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언듯 보면 남장여인 김낭자의 러브스토리로 오인받기 쉽다. 물론 그 중심은 김낭자의 러브스토리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선 정조시대 4색당파로 인한 패거리 싸움과 거기서 벗어나고자 했던 젊은이들의 고뇌가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김낭자의 노론과 남인이었던 부모님은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몰래 혼례를 치른 바람에 두 집안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이선준은 노론 실세 좌의정인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파고 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문재신의 경우는 소론의 집안으로 이선준의 아버지가 형을 귀향보내 형이 죽었으니 이선준과는 철천지 원수의 집안이면서 그렇다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학문에 정진하기 보다는 밤에 몰래 벽서를 붙여서 비판의 날을 세우는 인물이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이 인물들 사이에 감초같은 구용하는 여색을 밝히는 인물로 나오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이 모든 것이 위장임을 알 수 있다. 시전보다 난전에 관심을 갖고, 산학에 열심이면서도 모든 사람과 선이 닿아 있고, 능글능글하면서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다.
가난한 집안의 장녀인 김윤희는 어머님의 삯바느질로는 병약한 남동생의 약값은 커녕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가정 형편상 남동생의 옷과 호패를 차고 남동생으로 위장한 채 책방에서 필사일을 하고 받은 돈으로 집안을 꾸려간다. 그러다 과거에 급제하기라도 하면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거벽일이 들어온다 하여 과거장에 갔다가 이선준을 만난다. 이들의 첫만남은 둘 모두에게 호감과 떨림을 안겨주고 계속되는 시험에서 서로의 이름을 확인하다 성균관이란 공간의 유생이 되어 한 방에 기거하게 되면서 이성적인 느낌을 갖게 된다. 거기다가 일전에 김윤희가 저잣거리에서 왈패들에게 위험을 당했을때 도움을 주었던 문재신이 원래부터 방에 기거했던 사람으로 밝혀지고 동거가 시작되면서 사랑, 우정, 배움, 증오 등의 감정은 극을 치닫는다. 거기에 옆방의 여림이 가세하면서 참 재밌는 이야기가 되고, 읽는 동안 침이 꾸울꺽, 꺄악~ 하는 소리가 가슴 저 밑에서 울려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은궐 작가를 처음 알게 된 책으로 작가의 기량이 참 뛰어나구나 하는 느낌.... 어쩌면 이렇게 재미를 안겨주고, 인물들의 성격을 생생하게 입체적으로 만들어내고, 맛깔나게 글을 쓸 수가 있을까. 특히 설명을 하기보다는 대화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이어가고, 읽는 내내 즐거움과 상큼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독자마다 감흥이 다를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루했다는 말은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책으로 잘금 사인방의 앞으로의 행보에 눈을 돌린다.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정말 기대된다.
참, 이 책이 드라마로 나온다고 한다. 읽는 내내 떠올렸던 배우들과 캐스팅된 배우들의 이미지가 너무 차이가 나서 깜짝 놀랬다. 아마도 책을 읽은 사람들은 나처럼 캐스팅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적지 않을 듯 하다. 하지만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올 수도 있으니 실망보다는 기대를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