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가장 커다란 장점은 여러 가지 다양하면서도 재미있는 사례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육을 먹는 사례에서부터 그 유명한 철학자 벤담이 아직도 미이라가 되어 의결권만 행사하지 못할뿐이지 아직도 그를 기리는 연례 회의에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래서 특히 사례들을 중심으로 아주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저자가 관광명승지를 감상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마치 관광가이드처럼 '정의'와 '도덕'을 밝혀나가는 방법과 수단에 대해서만 객관적으로 소개 하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가서 공동선이요 연대요 하면서 그냥 그저 그런 도덕수필 수준으로 미끄러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런 저런 화려한 철학자들의 이름도 내걸고 재미있는 사례들도 많이 소개 했지만, 결론은 '가족이 중요하다', '시민의식이 중요하다', '참여하고 봉사하자' 등등등의 어디서나 줏어들을 수 있는 무난하고 익숙한 공익광고 수준으로 내려앉아 버린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결론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온 셈인데... 사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현대 미국사회의 정의와 도덕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 뾰족한 답이 없다.

2년전쯤에 들은 이야기로는 미국사회에서도 상류층과 지식인층에서는 사교육 열풍이 장난이 아니라고 하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대학과 전공으로 아이들을 밀어넣어야 장래가 보장된다는 얘기로 이해하였었다. 

개척정신? 부모와 자녀의 독립성? 자유와 기회의 평등? 뭐.. 그런건 지금도 미국 학교 교과서에는 몇 줄의 문구로 남아있을 지 몰라도,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현실과 교과서 문구와의 괴리는 거의 비슷한 것 같다. 미국사회가 스스로 붕괴하고 전세계의 패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도 기정사실인것 같고.. 다만 그 계기와 시기가 어떻게 되느냐만 문제인 것 같다.

 이 책은 상류층으로 편입되기를 원하는 아이들이, 장차 여러 모로 부딛히게 되는 정의와 도덕 논란에서 어떻게 하면 그럴듯하게 자기 꼬리를 감추고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훈련으로서는 유용할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해서 하루하루가 먹고 살아가기에 바쁜 사람들에게는 진열장 건너편에서 반짝이는 보석들처럼 그냥 멋있게 보이기만 할 뿐인 것 같다.

나 자신에게도 사회의 정의가 어떻게 되는지, 도덕이 어떻게 되는지는 주관심사가 아니고.. 그것 보다는 부동산 시세가 얼마나 더 미끄러질지, 언제쯤이면 좀 더 큰 평수의 전세로 전세금을 떼일 염려없이 들어갈 수 있을지, 하는 것들이 '정의'와 '도덕' 보다는 훨씬 훨씬 더 중요한 관심사이다.

장래에 우리 아이도 이런 복잡다단한 문제에 대하여 흥미와 관심을 갖고 자기도 어떻게 해서든 상류층에 한 발 걸치고 싶어할지는 모르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황새 쫓아가고 싶어서 길지도 않은 다리를 늘이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럴 시간에 짜장면이나 매운탕 한 그릇이라도 더 맛있게 끓이는 방법을 연구해서 나중에 분식집이라도 하나 차려서 잘 먹고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렇게 그저 먹고 숨쉬면서 살아남는 것, 그게 우리 가족의 정의이고 도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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