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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김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ㅣ 동심원 5
신형건 지음, 이영림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5월
평점 :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면 몸과 마음에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 마치 봄을 맞은 나무들이 온 몸 가득 물줄기를 뿜어올려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듯 사람도 온 몸이 들뜨고 얼굴은 발그레해지면서 웃음꽃이 피어난다. 눈은 별처럼 초롱초롱 빛이 나고, 그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이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입김>을 읽노라면 초등학교 3학년 쉬는 시간 갑자기 내 두 눈을 가렸던 그 아이의 손길과 중학생 시절 수줍은 듯 하얀 얼굴에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절었지만 힘차게 달리던 같은 반 친구의 빛나는 모습과 대학생 시절 그냥 동아리 동료였던 한 친구가 어느날부터인가 다르게 느껴지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우연히 만난 사람이 삶의 길을 함께 걷는 옆지기가 될 줄이야...
돌이켜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가슴에 품었던 시간은 나이는 달랐을지라도 느꼈던 감정은 고스란히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감정들을 신형건 시인은 놓치지 않고 풍부한 감수성을 담아 아름다운 시로 담아 놓고 있다. 한 사람이 내 눈에 들어오던 날 터질듯한 기쁨인지 설레임인지 알 듯 모를 듯한 감정으로 가슴 가득 채워졌었다.
<처음 만난 날 >
너를
처음 만난 날
푸르던 그 하늘 가득
둥둥 떠오르던
아흔아홉 개의
빨간
풍선
잠자리에 누워도 그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잠이 오질 않아 창문을 열었다가 만난 밤하늘의 별들. 꺼질 듯 가물거리는 별들도 네가 보고 있어 비로소 빛나는 것 같고, 그 사람의 잠 속으로 스며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 사람을 만나고 부터 자꾸 거울을 보고 좀 더 예쁜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었지.
<거울 바라보기>
너를 만나고 나서부터
자꾸 거울 앞에 서게 되지.
그럴 때마다 빤히 바라보는
내 얼굴이 조금씩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아.
내가 누굴 닮아 가는 걸까?
갑자기 마주 보기가 쑥쓰러워져
고개를 돌리다가
다시 거울을 들여다보면
거기, 낯선 내 얼굴 안에
문득 얼비치는 모습,
너의 얼굴!
그러다 서로에 대해 바라는 것도 많아지고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가시를 드러내기도 하지.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사람이 좋은 것을 어쩌랴. 사랑은 가시에 찔려도 보드라운 아픔인가 보다.
<엉겅퀴 꽃> 중에서
......중략......
떨리는 손끝으로 조심조심 쓰다듬어 보니
그 뾰족한 가시마저
이렇게 보드라운걸!
사랑을 하게 되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 같고, 세상 모든 것이 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특별한 계획이 없어도 그저 함께 있으면 특별한 시간이 되고, 그 사람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내겐 소중하다.
<모두모두 꽃>
모두모두 꽃이야
이 세상 사람들 모두는
웃을 때 향기 나는
꽃이야
그 중에서도 가장
예쁘고 향기 좋은 꽃은
바로,
너지!
<입김>은 한 때 사랑했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보게 하고, 어떤 사랑이었든 또 어떻게 헤어졌든지간에 사랑하였던 그 순간들이 내겐 모두 소중했었음을 깨닫게 하였다. 그리하여 사랑을 떠난 삶은 바람에 제 몸을 맡긴 마른 낙엽처럼 바스락거릴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 모두 어떻게들 사는지 보고싶다.
그리고 내 나이 아직 서른 후반이기에... 앞으로도 여러 차례 이런 설레임이 계속 찾아오겠지?...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