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계속 하야시 아키코의 그림책을 많이 보게 되었다. 왠지 친근한 느낌때문이리라. 우리 아이도 그림을 너무 좋아한다. 그림들이 그냥 단편적인 느낌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있을 만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실감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도 자라면 이렇게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을 챙기게 될까 싶기도 했다. 무슨 무슨 기념일을 이벤트로 만들어 즐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 부부는 예외다. 우리는 처음 몇 해는 생각을 했었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언제 였는지 가물가물하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 식었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난 여전히 남편이 너무 좋고 존경한다. 하지만 기념일을 꼭 챙겨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할 수 없다. 슬기는 아침에 학교에 가면서 엄마에게 오늘이 무슨 날인 지 아는가 묻는다. 모르면 세 번째 계단을 보라고 한다. 엄마는 세 번째 계단에서 편지를 발견한다. 그 편지는 곧 다른 곳에 있는 다른 편지를 찾게 하라고 씌여 있고, 보물찾기 게임처럼 계속해서 다른 곳을 찾게 한다. 이런 미션들은 엄마를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한다. 엄마는 슬기가 왜 이렇게 편지를 썼는지 궁금해 하면서 즐긴다. 그리고 아빠에게 전화를 하라는 편지에서 아빠에게 편지를 하고 아빠 주머니 속에 편지가 담겨 있는 걸 확인한다. 엄마와 아빠에게 궁금함을 준 편지는 우편함 속의 선물상자가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결말이 나는 가 싶었다. 하지만 엄마 아빠 역시 슬기를 위한 선물을 준비한다. 저녁이 되고 모두 모여 선물을 열어본다. 선물은 상자들 속에 들어 있는데 혹시 반지가 아닐까 하는 나의 마음과는 달리 아이의 수준에 맞는 구슬 두개가 전부다. 부모는 슬기에게 강아지를 선물한다. 이렇게 끝을 맺는가 했는데 오늘 받았던 쪽지들을 앞자만 보이게 겹춰 놓았더니 '엄마 아빠 결혼 기념일 축하'라는 글귀가 되고, 그제서야 슬기의 행동이 더 빛이 나게 된다. 아이들이 읽은 후 이 책의 내용을 기억해 두고 언젠가 써먹을 것 같다. 값비싼 선물이 아니라 하루 동안 즐거운 놀이를 생각해 낸 슬기의 행동이 사랑스럽다. 이래서 아이 키우는 맛이 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