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엘리베이터 - 제9회 푸른문학상 동시집 시읽는 가족 14
김이삭 외 지음, 권태향 외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세 아이 뒤치닥거리를 하다보면 하루가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시간이 쏜살같다'는 말을 진짜로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하루 중 잠시의 짬을 내서 책꽂이에 꽂아 둔 책을 넘기다보면 어쩐지 '아자!'하고 힘이 나는 것도 같다. 특히 길지 안으면서도 그 안에 이야기가 충분히 들어 있는 동시 한 편을 읽고나면 청소를 하면서도, 설겆이를 하면서도 그 이야기가 다시 생각이 나곤 한다.

 

<향기 엘리베이터>라는 시집의 표지를 보니 '제 9회 푸른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다. 올해는 또 어떤 시인들을 만나게 되나 설레어 하면서 한장 한장 넘기다 보니 어느새 그만 한 권을 다 읽고 말았다.  그 중에는 깨알 같은 재미를 주는 시도 있고, 우리의 현실을 깨닫게 하는 시들도 있다.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은 시들을 몇 편 소개해 본다.

 



 

 

 

 

사이다 병

                 - 김이삭

 

바다 밑에 떨어진

사이다 병 하나

 

-와, 여기서 쉬고 가야지.

말똥성게가 잠시

쉬었다 가고

 

-와, 멋진 집이다.

집게가 며칠

잠자다 가고

 

누가 자고

누가 쉬었다 가는지

환하게 보이는

바다 식구들의

민박집이다

 

공짜로 묵어 가는

공짜로 놀다 가는

 

 

바다에 누군가가 사이다 병을 버렸나 보다. 그런데 그 병에 여러 바다 식구들이 와서 머무르고 간다는 표현이 재미난다. 바다에 쓰레기를 누가 버렸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보다 먼저 사이다 병처럼 공짜로 묵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나도 좀 쉬었다가, 놀다가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굴렁쇠

                 - 정형일

 

 

드르르르륵

밤늦게 돌아오시는 아빠 굴렁쇠

휴일에도 일하시는

엄마 굴렁쇠

 

빙그르르르

학교에서 독서실로

언니 굴렁쇠

미적미적 학원 가는

나도 굴렁쇠

 

스르르르릉

넘어질 듯 넘어질 듯

굴러가는 굴렁쇠

구르지 않으면

넘어지는 굴렁쇠

 

 

좀 슬퍼지는 시다. 우리집만 해도 네 살된 큰 아이를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빠도 일하러 나가고 나면 겨우 저녁에야 가족이 만난다. 나는 5달된 쌍둥이를 보느라 전업주부가 되었지만 쌍둥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정말 바쁘게 살아가는데도, 열심히 살아가는데도 왜이리 마음이 허전하고, 삶이 숨가쁘게 느껴지는 걸까?

 

 



 

 

이름 짓기

                - 송명원

 

마당에 엎드린 강아지는

털이 누렇다고 누렁이

 

닭장 안의 닭들은

구구 운다고 구구

 

할아버지와 일 가는 황소는

이랴 이랴 한다고 이랴

 

무엇이든 금방금방 이름 짓는

우리 할머니

 

그럼, 할머니 이름은?

 

팔남매의 막내로 태어나서

말순이, 김! 말! 순!

 

 

 

빙그레 웃음이 나오는 시다. 어렸을 적 길렀던 동물들이 떠오른다. 강아지 하나를 두고도 가족마다 다르게 불렀었다. 점이 있다고 점박이, 멍멍 짖는다고 멍순이, 털이 북슬거린다고 곰이... 이름은 부르기 쉬어야 한다. 쉬운 이름이 정감이 가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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