런 저의 남편과 시댁의 허물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그렇게 좀 모자라고 답답한 배필이라 하더라도 결국 두 사람이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런 단점들을 능히 덮어주고 보완하면서 큰 탈 없이 서로 의지하고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이죠.




만복사소녀: 최랑 언니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구요, 저도 나름대로 느낀 점을 말해 볼께요. 저는 자칫 처녀귀신으로 저승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부처님의 자비로 인해서 양생 총각을 만나게 되었고, 살아서 미처 알지 못했던 운우지락을 누린 후에는 다시 좋은 곳에서 환생할 수도 있었죠. 제가 남녀의 연분을 얻지 못하고 숨을 거둘 때, 사실은 얼마나 원통하고 서러웠는지 몰라요. 그래서 지금도 양계의 짝이 없는 외로운 남녀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고 안쓰럽고 그렇답니다.




사회자(염라왕 박생): 네, 그래서 주위의 어떤 분들은 만복사소녀님이 자유연애자, 연애해방론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만복사소녀: 네,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제가 생각하는 자유연애나 연애해방은 서구식의 일탈적이고 무책임한 쾌락주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밥을 먹고 성장하고 또 소꿉놀이 동무들을 사귀어 나가는 것처럼, 남녀의 연애를 꿈꾸고 이성을 그리워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거죠. 그런데 속세의 인간들에게는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100년 전만 같아도 벌써 아비와 어미가 되어 있을 나이의 청춘들에게 미성년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춘정을 억지로 틀어막기도 하고, 무슨 혼인이니 정절이니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칭칭 동여매서 옴짝달짝 못하게 하려 하는 것 같아요.

산 계곡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갈 때에도 오로지 한 길로만 흘러갈 수는 없는 법인데, 어찌 음양의 조화로서 이루어지는 남녀의 화합을 하나의 물길로만 가둘 수 있겠습니까.




사회자(염라왕 박생): 만복사소녀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만복사소녀님의 취지는 ‘연애해방’이라기 보다는 ‘무위연애’라고 해야할 것 같군요. 어떤 인위적인 속박도 치워버리고 음양오행 자연 그대로의 남녀의 화합을 추구하고 서로 인정하자, 뭐 이런 말씀이 아니신가요?




만복사소녀: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자연한 구속과 겉치레들을 다 없애버리고 나면, 오히려 남녀의 연애와 관련된 불필요한 강박이 사라져버리기에, 속세의 인간들이 좀 더 맑은 눈으로 이 우주 삼라만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될 것 같아요.




홍생선인: 네, 만복사소녀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관점에서 말씀을 드려볼까 하는데요, 그러니까 금오신화의 독자들 중에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니까 저를 비롯하여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결국은 유한계층이 아니었느냐 하는 것이죠. 농민들이 땀 흘려 곡식을 길러내고 노비들이 온갖 수발을 다 들어줄 때, 고작 술잔이나 기울이고 음풍농월하면서 남녀상열지사나 꿈꾸었다는 것입니다.




사회자(염라왕 박생): 나름 일리 있는 비판이라고 생각됩니다. 금오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다 양반이거나 귀족 집안의 청춘남녀이고 생산노동이나 생업에 종사하는 삶과는 동떨어진 생활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홍생선인: 네, 그렇지만 그거야 우리의 잘못이 아니고, 금오신화의 작가이신 김시습 선생의 태생과 인식의 한계였다고 생각되고요, 다만 이 자리에서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의 시대는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없어지고 누구나 경제활동에 노동으로 참여하게끔 되어 있기에, 그에 맞는 새로운 가치관의 부연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최랑선녀: 네, 맞아요. 제가 이승에 살아 있을 때는 시녀 향아가 연애편지도 전달해 주고 그랬지만, 지금 연애하는 청춘남녀들은 연애편지 정도는 스스로 알아서 상대방에게 전해줘야겠지요.




사회자(염라왕 박생): 네, 그럼 지금까지 여러 선인들의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요. 잠시 쉬어가는 의미로 새 해를 맞이하는 까치들의 춤을 보기로 할까요?







깍깍깍!!! 깍깍깍!!!

새 해가 밝아온다 깍깍깍!!!

봄이 오면 나뭇가지 쪼아서 둥지를 만들고 깍깍깍!!!

어여쁜 알을 낳고 새끼들을 품어내어 깍깍깍!!!

앞동네 뒷동네로 펄펄 날라다니자 깍깍깍!!!

푸드득~!! 푸득! 푸드~득!!!










사회자(염라왕 박생): 네, 설날 아침 기쁜 소식을 가져온다는 까치의 춤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인간세상으로 다시 환속하셨던 두 분을 마저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때 푸른 옷의 동자승에게 이끌려서 민생(한생)이 소홍낭자(기씨선녀)를 안고 들어와서 자리에 앉는다.




사회자(염라왕 박생): 한생 선비님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민생(한생): 아, 지금 저보고 말씀하신 건가요? 저는 한생이라는 사람이 아니고 민생이라고 하는데요...




최랑선녀: 한생 선비님, 제가 말씀 드리죠. 선비님께서는 지금 기억을 못하고 계시지만, 선비님께서는 전생에 고려국 개성에서 살고 계시던 한생이라는 분이십니다. 워낙 문장에 뛰어나셔서 박연용궁에까지 초대되어 용궁 공주님 별당의 상량문도 지으셨지요. 그리고 그 인연으로 용궁 공주님을 속세에서의 지금의 부인으로 맞이하시기도 하였구요.




이때 그만 민생의 품 속에서 잠들어있던 소홍낭자가 잠에서 깨어난다.




소홍낭자(기씨선녀): 넨넨넨네~~~ 넨네~! 넨! 넨!!(만복사소녀의 옥비녀를 가리키며)




사회자(염라왕 박생): 아무래도 만복사소녀님께서 소홍낭자에게 그 옥비녀를 잠시 빌려드려야겠군요.




만복사소녀: 호호호... 역시 기씨선녀님 다우시네요. 아무것도 기억하시지 못하시면서도 이 옥비녀가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알아보시는가봐요.(머리에 꽃았던 옥비녀를 소홍낭자의 손에 쥐어주며) 이 옥비녀를 손에 쥐었던 사람은 천수를 다할 때까지 무병장수한답니다. 호호호...




사회자(염라왕 박생): 양계에 환속하셨던 한생 선비님을 굳이 이 자리에 잠시 모신 것은 선비님께 몇 가지 일러드릴게 있어서입니다.




만복사소녀: 네, 그렇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저희들이 선비님께 간곡히 당부드릴 게 있어서입니다. 선비님이 속인의 몸으로 다시 환속하신 것은 바로 소홍낭자 때문입니다. 소홍낭자는 본시 (고)조선의 왕가의 피를 이어받으신 분이시며, 천상에 계실 때에는 하계 백성들의 희노애락 중 노여움과 슬픔을 다스릴 수 있게 해주는 진노와 위안의 업을 관장하시던 분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속세 백성들의 생활이 극도로 궁핍해지고 미풍양속은 사라졌으며 온갖 탐욕과 승벽, 분노와 좌절만이 차고 넘치기에, 이를 도저히 묵과하실 수 없으셨던 옥황상제께서 친히 기씨선녀님을 인간세상에 직접 내려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기씨선녀님이 장성하실 때까지의 양육과 보호의 책무를 한생 선비님과 박연용궁의 공주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소홍낭자(기씨선녀): 넨넨네~ 아뽀~야 누노야~~ 아~~~ 아~~




홍생선인: 그러니 선비님께서는 다소 재주가 있고 재물이 있다고 하여도 그것이 혹여나 본인의 총명함이나 우월함으로 인한 것으로 여기고 교만하거나 방탕해서는 안될 것이며 항상 겸손하고 경계하는 마음으로 일관하셔야 할 것입니다.




최랑선녀: 여기 계시는 여러 선인님께서도 선비님과 소홍낭자를 보호하고 도울 것이니, 저는 소홍낭자에게 의기(義氣)와 재능(才能)를 드릴 것입니다.




만복사소녀: 저는 소홍낭자에게 무병장수(無病長壽)와 재물(財物)을 드릴 것입니다.




홍생선인: 저는 소홍낭자에게 벽사(辟邪)와 은인(恩人)의 인연을 드릴 것입니다. 소홍낭자의 첫 번째 은인은 월계서원에서 만나게 될 것이니, 월계서원에서의 모든 인연에 대해서 소홀함이 없도록 하십시오.




사회자(염라왕 박생): 자, 그러면 이제 해야할 말을 다 하였으니 이 자리를 거두도록 할까요?




민생(한생): 여러 귀하신 분들의 지당하고 지엄하신 말씀을 가슴깊이 새겨 한 치의 어긋남도 없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새 해 아침이 밝아오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으므로, 크게 누를 끼치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저희 월계골에 잠시 들리셔서 콩국수라도 한 그릇 드시고 가시는 게 어떠신지요? 마침 어제 저녁에 콩을 삶아놓은게 있습니다.




최랑선녀: 호호호.. 제가 콩국수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아시고.... 여러분 어때요? 잠시 들러서 콩국수 한 사발 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요?




만복사소녀: 네, 좋아요. ㅋㅋㅋ

홍생선인: 크~~ 콩국수 그거 좋지요...하하




사회자(염라왕 박생): 네, 그럼 월계골 소홍낭자네 수간초당에 잠시 들러서 콩물을 먹물 삼고 국수가락을 붓발 삼아 이 자리에서 못 다한 회포를 풀어보도록 하지요.




일동: 하하하... 호호호...

소홍낭자: 넨넨네~~




선인들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깊고 맑은 밤하늘에 울려퍼지자 들짐승들이 귀를 쫑끗 세우고 날짐승들이 눈을 두리번 거린다. 그 와중에도 탐욕과 아집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무심히 코만 곯아대고 있다...













2009년 12월25일

금오신화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에 가슴 아파하며

민생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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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하드 럭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요시토모 나라 그림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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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어머님이 좋아하는 작가다.
나는 일본작가 중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류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
그렇다고 이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이상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어머님께 읽어보시라고 빌렸는데 어머님은 구입해서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 내가 읽게 되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은 키친을 읽은 게 전부다.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키친을 읽으면서 문장이 짧고, 쉼표가 참 많이 들어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선지 주인공들의 마음을 문장이 아닌 내 마음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쉼표가 눈에 많이 띄는 걸로 보아 작가의 특징인 것도 같다.

이 책은 작가에게 실제 있었던 일을 글로 쓴 것이라고 한다. 
죽음을 다루고 있다. 읽으면서 내게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했던 시간이 있었음을 상기하게 되었다. 

그 하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대학 학력고사를 보고 난 겨울이었다.
광주에 있는 작은 아버지 댁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날, 마을 친구의 자살을 알리는 전화가 왔다.
후드득, 눈물이 쏟아졌다. 머리가 텅 비어버린 것도 같았고, 시간이 정지해버린 것도 같았다.

그 친구는 같은 마을에서 살았지만, 마을 친구들과의 어울림은 없었다.
섬에서 사는데도 사투리 쓰는 것을 경계하며 표준말을 썼고, 공부를 꽤 성실하게 했다.
여기서 성실하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 본 느낌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그런대로
우수했던 내게 그 친구는 아주 아주 열심히 시간을 아끼며 공부하는 데도 나보다 나아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참으로 건방떤 모습이었다. 고 3때 통학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학교 근처 고모댁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그 친구는 집안 사정으로 고모댁 아래집에서 ,숙식을 제공 받고 가정교사를 하며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러면서 친해지게 되었는데 어느 날 그 친구와 같이 밤을 보내게 되었다.

염세주의에 빠져있던 나는 살기 싫다는 얘기를 했고, 그 친구도 뜻밖에 자살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오늘 밤 자정에 '같이 죽자'는 말을 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자살을 생각해왔던 나인데 정작 그말을 듣는 순간, 더럭, 겁, 이, 났, 다.
어찌해서 그 날을 넘겼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랬는데 진짜로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왠지 슬픔보다는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저미는 아픔과 자살을 방조한 것 같은 죄책감에 오랜 동안 시달렸였다.
엄마께서 부적까지 해 주실 정도로.
지금까지도 그 친구는 내 꿈에 이따금 등장한다. 여전히 그 모습으로 내게 손을, 내밀고 있다.

죽음은 이렇게 생각지 못하게 다가올 수도 있고, 간암으로 돌아가신 내 할머니처럼 예견된 죽음을 
지켜보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사람의 삶은 유한하며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아이를 갖기 전까지 내 소원은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 아닌
고요히, 맞는 그런 죽음이었다. 지금은 아이가 있어선지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내 소원이지만 말이다.


하드 보일드란 말이 무슨 뜻일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더니 계란을 완숙(hardboiled)하면 더 ’딱딱해(tough)’지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1930년대 미국 문학에 나타난 창작 태도로 현실의 냉혹하고 비정한 일을 감상에 빠지지 않고 간결한 문체로 묘사하는 수법이다 라고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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