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이의 첫 심부름 내 친구는 그림책
쓰쓰이 요리코 글, 하야시 아키코 그림 / 한림출판사 / 199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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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막내인 나는 언제나 잔 심부름을 맡아서 해야 했다. 농번기때는 가게에 가서 음료수나 과자 등을 사와야 했고, 집안에 행사가 있으면 먹을 거리를 이웃 집에 돌려야 했으며, 제사를 지낸 다음날은 한집 한집 동네를 돌며 아침 식사하러 오시라고 청해야 했다. 어떨 때는 좋았고, 어떨 때는 싫었지만 맡은 임무를 해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 중에서 큰 돈을 들고 가는 날에는 혹여 돈을 잊어버릴까봐 손에 꼭 쥐거나 바지 주머니에 넣고도 마음이 안놓여 바지 주머니 입구를 꼭 쥐고 갔었다.

이슬이는 다섯 살이다. 엄마는 집안 일과 동생때문에 무척 바빠보인다. 그래서 이슬이에게 우유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킨다. 항상 엄마와 함께 다니던 길을 혼자 가야하니 겁도 나지만 그래도 집을 나서 본다. 차 조심하기!, 거스름돈 잊지 않기! 란 엄마와의 약속을 새기며 오백원짜리 동전 두 개를 손에 꼭 쥐고 간다. 노래를 부르며 가고 있는데 찌르릉 종이 울리며 자전거가 다가 온다. 이슬이는 가슴이 철렁하여 벽에 바싹 붙여 서고, 자전거는 바람같이 쌩~ 지나가 버린다. 도중에 친구를 만나 혼자 심부름간다는 이야기도 하고 언덕길을 뛰어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동전을 놓친다. 다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지만 동전이 걱정이 되어 얼른 일어나 찾는다. 동전을 다시 손에 꼭 쥐고 가게에 도착한 이슬이는 우유를 달라고 말하지만 소리가 너무 작다. 담배를 사러온 아저씨의 외침에 가게 아줌마가 나오고, 뚱뚱한 아줌마는 먼저 온 이슬이를 무시하고 빵을 사간다. 혼자 남게 된 이슬이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우유를 달라고 말한다. 그제서야 가게 아줌마는 이슬이를 알아보고 사과를 한다. 이슬이는 우유를 받고, 집으로 향하지만 가게 아줌마는 거스름돈을 챙겨준다. 씩씩하게 임무를 완수한 이슬이를 언덕길 아래에서 엄마가 손을 흔들며 기다리고 있었다.

다섯살 난 이슬이에게 우유사는 일은 처음으로 세상과 홀로 마주한 날인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늘 함께였는데 혼자가는 그 길이 낯설고 무섭고 떨렸으리라. 가게집 아줌마에게 사과를 받고 나서 마음이 놓여 참았던 눈물 한 방울 떨굴때 이슬이의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읽혀졌고, 돌아오는 길에 한결 밝은 걸음걸이로 집으로 향했을 이슬이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도 나왔다. 우리 아이가 세 살인데 다섯살 때 나는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킬 수 있을까? 세상이 너무도 무서워져 아이보다도 내가 두려워하지 않을련지... 하는 생각과 그래도 언젠가 첫 심부름을 시킨 날 이슬이처럼 우리 아이도 성숙해 지리란 생각에 마음에 웃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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