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아동문학을 대표하는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입니다. <강아지 똥>의 명성은 이미 이 책이 아동 문학계에서는 드물게 20만 권을 넘어섰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죠. 어린이에게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키우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 졌다는 다소 무게감 있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강아지 똥>을 접하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은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부서진 강아지 똥의 잔상 때문에라도 다시 이 책을 찾게 되고 장면 장면을 곱씹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지 가득 알록달록하게 흩어지고 있는 그림이 바로 강아지 똥임을 반복되는 책읽기를 통해서 아이들은 언제가 알게 되겠지요. 그늘진 돌담 밑에서 하얀 강아지가 똥을 누고 있는 장면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일지라도 호기심을 당기는 그 무엇이 있는 표지. 거기에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어찌보면 귀엽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똥'이 의인화 되어 표현되기 시작합니다. 의인화 된 '똥'이라~ <강아지 똥>의 그림을 맡아 그리신 정승각님의 고심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정승각님은 동양화가 아닌 서양화를 전공하셨다는데.. 제가 미루어 생각하건대 아마도 '똥'을 표현하기 위해서 몇 날 며칠을 고심했을 것 같습니다. 그 고심 끝에 탄생한 강아지 똥은 더럽다고, 찌꺼기 뿐이라고 멸시하는 흙덩이나 어미닭의 말과는 달리 책읽는 이의 동정을 사기에 충분하리 만큼 귀여운 인형처럼 보입니다. 병아리들에게 조차도 천대받던 강아지 똥이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너무나도 고귀한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난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 수 없을 텐데......' 이쯤 되면 책을 읽어주는 어른들은 충격에 휩싸이게 됩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조차 품고 살기 어려운 생각, 어쩌면 책을 쓰신 권정생님의 집필의도가 이제 서서히 엿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품고 사는 강아지 똥에게 기회는 찾아왔고 자신의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강아지 똥은 기쁨으로 자신의 몸을 부숩니다. '어머나! 그러니? 정말 그러니?' 강아지 똥의 기쁨이 노란색으로 크게 부각된 지문에 그대로 베어 있는 듯 느껴지네요. 사흘동안 내리는 비가 강아지 똥을 부수는 장면은 배경없이 확대되어 아이들 눈에 너무나도 또렷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후 강아지 똥의 거름을 받은 민들레의 꽃봉오리가 조금 열리는걸 여러분은 보셨나요? 돌담밑의 그늘진 구석에 피어난 노란 민들레 한송이. 길가는 누구도 이 민들레에 관심을 보이지 않겠지만, 민들레와 강아지 똥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알 수 없겠지만, 누가 알아주든 아니든 강아지 똥은 그렇게 자기가 원했던 세상에서 착하게 살고 싶다는 뜻을 눈물겨운 사랑으로 피어내었네요. 그냥 흰둥이가 눴던 강아지 똥이었을 때는 병아리들 조차 하찮게 여겼던 더러운 존재였지만 민들레를 꽃피운 강아지 똥은 더 이상 더러운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민들레 속에 사랑을 주어 새로운 존재로 살고 싶다는, 그리고 그렇게 살았던 강아지 똥의 고귀한 생각이 녹여져 있으니까요. 자신을 지키고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일은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자신을 없애는 희생을 감수하라고 할 때 과연 우리들은 인간임에도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강아지 똥>을 읽고 이런 생각을 가지는 건 너무 비약된 생각인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존재의 소중함'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주는 책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