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를 일등으로>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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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를 일등으로 - 野神 김성근
김성근 지음, 박태옥 말꾸밈 / 자음과모음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요즘 KBS 예능 프로 <천하무적 야구단>을 꽤 즐겨보게 되었다. MBC <무한도전>과 동시대에 맞대결을 펼치는 이 리얼리티 프로는 제목 그대로 오합지졸 연예인 야구단이 제대로 야구의 참맛을 알아가면서 더불어 성장하는 모습이 재미가 쏠쏠하다.
나이 마흔부터 열여섯까지 당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10명이 펼치는 좌충우돌 야구 경기는 어느새 웃음 대신 긴장감을 주고 있다. 몇몇은 정말이지, 꽤나 진지해 보인다. 그렇다. 야구는 마냥 즐거울 수 없는 경기이다. 무게 141.7~148.8g 둘레 22.9~23.5cm의 공 한 개를 사이에 두고 사투가 벌어진다. 각각의 베이스는 말 그대로 말 그대로 링의 사각 코너이다.
예능이니 그렇지, 실제 야구중계를 보면 야구 선수 면면을 집요하게 따라잡지 않는다. 카메라가 따라잡는 시선은 오로지 공이다. 그래서 야구의 긴장감이 어느 정도인지, 왜 투수들이 입에 마우스피스를 끼고 올라오는지 잘 모른다. (투구를 할 때마다 꽉 깨무는 악력으로부터 이빨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관중에게는 쪽발이, 제자들에게는 악마라고 불렸던 남자, 김성근. 야신이라는 별호 뒤에 따라붙는 별명이다. 운동 종목 가운데 가장 신사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운동인 야구를 하면서 그는 왜 그런 푸대접을 받아야만 했을까. 아니, 왜 그런 소릴 듣게 되었을까. 그의 야구는 재미가 없다, 승부에 연연한다는 혹평을 듣는다. 여전히 고교야구 감독 시절을 잊지 못하는지 작전이 많이 걸린다.
연봉 몇 억짜리의 프로 선수가 번트를 대는 꼴은, 관중의 입장에서 보면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다.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좋지만, 프로야구 정규시즌의 승부라는 게 국가끼리 대결도 아니고 사실 누가 이겨도 그만이지 않은가.
하지만 경기에서 지면, 지는 일이 자꾸만 반복되면 감독이 제일 먼저 욕을 먹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김성근의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를 생각하면 운동장에서 퇴장을 해도 될법하건만 그는 여전히 현역을 원한다.
<꼴찌를 일등으로>, 야신 김성근의 자서전 제목은 그의 인생처럼 꽤나 직설적인이다. 마치,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따위의 꼴찌부터 일등까지 일직선으로 스윽 그면 그만일 것 같은 제목을 달았지만, 그의 인생은 내내 일등으로 오르는 과정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야신이다.
그의 인생에 찬사를 보내려는 게 아니다. 평생 야구만 보고 산 그의 일구이무(一球二無), 야생야사(野生野死)의 승부가 ‘삼겹살존’이 생길 정도로 느긋하게 즐기려는 프로야구의 속성과 잘 맞는지 모르겠다. 눈 옆을 가리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산 그의 생에는 70~80년대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이 야구와 관련해서 잠깐 언급된다. 책에서 밝혔듯, 일본에서 조센징이라는 차별을 받지 않고 야구를 할 수 있었다면 김성근은 애초에 한국에 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다만, 덕장, 용장, 맹장 등 내로라하는 야구감독 중에서 그의 자서전이 두드러진다. 그가 여전히 현역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끄는 SK는 9월 8일 기준으로 선두 기아와 3게임차 2위를 달리고 있다. SK를 당연하게 강팀이라고들 하지만 SK에는 이렇다 할 스타 선수가 드물다. 올해에는 전력보강도 없었다. 그런데도 2등을 달리고 있다. 놀랄만한 일이지만 ‘만년 2위 감독’은 김성근에게 따라붙는 또 하나의 치욕이자 오명이다. 올해는 기아의 돌풍이 워낙 거세서 SK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으로 강한 요청으로 SK는 다른 구단보다 일찍 전지훈련을 떠나고, 2군도 같이 간다. 몇몇 스타에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남는 비결이다.
책 속의 몇몇 대목은 승리의 감동과 감격으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올해 SK의 성적은 또 다른 관심사다. 자서전이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어쩌면 그이만큼 성적이 안 좋았을 때 욕을 먹고, 퇴사를 당하는 경우도 드물다. 학연과 지연을 무시하고, 구단의 간섭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그이니만큼 당연하다.
하지만 그는 SK가 아니어도, 분명 어디에서건 현장에 있을 것이 확실하다. 감독직에서 내려오는 순간이 바로 그의 마지막이 아닐까 싶기까지 하다.
야구가 좋아 18살의 나이로 피붙이 한 명 없는 낯선 한국 땅으로 건너온 재일교포 김성근, 5년 만에 무식하리만치 혹사한 어깨로 인해 5년 만에 야구선수의 짧은 생을 마감한 뒤에도 현장에 남기 위해 코치로 감독으로 야구장을 떠나지 않은 그. 야신 이전에 야인으로 이 팀 저 팀을 떠돌면서도 끝끝내 야구장을 지킨 그 만큼 야구복이 잘 어울리는 감독을 알지 못한다.
머리를 짧게 깍은 그의 뒷모습은, 등번호와 이름이 아니라면 현역 선수들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지금도 선수들에게 펑고 훈련을 시키기 위해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김성근, 막 선발 출격을 앞둔 21살 김성근이 그 자리에 있다. 그의 몸은 언제나 현역, 일구이무(一球二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