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뜸 헤엄이 -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5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5
레오 리오니 지음,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199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 길어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기 어려운 뱀장어...‘

이 부분을 읽고 나니 여름방학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바닷가에서 보내곤 했던 고향마을이 떠오른다. 아마 그해는 중학생 시절이었을 게다. 어느 날 오후 썰물이 되어 바다 속에 숨어있던 갯바위가 제 몸뚱이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을 즈음 동네 아낙들은 ‘갯것’을 하러 집을 나선다. 물론 아낙뿐이겠는가. 아이들은 두말할 것도 없다.

물이 빠지고 있는 갯바위 틈에서 나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뱀장어 한 마리를 만났다. 게으름을 피운 것인지 아님 다른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인지 이 녀석의 운이 억세게 나빴던 것이다. 나는 이 녀석을 본 순간 동물적 충동을 느꼈다. 평소에 낚시질 가서 고기를 잡아도 물리는 재미만 느낄 뿐 잡힌 생선은 만지기 싫어 남에게 빼달라고 했던 내가 그날따라 징그러운 그 녀석을 꼭 내 손으로 잡고 말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두 손으로 홱 잡으려는데 얼마나 미끄러운지, 또 어찌나 꿈틀대는지 잡고 놓치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오기가 발동했는지도 모른다. 나와 뱀장어의 사투는 십여분을 넘기고 있었고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마침 그 광경을 목격하신 이웃집 아저씨가 뱀장어를 순식간에 잡아 바위에 철썩 던져버리는 바람에 우리의 대결은 결국 아저씨의 승리로 끝이 나 버렸다. 재수가 억세게 나빴다는 것으로 이후 뱀장어의 운명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헤엄이』를 보면서 바닷가에서 이십여 년을 살았던 내가 고향을 떠올린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땅위에 인간만이 아닌 여러 동식물이 살아가듯 바다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선 그런 모습을 판화 기법을 사용해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엔 가재를 만난 장면을 보면서 헤엄이가 도대체 얼마나 작을까를 상상했고 아주 작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내가 생각했던 가재가 아니라 킹크랩이었다. 뱀장어도 우리 고향의 작은 뱀장어가 아니라 더 길다란 뱀장어 같다. 이 그림책이 전하는 내용은 헤엄이가 친구들을 잃는 슬픔을 겪고 나서도 절망하지 않고 다른 친구들을 만났을 때, 과거의 슬픈 경험을 교훈삼아 비록 약하지만 뭉치면 산다는 지혜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친구들과 겉모습이 달라도 소외당하지 않고 상생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도 같다.


『새앙쥐와 태엽쥐』나 『프레드릭』의 그림은 사실 끌리지 않았다. 그러나 『헤엄이』는 멋지게 표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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