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 여우 초승달문고 22
김옥 지음, 김병호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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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적 우리 집은 뒤엔 아담한 산이 방문을 열면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가 보였었다. 여름엔 바닷가에서 봄, 가을, 겨울엔 주로 산에서 놀았었다. 눈이라도 쌓이는 겨울 새벽이면 이따금씩 노루 울음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잠이 덜 깬 나는 부모님이 나누는 말씀을 들으면서 ’노루가 집 뒤에까지 내려왔나 보다’하고 짐작하곤 했다. 아주 어렸을 적엔 동네가 조용했었는데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마을 분교 선생님이 장총을 들고 꿩사냥을 즐기셨다. 나는 그 선생님만 보면 괜시리 불안하고 무섭고 그랬었던 것 같다. 마을 친구들과 뒷산 묘뚱에서 미끄럼도 타고, 나무에도 올라가고, 가끔 혼자 마른 잔디밭에 누워 수평선을 바라보았던 즐거움도 그 선생님때문에 점점 사그라들었다. 선생님이 총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아보이지 않았지만 감히 선생님에게 누가 말리는 소리를 하겠는가. 그런데 선생님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몇몇 동네 아저씨들까지도 총을 들었다. 이따금 방아쇠를 당기는지 꿩의 울음소리와 ’탕’하는 총소리가 동시에 들려오곤 했었다.

그러자 마을의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올무와 덫을 놓기 시작했다. 그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자신들이 놓은 덫에 무엇이 걸렸나 확인하러 다녔다. 어느 날은 엄마와 산에 올라가다 덫에 걸려 죽어있는 노루를 발견하기도 했다. 불법이라서 덫을 놓다가 걸리면 벌금을 물린다는 말을 듣고서야 잠잠해졌는데 지금은 어찌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밤에 닭의 간을 빼먹는 꼬리가 아홉달린 구미호, 남자들에게 꼬리치는 일명 ’여우짓’ 이다. <내동생, 여우>라는 제목을 보면 왠지 무서울 것 같다는 선입견과는 달리 읽고나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올무에 걸린 짐승들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아버지. 어느날 올무를 놓은 곳에서 흰 여우털을 발견하고 더 단단한 올무를 놓느라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시간이 늦어진다. 아빠를 기다리던 남매는 슾으로 들어가고 눈보라를 만나면서 동생 연이를 놓치고 만다. 이듬해 봄에 차갑게 발견된 연이를 양지바른 곳에 묻었지만 연이를 보낼 수 없는 연오의 마음이었을까, 연오를 떠나고 싶지 않은 연이의 마음이었을까, 여전히 연오에겐 연이의 모습이 보인다. 숲으로 연오를 데려가는 연이를 보면서 아슬아슬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연이의 환생인듯 하얀여우의 모습과 연오의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는 인간 모두에게 전하고자 하는 경고이자 이 책의 메시지인 것 같다.

나는 언제까지나 오빠 마음 속에서 살 거야. 오빠가 나를 잊지 않는다면 말이야
 
페이지 : 66  

아버지가 놓은 올무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파괴와 살육을, 그로인한 피해는 바로 인간의 후대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연이의 죽음으로, 숲이 필요하다는 연이의 외침은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편안함만 추구하고 가장 소중한 것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자연이야말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생명줄임을 잊지말라고 하는 깨우침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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