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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시대의 처절한 이야기를 이렇게나 재미있게 담아낼 수 있다니 작가의 글구성이 돋보인다.
무거운 주제를 무겁게 담았더라면 차라리 덜 서글플 수 있었을까?
그랬더라면 “그래. 지금 시대가 살아가기 어려운줄 누가 몰라?”하며 식상해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굿바이 동물원」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감정이입할 만한 무거운 주제를 참을수 없을만큼의 가벼움으로 위트있게 담았기에
웃음 이면엔 웃음보다 더한 슬픔의 카펫이 깔린다.
실직 앞에 ‘남자’라는 자존심마저 버린채 하루하루의 밥벌이에 목을 매고 있는 우리의 주인공인 30대 김영수.
실직후 집에서 온갖 종류의 부업을 섭렵하다가 세렝게티 동물원에 입사한다.
그는 인생에서 잠시 주춤했지만 이제 괜찮을줄 알았다.
그러나 세렝게티 동물원은 사람노릇을 포기하고 동물이 되어야지 살아갈 수 있는 곳이자
철저히 성과급으로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현사회의 축소판.
그는 고릴라가 되어 킹콩처럼 가슴을 두드리고 관람객이 던져주는 바나나를 먹고
12미터 높이의 정글짐을 올라 버튼을 누르며 회당 오천원의 성과급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고릴라로 살아가는 또다른 고릴라 조풍년씨는 유명기업의 구조조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의 탈을 버렸음에도 결국은 조직으로부터 토사구팽 당한다.
처자식이 있는 그의 몸부림은 가족을 위해 몸부림치는 여느 가장의 모습 그것에 지나지 않는다.
동물원에 있으면 사람답게 살 수 있어.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 구실 같은 건 안 해도 돼. 솔직히 이 나라에서 사람 구실 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냐고. 난 거의 없다고 봐. 하지만 동물원은 달라. 사람 구실은 못하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 동물원이야. -p.214
사람구실을 포기하고 고릴라가 되어서야 오히려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조과장의 말이 애닮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은 같은 처지에 있는 자만이 알 수 있다고 그 자리(사람을 포기한)에 가서야
서로를 짓밟으며 나만 살아남겠노라는 경쟁심없이 서로를 보듬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천둥처럼 뇌리를 울린다.
이 사회는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없는 곳이라는듯 들린다.
앤은 낮에는 고릴라로 살면서 밤에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여자고릴라다.
취업이 어려운 20대의 고충을 대변한다.
자살충동도 여러번 느끼고 취업준비를 하는 동안 폐인과 같은 삶을 살다시피 준비해도 취업보장이 안되는 현시대의 불안한 청춘의 표상이다. 다행히 취업이 되어도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더많은 이들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앤은 그래도 취업이 되었으니 다행이다. 청춘을 그리 보내고 몸에 질병만 가득 떠안은 나이만 젊은이들이 또 얼마나 많겠는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왔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면서, 때가 되면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그러다 자기를 닮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늙어가는 게 앤의 작지만 소중한 꿈이었다. 그래서 인간으로 남고 싶었다. -p.183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 희망한다고 되는 것이 더 이상 아닌 세상이다.
사람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제 남들 부러워할 만한 스펙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한걸까?
대장고릴라 만딩고는 남파간첩이다. 전향한 연락책의 배신에 치를 떨며 그에게 복수하려다 오히려 그를 피해 숨어 살아야 하는 신세로 동물원의 고릴라가 되었다. 남한에 홀로 떨어진 그는 남조선에서 열심히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가 다녀본 직장의 회사원들은 로봇이었다고 말한다. 남들처럼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기계처럼 하루 종일 일만 하는 로봇. 그는 결국 제3국 콩고의 밀림행을 실행한다.
빈부의 차에 의한 계급이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마치 약육강식의 먹이 피라미드 같았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의 경계가 뚜렷한 것처럼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 차이도 현저했다. 만딩고는 그 피라미드의 제일 밑바닥에서 살았다. 맞고 차이고 밟히면서 먹고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남의 일을 하면서 몸을 팔았다. 모두 그렇게 살고 있었다. 돈 몇 푼을 벌기 위해 자기 인생을 뜯어먹고 있었다. 자기가 속한 계급의 밀실에 갇혀 아우성치고 있었다. 만딩고는 그런 남한에서도, 욕망과 배신, 착취와 억압으로 얼룩진 여기 밀실에서도 살 수 없었다. -p.286~278
만딩고의 뒤를 따라 자본시장에 지친 많은 이들이 제3국, 자본이 없는 세계로 떠난다.
그들은 그곳에서 행복할까. 아니 그곳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람의 삶을 윤택하기 위해 등장한 ‘자본’이라는 것이
언젠가부터 사람을 옭아매기 시작했고 지금은 모두들 자본의 노예가 되어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여러 부류의 다양한 계층들이 말하듯
이 사회에서는 더 이상 숨통이 막혀 살수 없다고,
사람으로 태어났는데도 사람노릇하며 살아갈수 없는 세상이라고 항변한다.
굳이 책이 아니어도 돈 때문에 부모자식간에 원수가 되고 형제자매가 다투고
친구가 배신을 하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군상을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한다.
사람의 도리를 지키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은 손해보기를 감수해야 하고
때론 바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가 뒤바뀐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작가는 이런 세상을 참 처절하리만치 리얼하게 전하는 캐릭터들을 포진해 두고
한사람 한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에 주류로 등장하지 않지만 부주류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전하는 메시지도 매한가지다.
김영수의 아내, 송과장, 북한의 연락책..이들은 모두 자본주의에 희생된 누군가의 표상이다.
그렇다면 이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그 대안을 작가는 자본이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
그 사회로 떠난 이들은 모두가 이런 곳이 없다고, 행복하다는 답신을 보내오지만
지금 이 현실에서 자본이 없는 사회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작가의 표현대로 사람으로서는 더 이상 자본 위에서 사람냄새 풍기며
사람노릇하며 살아갈 수 없는 것인지 참담하기만 하다.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으로 지난해 「표백」을 통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절망을 가슴 섬뜩하게 느꼈는데
이 「굿바이 동물원」은 알게모르게 사람을 잠식해버린 ‘자본’이라는 괴물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회칼은 무섭지 않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뭔 줄 아시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에 대해 만딩고는 잠깐 생각했다. 회칼보다 무섭고, 어쩌면 죽음보다 무서운 것. 연락책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 하는 것...
"돈이오. 나는 돈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소."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