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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ㅣ 그림책 보물창고 55
로버트 브라우닝 지음, 케이트 그리너웨이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9월
평점 :
좋은 책이 어른들과 아이들에게 주는 혜택은 단순한 즐거움과 심미감뿐만이 아니다.
밝은 면과 아울러 어두운 면도 있는 이 세상과 인생에 대한 다면적이고 깊이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는 어른과 어린이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하찮은 시궁쥐들을 처리하는 사람은 그 마을에서 하찮은 사람일수밖에 없었다.
그가 어떤 눈빛을 지니고 그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는 멋진 피리솜씨로 온 마을사람들이 골머리를 앓던 쥐떼들을 물리쳤어도,
쥐떼가 사라진 다음에는 그 사람이 시궁쥐 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하잘것 없는 일을 한 것이라고, 너는 하잘것 없는 거렁뱅이라고 비웃어댄 다음에,
그 마을에는 미래와 희망과 웃음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하멜른시에 대하여,
하찮은 피리부는 사나이는 마을 아이들의 실종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교훈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런데 이 책 속에 등장하는 하멜른시는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저 이야기속의 마을 이름일뿐일까?
서울 거리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선 고층건물들을 바라보면서,
그 위험하고 하찮은 건설노가다를 짊어졌을 수많은 피리부는 사나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우수한 두뇌와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시간급 단순노동자로 취급받고 있는
수많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과 IT노동자들도 생각이 난다.
보따리장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대학의 시간강사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냉동창고와 용광로의 불길 속에서 한많은 청춘을 마감한 이름 없는 젊은이들도...
땀과 근육으로 피리를 불건, 지식과 기술로 피리를 불건,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고 쓰고 있는 수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하대와 천대를 받으며 한숨쉬고 있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피리부는 사나이들을 생각해 본다.
이런 우리의 현실이 파렴치했던 하멜른시와 비교해서 뭐가 더 낳을 게 있을까?
우리집에서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히면서,
우리가 사는 이곳에도 배신당하는 피리부는 사나이와 앞뒤말이 다른 배부른 자들이 존재한다는 것과,
미래와 희망과 웃음이 없는 이 곳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를 말해 줄 것이다.
우리 귀여운 아가들아, 밥그릇 빼앗기지 말고 꼭 붙들고 살아야 한다.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