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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주스 가게 - 제9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ㅣ 푸른도서관 49
유하순.강미.신지영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4편의 재미있는 중단편 이야기들이 있는 책이다.
그 중에서 '올빼미, 채널링을 하다'라는 작품을 읽고 나도 감흥이 일어 <<우주여행, 출발>>이라는 소설작품을 써 봤다.
'올빼미..' 외에 다른 3편의 작품들도 모두 재미있는 작품들이다.
그러니깐 강추^^;
한편, 열화와 같은 독자들의 기대에 못이기는 척하며 <<우주여행... >>을 아래에 덧붙인다.ㅋㅋ
<<우주여행, 출발!!>>
"아빠는 말이지 젊었을 때 눈이 높았단다."
굽지도 않은 식빵 사이에 치즈를 끼워서 먹으면서 아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냥 돈벌고 옷입고 멋내고 그런데는 관심도 없었지. 그런 것 보다는 이 세상이 어떤 이유로 존재하는지, 어떻게 시작이 되고 흘러왔는지에 대해서 더 궁금해 했단다."
우리 아빠의 우주여행 이야기가 또 시작되었다.
"그래서 기회만 된다면 지구 위에서의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우주여행을 떠나고 싶었지. 우주 끝에까지 가서 이 세상의 모든 이유와 시작과 끝을 보고 싶었던 거야."
이제 아빠는 물컵을 내려놓고 양말을 신기 시작한다. 아빠 출근시간인 4시50분이 되었나 보다.
"만약 외계우주인이 나타나서 우주선에 초대를 한다면 벌떡 일어나서 쫓아가고 싶었단다. 20대와 30대에는 말이야."
우리 아빠는 병원에서 밤에만 일하는 계약직 노동자다. 처음에는 그 우주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밤에 일하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우리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서 계속 밤에만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너희 셋을 다 낳고 너희들이 한참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쯤 해서 우주인들이 찾아온 거란다."
아빠는 나이가 들면서 우주여행 이야기의 빈도수가 더 늘었다. 처음에는 1년에 한 두 번씩이더니, 요즘 들어서는 1주일에 한 번씩은 꼭 우주여행 이야기를 한다. 자기가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우주인들이 다른 정치가나 과학자들보다도 아빠를 찾아온 것이라고 하면서.
"그래서 내가 그때 그랬지. 다 좋은데, 난 아이들이 있어서 지금 갈 수는 없다고. 아이들이 마흔 살이 넘었을 때 다시 오면 안되겠느냐고. 그때는 두 말 없이 따라나서겠다고 그랬지"
잠깐, 이 얘기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얘기이다. 그 우주인한테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고?
"아빠는 너희들이 마흔 살이 될 때까지는 꼭 옆에서 지켜주겠다고 마음 먹었었거든.. 하하"
그러고 보니 엊그제가 동생들의 마흔 번째 생일이었다. 우리 아빠는 여든 셋, 대단한 슈퍼맨이다. 아직까지 병원에서 밤샘근무를 하고 있으니.
"이제 너희들 셋이 모두 마흔 살이 넘었으니, 내가 너희들한테 해야할 바는 다 한 것 같고 앞으로는 나도 쉬엄쉬엄 내 갈길을 가야겠다. 그래도 괜찮겠지?"
아빠는 우리 3자매에게 최고의 수학선생님이었고 만능과외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비리리한 학교에서보다 아빠에게서 모든 공부를 다 배웠다. 나중에는 요리학원과 제과제빵학원도 같이 다녔고 우리 자매들의 자식들도 전부 우리 아빠, 그러니까 아이들의 할아버지가 다 키워주셨다.
"아빠는 이제 출근한다. 너도 이따가 저녁 잘 챙겨먹고 너무 늦게 자지말고 일찍 자라. 40대부터는 진짜 자기몸 관리를 잘 해야되."
얼렁뚱땅 아무렇게나 옷을 걸쳐입고 현관문을 나서는 아빠. 옷은 저렇게 막 입어도 병원에서는 우리 아빠에게 일을 그만두라는 소리는 하지 못한다. 겉보기는 저래도 일 하나는 뒷말이 없게 말끔하게 해놓으니, 바라는 것은 많고 일은 적게 하고 싶은 젊은 사람들이 도저히 우리 아빠의 일솜씨를 따라올 수가 없다.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누으니 어린 시절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 부모는 3살 터울의 나와 쌍동이 동생들을 키우느라 꽤 힘들었다고 한다.
엄마 아빠, 동생들과 함께 한 방에 있을 때면, 나는 곧잘 우주여행 놀이를 했다.
내가 방문을 닫으면서 "자, 이제 우주여행 떠날 시간이에요.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영! 출발!" 이라고 외치면,
아빠는 "쉬이잉 이제 우리는 토성에 도착했어요. 쉬이잉 이제는 목성이에요." 라고 장단을 맞춰줬고,
나는 다시 "이제는 남극이에요. 모두들 내리세요" 이러면서 놀이를 마치곤 했다.
깜박 잠이 들었나보다.
꿈속에서 나는 다시 우주여행놀이를 하고 있었다.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영! 출발!!"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아니라 아빠가 숫자를 세고 있었다.
빙그레 웃는 아빠의 얼굴, 내가 4살 때의 옛날 그대로의 아빠의 얼굴이다.
따르릉, 따르르릉
"아... 여보세요?" 시계를 얼핏 보니 지금은 새벽 4시30분.
"여기 병원인데요, 문제가 좀 생겨서.. 아버님께서 쓰러지셨어요."
"아.. 네... 아버지는 우주여행 가셨는데.."
"네? 여행이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아버지께서 어제 출근하셨다가 일 다 끝내놓으시고 오늘 새벽에 병원에서 쓰러지셨다고요. 따님께서 바로 오셔야겠어요. 저기... 지금 영안실에 계세요."
아무 욕심 없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만 있었던 마음씨 착한 아빠, 그래서 우리가 어릴 때 찾아왔던 우주인들이 다시 아빠를 찾아왔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