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마중불 - ‘우리나라 좋은 동시 문학상’ 수상작 동심원 13
정두리 지음, 성영란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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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리 시인의 『마중물 마중불』이란 시집를 만났다.
시들을 가만히 읽다보니 며칠동안 술렁거리던 마음이 잠잠해지는 것 같다.
왠지 편안해지고, 옛 추억 속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든다.

<밤길>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다고!’
밤길 걸으며
부러 발소리 크게 낸다

그래도
속으론 쪼끔 무섭다

귀신도 걱정할 거다
혼자 밤길 걷는
저 작은 아인 누군가 하고

그러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귀신은 없다



<마중물 마중불>

펌프질할 때,
한 바가지 물 미리 부어
뻑뻑한 펌프 목구멍 적시게 하는 물을
예쁘게도 ‘마중물’이라 부르지

어두운 길,
손전등으로 동그랗게 불 밝히며
날 기다리는 엄마
고마운 그 불을 나는 ‘마중불’이라 부를 거야


고등학생 시절 학교는 마을에서 십리가 떨어진 면소재지에 있었다.
어느 가을 저녁 집에 돌아왔더니 아빠께서 엄마 감기약을 사왔냐고 물으셨다.
그제서야 나는 생각이 났다. 친구들과 수다떨며 돌아오는 길에 약국에 들려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아빠는 몹시도 화가 나서 지금 당장 가서 사오라고 하셨다.
해가 떨어진 시각 십리길을 다시 걸어 약을 사와야 한다는 생각에 아빠가 몹시도 원망스러웠지만
그 원망이 오기로 바뀌면서 '그래 가서 사오지 뭐'하며 십리 길을 걸어서 약을 사서
다시 십리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깜깜한 밤 하늘에 빛나는 별이 아니었다면 길가
여기저기 보이는 묘뚱에서 금방이라도 나올것만 같은 귀신때문에 울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동네 어귀에 못미쳐 손전등을 들고 서성거리던 엄마 얼굴을 보는 순간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먼저 들었다. 감기로 힘들텐데... 친구네 집에 갔겠지 생각하셨던 엄마는 진짜
약을 사러 간걸 알고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엄마가 꼭 안아주셨을때 괜한 설움과 원망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할매 식당>

수제비, 손칼국수 맛있다는
할매 식당
간판 없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며 찾아온다

부엌 한쪽에서
멸치 국물이 끓고
둘둘 밀어 놓은 밀가루 반죽을
쓱쓱 썰 동안

손님은 물을 떠다 먹고
젓가락도 챙긴다
좁지만 빈자리 없는 식당

그 식당 할매
이태 전에 돌아가셨다

이 식당으로 네 식구 먹고사는 거,
달아낸 방까지 손님 앉히고도
기다리는 사람 있다는 거

할매 이름 언제까지 불리게 할는지
멀리 간 할매는 알고 있을까?


예전에 종로3가에서 근무할 때다. 근처에 칼국수 골목이 있었다. 그 골목을 따라들어가면 각종 칼국수 집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항상 문전성시를 이룬 곳이 바로 할머니 칼국수 집이었다. 가격도 싼데다 양도 많고 더 달라고 하면 무조건 더 주는 곳이었다. 직접 칼국수를 만드는 것을 볼 수 있고, 겉절이 맛이 일품이었다. 겨울에 눈이 내리는 데도 밖에서 파라솔 간이 탁자에 앉아서 먹었는데 좁은 골목에 차가 들어오면 먹다가 일어나서 탁자를 치웠다가 다시 먹곤 했었다. 요즘도 있는지 이 시를 읽으니까 그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쟁이 벽 타기>

가볍게 일렁이는
푸른 손, 손
그 속에 발을 감추고

높다란 벽을 타고
발발발 부지런히 오른다

너희들은 절대로
내 작은 발
볼 수 없을걸,
보이는 것만
보는 눈을 가졌다면

담쟁이가
하늘 향해 흔드는
손바닥의 푸른 손금은
더욱 모르지?



시인은 역시 보이지 않은 것까지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나보다. 시골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담쟁이. 담을 타고 뻗어가는 것을 보노라면 사실 놀랍기까지 한다. 항상 손을 닮았다고 생각했지 시인처럼 발을 닮았다는 생각은 미처 해본적이 없다. ‘그래! 과연 발일 수도 있겠구나’. 푸른 손금이 있는지 몇 개 남지 않은 담쟁이들을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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