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채인선 글, 이억배 그림 / 재미마주 / 2001년 1월
평점 :
몇 해 전 여름에 나 홀로 고향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집에 오니 남편이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뭐하느냐는 물음에 방긋 웃음을 날리며 어떤 만두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구운 만두...라는 말에 남편이 냉장고에서 만두를 꺼내더니 굽기 시작한다. 식탁 위를 살펴보니 그제서야 만두를 만들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보통 명절때면 만두를 빚어서 먹는 집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사는 시골에선 그런 풍습이 없었고, 자라면서 한 번도 만두를 직접 빚어본 적이 없는 나는 너무 신기해서 옷을 갈아입은 후 본격적인 만두만들기에 돌입했다. 남편으로부터 소를 어떻게 만드는지, 만두 소를 넣은 만두의 피를 어떻게 모양 내야 예쁜지 가르침을 받으면서.... 그렇게 만든 만두를 냉동실에 얼려놓고 두고 두고 삶아도 먹고, 구워도 먹고, 국도 끓여 먹었다.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는 참 풍성한 느낌을 주는 이야기다. 읽으면서 재미와 그 넉넉함에 반하고야 말았다.

아주 아주 손이 큰 할머니가 있다. 무엇이든지 하기만 하면 엄청 많이, 엄청 크게 하는 할머니.
해마다 설날이 다가오면 할머니는 만두를 빚는다. 아주 아주 맛난 만두, 숲 속 동물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아 한 소쿠리씩 싸 주고도 남아 일 년 내내 냉장고에 꽉꽉 채워 두는 만두를 오늘 만들려고 한다.

숲 속 어린 동물들이 조르르 와 앉아 할머니를 돕는다. 김치가 많이 들어가야 맛이 나니 김치를 있는 대로 다 꺼내오고, 숙주나물은 넉넉히, 숙주나물이 많이 들어가니 두부도 그만큼, 다른 것들이 다 많이 들어가니 당연히 고기도 양껏! 꺼내시는 할머니의 얼굴엔 함지박만한 웃음이 있다.

그런데 이 많은 만두소를 어디다 버무릴까. 할머니는 헛간 지붕으로 쓰는 함지박을 끌어 와 거기다 만두소를 몽땅 쏟아 놓는다. 실로 엄청나다고 밖엔 할말이 없는 모습이다. 이 만두소를 넣을 만두피 역시 만만찮다. 할머니의 큰 손이 일을 시작하면 어깨가 들썩여지고 노래가 술술 나온다.
할머니는 어린 동물들에게 만두를 빚자고 엄마 아빠를 모셔오라고 한다.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모여 듭니다. 지난 설에는 꼬박 일주일을 빚었는데 올해도 어마어마 할 거라며 벌써 부터 걱정이다. 이들 부모들과는 달리 어린 동물들은 마냥 신이 난다.
숲 속 동물들이 모두 모여 만두를 빚는 장면은 참으로 보기 흐믓하다. 다람쥐는 다람쥐 만두를, 호랑이는 호랑이 만두를, 너구리는 너구리 만두를, 뱀은 뱀 만두를... 저마다 개성대로 만두를 빚는다. 하지만 사흘이 지나도 만두소는 줄어들지 않는다. 나흗날이 되자 크게 만들기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사과만큼, 그러다 호박만큼, 그러다 항아리만큼, 그러다 자기 몸보다 더 큰 만두도 생긴다. 이레가 지나도 바닥이 보이려면 먼 것 같자 동물들은 지쳐서 자리에 누워버리고 마침내 할머니는 남은 만두소를 전부 모아 큰 만두 하나를 만들자는 제안을 한다.

양쪽에서 만두피를 붙잡고 함성을 내지르며 앞으로 달리는 모습은 체육대회를 방불케 한다.

드디어 만두가 익고 가마솥에서 꺼낸 만두를 한꺼번에 달려들어 먹는 모습도 재미난다.
이 책의 묘미는 시종일관 할머니의 넉넉한 미소와 더불어, 동물들도 힘을 합쳐서 만두를 만드는 것이다. 누구 하나 빈둥거리지 않고 즐거워하면서 만드는 그 모습에 보는 이도 더불어 배가 부르고 흥이 난다. 만두들 빚는 과정이 역동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그림을 살펴보는 것도 즐겁다.
이 책을 보고 나면 아이와 함께 만두를 빚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 둘러앉아 손큰 할머니 만큼은 아니더라도 넉넉하게 만들어 이웃에게도 몇 개쯤 나눠주는 것도 재미 있으리라. 각박한 세상에 책 한 권으로 마음이 포근해짐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