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를 잡자 - 제4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18
임태희 지음 / 푸른책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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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갉작갉작…저기서도 사각사각…, 사물함에도 냉장고에도 주홍이의 뱃속에도 사방곳곳에 쥐가 있다. 축축한 털에 새까만 눈알을 굴리면서 기다란 꼬리까지 출렁거리는 쥐..그 끔찍하고 흉측한 몰골의 쥐가 여기저기 모든 곳에 있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소름이 돋는 그 쥐들은 소설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점차 하나의 초점으로 모아진다. 바로 주홍이가 잉태하게 된 새로운 생명이다. 그리고 주홍이는 새로운 생명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수술실에서 “텅!” 하고 떨어지는 핏덩어리는 표면적으로는 어느 여고생의 살해된 태아이지만 사실 보다 근원적으로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짜증스럽고 흉측한 하루하루의 삶들을 의미한다. 그것은 선생과 학생, 택배 직원과 어머니, 주홍이와 주홍이 태아 사이의 모든 관계가 쥐의 몰골과 같이 끔찍하고 짜증스러웠던 것이다.




이 소설의 표면만을 들여다보게 되면, 십대 미혼모의 임신중절에 대한 속죄(자살)를 통하여 생명의 존엄성을 다시 강조하고 십대의 성문제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면, 쥐의 몰골처럼 짜증나고 흉측한 모든 사람들의 일상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 마치 여드름이 심하게 났을 때, 이곳저곳의 여드름 중에서 가장 성났던 여드름 한 군데가 드디어 확 터져버렸다고 하여도 나머지 울긋불긋한 여드름들은 그냥 그대로 남아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십대의 성문제라는 포장지 밑에는 작가가 느끼고 있는 인간의 삶과 관계에 대한 짜증과 끔찍스러움이 그대로 묻어있으며, 그런 소름 돋는 현실에 대한 희망과 대안이 하나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을 읽어나가기 시작할 때는 작가가 구사하고 있는 고도의 상징기법과 암시에 의해서 몰입되어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맨 뒷장을 덮고 났을 때는 무엇인지 징그럽고 가슴이 꽉 막히는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남자를 배제한 채 이야기를 풀어내 임신의 책임은 모두 여자의 탓으로 돌리는 냉담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의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어떤 문학작품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있게 남겨지기 위해서는 그 작품의 핵심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알맹이는 씨앗처럼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어 올려서 잎사귀를 틔우고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소재와 상징의 씨앗은 있다. 그것은 “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제와 작가의 철학에는 씨앗이 없다. 임신중절에 대한 속죄(자살), 청소년 학생들을 위한 성상담 인터넷 사이트의 개설, 주인공의 빈자리를 지켜주게 된 고양이로서는 너무나 빈약하다. 작가는 작품 속에 세상이 싫고 사람들이 짜증난다는 ‘씨앗’을 떨구어 놓았고, 그 씨앗은 발아함이 없이 그냥 그대로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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