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크뤽케 ㅣ 사계절 1318 문고 12
페터 헤르틀링 지음, 유혜자 옮김 / 사계절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것을 하나 고르라면 나는 전쟁을 꼽고 싶다. 전쟁은 수백년 아니 수천년동안 이어온 문명을 삽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기도 하고,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앗아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서는 여전히 전쟁은 진행형이며, 오히려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들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은 평화롭게 사는 것을 원하지만 전쟁을 일으켜 이익을 보는 소수의 힘있는 자들의 농간에 오늘도 신음하고 있다.
여기 전쟁에서 아버지가 전사하고, 기차역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열세 살 소년이 있다. 목적지가 이모네 집이었던 소년은 혹시 이모네 집에서 엄마를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모네 집은 폭격을 맞아 사라졌고, 이모의 생사도 알길이 없다. 밤낮 혼자 폭격속을 떠돌아 다니던 소년은 한쪽 발을 잃고 목발을 짚고 다니는 크뤽케(목발)를 만난다. 온전치 않은 몸을 가누는 것도 힘들터지만 크퀵케는 소년을 받아들인다. 나치주의에 반대하고, 다소 무뚝뚝해 보이기까지한 크뤽케가 소년을 만나고 함께 살면서 따뜻한 본성이 드러나는 과정이 감동적이었다. 죽을 고빌르 수차례 넘기고, 드디어 독일에 정착하게 된 크뤽케와 소년은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소년의 마음 속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어느날 엄마와 연락이 닿은 크뤽케가 소년과 함께 엄마를 만나게 되고 소년 몰래 사라지는 크뤽케의 모습에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다리를 잃은 크퀵케와 아버지를 잃고 엄마와 헤어진 소년은 전쟁의 희생자이다. 이들은 혈연이 아닌데도 육친의 사랑에 버금가는 우정을 나눴다고 본다. 그 우정을 통해 인간이 서로 나눠야 하는 것은 총부리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일깨운다.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한반도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내게 이 책은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되묻는 것도 같다.
페터 헤르틀링의 작품은 처음 접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 관해 평론해 놓은 책을 읽은 적이 있어서 낯설지는 않았다. 아마 크뤽케가 작가의 분신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