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그림을 그리다보면 어렸을 적 생각이 난다. 70년대 시골에서 태어난 까닭에 요즘처럼 학용품이 넉넉하지 못했고, 먹고 살기에도 바빴던 부모세대는 아이들에게 조기교육은 커녕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무관심했었다. 사실 우리 마을 어른들 중에서는 고등교육까지 제대로 받은 분들도 몇 안되었다. 어쨌든 그림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닷가다. 그땐 국민학교 일학년이었던 것 같은데 바닷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떠오르지 않지만 반 친구들 모두가 바닷가에서 처음으로 꽃을 그리라고 했던 것 같던데 나는 꽃을 어떻게 그려야할지 몰라서 당황하고 있었다. 사실 그림보다도 너무나도 멋진 12색의 크레파스에 온 정신을 빼앗겼던 것도 같다. 그때에 비하면 요즘은 참 다양한 재료와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내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다 보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다. 우선 지렁이와 달팽이를 좋아하며, 색깔은 초록을 좋아한다. 아이는 혼자 그리는 것 보다 엄마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며, 가끔은 엄마가 먼저 그릴려고 하면 제지하면서 자기가 그리고 나면 이쪽에 이 색으로 칠하라고 지시하기도 해서 속으로 ’권위주의형’이 아닌가 생각이 들때도 있다. 아이와 그림을 그리다보면서 아이의 성장을 느낄 때도 있다. 처음엔 선만 그리더니 제법 모양을 만들어가기도 하고 색칠을 하기도 한다. <그림으로 상상력 키우기>라는 책(?)에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려보았다. 이 책은 펼침면에 각각의 이야기를 던져주어 아이들이 나름대로 그림을 그리게 되어 있다. ’무었때문에 겁을 먹었을까’라는 글에 맞추어서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이는 지그재그를 그리더니 이건 애벌레라고 말했다. 그리고 위쪽에 지렁이를 그렸다. 아래쪽 상자모양에는 색칠을 했다. 주제하고는 좀 동떨어져 보이지만 아이는 애벌레가 똥을 쌌다고 지렁이가 기어간다고 말했다. 굳이 제시문과는 상관없을 지라도 그 제시문이 아이에게 주는 즐거움이 있나보다. 다음날도 다시 그 페이지를 찾아서 엄마와 같이 그림을 더 그리자고 한다. 그래! 아직 세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 무턱대고 주제에 맞게 그리라고 하기 보다는 일부 그려진 그림들과 주제문에서 전달하는 다양한 느낌들만 해도 충분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책은 아이와 2~3년동안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아이가 다시 이 책을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은 또 다를 것이다. 책의 형식으로 묶어져 있으니 책꽂이에 꽂아 놓을 수도 있고, 조금 그렸던 그림을 시간이 지난 후에도 다시 그릴 수도 있고, 단순히 그림이 아니라 거기엔 추억과 이야기가 녹아 있는 책이 될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