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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아는 분이 최규석의 팬인것 같다.
그 분의 블로그에 갔다가 최규석이란 분을 알게 되었고,
왜 그리 열광하는지 궁금해서 작품들을 찾아보았다.
제일 먼저 읽은 책이 바로 <대한민국 원주민>이다.
표지만 봐서는 전혀 만화책의 느낌이 없다.
오히려 사회과학 관련 책일 것 같다.
저자 프로필 사진을 보니 남자답게 시원스레 생겼다.
'책머리에'를 살펴보니 그냥 재미위주의 만화가 아닌 것 같다. 잠깐 소개해 본다.
'... 전통사회의 바닥에 깔려 있다가 느닷없이 닥쳐온 파도에 밀려 끝없이 떠돌아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 갑자기, 그리고 너무 늦게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마치 물 마른 강바닥에서 소용도 없는 아가미를 꿈벅대는 물고기처럼 미처 제 삶의 방식을 손볼 겨를도 없이 허우적대야 했던 사람들. 그들을 키웠던 곳은 흔적을 찾을 수 없이 자취를 감추었고 그들의 일상이었던 것들은 이제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게 되어버린 사람들. 나는 그들을 '대한민국 원주민'이라고 이름 붙였다.'
표제에 대한 설명이지만 아직은 모르겠다. 등장인물을 살펴보니 가족의 이야기인 것 같다.
'어디에나 있다'
빌딩이 있는 도시의 자투리 땅에 할머니가 채소를 심고 있다.
옥수수나무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젊은이들은 공원 풀밭에서 앉아 있는데 할머니는 쑥을 캐나 보다.
"하이갸~ 곱다야~"
몇년 전 봄, 남편과 함께 집 주변을 산책한 적이 있다. 천변을 걷다보니 끝까지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 어떤 50대 부부가 호미로 돌무더기와 쓰레기를 치우고 계셨다. 뭘하시나 보니 그 버려진 작은 땅을 밭으로 만들려고 하시는 것 같았다. 저렇게 오염된 땅에 채소를 심으면 그 채소는 온전할까라는 생각을 잠시 품었던 것 같다. 뒷산에 갔더니 이번엔 여러 분들이 산 중턱에 호미로 개간을 하시고 계셨다. 중간에 '경작 금지'라는 푯말이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그때 남편과 '우리도 호미들고 올까?'하며 웃었는데 땅에서 뭔가 가꿔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땅만 보면 뭔가를 키우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이 책은 그야말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란 것을 알게 되었다.
소제목이 있고 두페이지로 이야기는 시작되고 끝이 난다.
몇 페이지를 읽다가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나와 내 이웃의 어린시절 이야기이다.
어린시절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엄마는 장사를 나가면서 8살짜리
아이에게 동생을 딸려서 학교에 보낸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고 결국
계란볶음밥을 한가득 볶아주고는 방안에 아이를 둔 채 문을 잠갔다고 한다.
결국 엄마는 다시 돌아와 우는 아이를 업고 고갯길을 넘었다고 한다.
어른이 된 작가는 어느 새벽 그때의 일이 생각나서 소리내어 운다.
아흐~~ 가슴이 애려~~
'변하는 건 없다(한미 FTA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이 부분은 읽고 이해를 못해 남편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남편은 읽더니 다시 한번 읽어보라고 했다. 다시 읽고 나서야 이해를 했다는...
미국쇠고기 문제로 2007년 참으로 떠들썩 했다. 그때 나도 만삭의 몸으로 청계천과 서울광장을 찾았었다. 미국쇠고기뿐만 아니라 한미 FTA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서 세계의 흐름이 그렇다고 말하지만 나는 글쎄 그런 말들에 박수를 보낼 수 없다. 대기업 살리자고 농산물 내주고, 중소기업 망하게 되면 대기업에게는 여러모로 유리하겠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벼랑끝에 몰리게 될 것이다. 언제 위정자들이 서민들 생각한 적 있었던가. 문제는 서민들이 정신 차려서 자기 밥그릇 지키려고 나서야 되는데 정신줄 놓고 위정자들의 말을 그대로 읊어대는 모습엔 기가 차기도 한다.
'국가는 왠만해선 망하지 않는다. 언제나 망하는 개인이 있고, 그 비율이 많거나 적거나 할 뿐이다.'
'장녀 3'
여성상위시대라는 말이 있다. 여성들의 지위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여성이 남성보다 지위가 높아진 것은 아니다. 나도 직장생활 십년이 넘게 해보았는데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낮다. 하지만 우리 어렸을 적엔 어땠는가. 아들에겐 따뜻한 쌀밥 주고 딸은 아들의 따뜻한 밥을 짓는 역할을 했다. 작가의 집도 그랬나 보다. 이 땅의 많은 장녀들이여! 이제는 결혼해서 자식을 키우고 있을 그대들, 자신의 자식들은 평등하게 키우시길...
중간 중간, 작가는 등장인물인 가족들과 그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을 빌어 적어 놓았다. 성인이 된 현재의 모습을 스케치해서 그려놓았다.
'출세'
참 재미나게 읽은 대목이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형의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난생 처음으로 서울을 다녀오신 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친척집에서 묵게 된 부모님은 빈손으로 가기가 그래서 식빵을 사로 갔는데 식빵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림을 보면서 눈물나게 웃었다.
'뭐 크다 큰 비료 푸대 같은 데 똑 보로꾸(시멘트 블록) 겉이 생긴 기 질따람 하니 들어 있는 기라.'
'원주민'
마지막 이야기다. 서울로 상경해서 노인이 된 부모님은 마당을 남새밭으로 만들고, 베란다는 고추 말리는 데 쓰고, 시멘트 기둥에는 직접 거둔 콩으로 쑨 메주들을 달아 놓으신다.
앞으로 30년쯤 후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우리도 저런 모습일까?
아마도 아닐 것 같다. 우리는 땅을 잊어가고 있다.
시멘트에 갇혀 있다보니 땅의 소중함과 생명력에 대한 기억은 그저 유년시절을
회상할때나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최규석이란 작가는 정말 리얼리스트다.
요즘 우리들을 보면 남에게 없어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있어’ 보일려고 치장을 한다. 그런 우리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살라고 말하는 것도 같다. 나였다면... .어쩌면 감추고 싶었을지도 모를 기억이었을 텐데 그 모습도 그에겐 값진 삶이었나 보다. 아마도 그건 그가 자신의 가족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조금은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