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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오는 날의 약속 (문고판) ㅣ 네버엔딩스토리 12
박경태 글, 김세현 그림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6월
평점 :
고 3시절, 나는 집을 떠나 학교 근처에 있는 고모댁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대학을 목표하는 진학반에 들어가면서 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새벽에 다시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해야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시절 나는 공부보다는 학교 근처에서 기숙하게 된 친구들과의 어울림에 더 열중했다. 그 중 같은 마을 친구 Y가 고모댁 아래 집에서 머물게 되면서 Y와 가까이 하게 되었다.
Y는 같은 마을에 살긴 했지만 나는 아랫마을, Y는 윗마을에 사는 까닭에 자주 어울리지 못했고, Y가 또래 친구들과는 좀 다른 독특한 면이 있어서 데면데면했었다. 나는 Y가 걷는 것을 보지 못했다. 매일 아침 동생하고 열심히 달려서 등교를 하고 끝나면 또 달려서 집에 갔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사투리보다는 표준어를 쓰는 모습이 이질감을 느끼게 했던 것 같다. Y는 중학교 3학년때도 같은 반이었는데 어느 날 Y의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었다. 거의 실신 상태였던 Y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계가 어려워진 Y는 고3 때 숙식제공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그 시절 나는 명랑했던 모습 뒤에 우울증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사람과의 관계가 참 싫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산 속에 들어가 스님이 되는 것을 꿈꾸기도 했었다. 그런데 Y 역시도 죽음에 매료당해 있었고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 통했다고나 할까. 서로 편지도 주고 받고, 나보다 한 수 위인 Y는 유언장을 가슴에 품고 다녔었다. 어느 날 저녁 둘은 Y의 방에서 얘기하다가 Y가 12시가 되면 함께 죽자며 자기가 모은 수면제를 보여줬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는데 Y는 아니었다. 그제서야 나는 죽고자 했던 것이 그냥 생각뿐이었을 뿐 그 이상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12시가 다가오자 그만 잠들어버린 척 했다. 그 후로 Y와 멀어졌다. 그러다 겨울방학이 되었고 광주 작은 아빠댁에 있던 내게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Y가 자살했다고...
『첫눈 오는 날의 약속』을 읽으면서 Y가 자꾸 떠올랐다. 그 이유는 이 책이 헤어짐과 외로움, 그리움을 담고 있어서다. <아이별 천사의 눈물>, <첫눈 오는 날의 약속>, <엄마가 보낸 천사>, <마지막 자장가> 등은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풀어내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들 마음 속에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추억이 있는 한 그 사람은 영원히 나와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마음 속에 여전히 Y가 살아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바보 철승이>를 보면서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밀려드는 느낌을 받았다. 바보는 철승이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속된 기준으로 재고 평가하는 우리가 아닐까. 어렸을 적 마을에 한 명 쯤은 있었던 철승이 같은 사람, 남에게 해꼬지 하지 않은데도 돌맹이질 하고, 놀려댔던 아이들 모습에 내가 보인다.
<꿈꾸는 섬>을 보면서 내 고향이 떠올랐다. 내 고향도 섬인데 젊은이들이 다 떠나버린 그 곳엔 지금 노인들만 남아 있다. 몇 십년이 흐른 뒤 내 고향은 어떻게 될까...
열 편의 이야기를 싣고 있는 이 책은 절망보다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당장 쌀이 떨어져 배고프고 힘들지만, 별처럼 어두울수록 더 빛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