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길을 잃었을지라도
김경집 지음 / 넥서스BOOKS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지금은 길을 잃었을지라도. 누군들 이 제목에서 자유로운 이가 있을까. 그래서 시선이 먼저 가지만, 허나 역시 같은 이유로 손은 자꾸만 머뭇거린다. ‘길’의 의미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뿐 아니라, 요즘 나무를 봐도 한 그루에 달린 잎사귀마다 단품의 물듦이 제각각이듯 내 안에서도 시시때때로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길이 평단하고 한 길로만 죽 뻗은,  내가 가기만하면 되는, 누군가 다져놓은 길이 아니란 걸 눈치를 채서 그렇다.  

장님이 장님을 이끌 수는 없는 법. 과연 누가 답을 줄 수 있겠는가. 더욱이 내가 걸어온 길과 그가 걸어온 길이 비슷하지도 않은 바에야. 불안해하면서도 묵묵히 걸어가는 방법 밖에 없다는 정도는 나이가 들면 누구나 아는 지침이다. 

책 뒤표지에 새겨진 ‘인생의 절망에서 길어 올린 한 줄기 희망의 빛!’이라는 홍보문구는 상투적일 뿐더러 따져보면 ‘토익 만점 보장!’ ‘취업 100% 성공하는 법’ 따위보다 더 황당하게만 보인다. 가벼운 에세이집 한 권에서 과연 희망 찾는다? 연휴마다 재방송하는 ‘세계 최고의 특급 액션스타’의 특선영화보다 더 지루하지 않을까, 혹시.  

그래도, 읽었다. 내 앞에 이정표를 세워 주리라는 기대는 없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은 아니었지만 장님이 장님을 이끄는 식이라도, 그래도 뭔가 일말의 기대 같은 걸 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지금 길을 잃었다는 전제까지는 동의할만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어차피 먹지 않을 수 없는 약을 앞두고 주의사항 정도를 한 번 더 힐끔거리는 기분이었다. 낯 뜨거운 홍보 문구에 바로 이어서 저자가 인문학자인 걸 엇비슷한 다른 에세이들과 구분점이라고 내세우고 있으니 ‘한 번 보자’는 심정도 없지 않았다. 

출판 시장 불황 등등 홍보문구를 그렇게 달 수밖에 없는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나, 저자는 오히려 그런 전전긍긍한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벗어나라고 차근차근 얘기한다. 소로우의 입을 빌어 남의 북소리를 따라가지 말고 자신의 북소리를 찾을 것을 주문한다. 허나 그 길은 제멋대로 하라는 게 아님을 분명히 얘기한다.  

영성에 바탕을 둔 태도가 큰 위안이었음을 고백하고 있지만 그가 제시하는 길찾기가 개인적 침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인문학자답게 ‘자유로운 개인’이 되기 위해서는 역으로 정치, 종교, 사회 등 늘 조우하는 일상과 직접 부딪히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올바른 시각을 갖추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촛불집회 등 그의 얘기는 부드러우나 매우 구체적이고 확고하다.  

이처럼 희망의 빛 운운하는 여타 에세이와 다르게 대충 얼버무리거나 교훈조의 얘기가 없다. 해박하고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풀어놓는 다양한 얘깃거리는 길 운운하지 않아도 그 나름 읽는 재미가 있다. 

그럼에도 나처럼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이를 위해 저자가 해주는 얘기가 있다.  

글 결 여기저기 젊은 시절과 달라진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 자신을 고백하는데, 이는 ‘이 길이 옳은 길이야’하고 자만했던 과거 자신에 대한 자괴는 아니다. 그때 ‘자유로운 개인’이 되고자 좌우충돌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었다는 귀결처럼 읽힌다. 그리고 아마도 그가 이후에 비슷한 책을 낸다면, 그래서 지금의 겸손과 자유로운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면 그만큼 지금의 자신에게 충만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다면, 때론 곁눈질도 하면서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은 아닌 것처럼 지금은 행복을 복습하는 시간이고, 치우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새로운 눈으로 세상 보기이며, 이는 곧 배움, 삶의 즐거운 선물을 찾는 일이다.’  

이 책의 첫 장에 소개된 소제목을 가지고 만든 문장들인데, 이 안에 이미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는 다 나와 있다. 그가 지금은 길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얼마나 세심하게 배려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인상깊은 구절>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단호한 생각으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며 덮어두고 기다리는 것도 지혜입니다. 26P

행복도 일종의 공부입니다. 매일의 복습과 ‘암기’를 요구합니다.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늘 확인하지 않으면 정작 그것이 찾아와도 받아들일 줄 모릅니다. 67P

인생이 허무한 건 짧아서가 아니라 너무 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사제의 강론은 돌아오는 길의 제게 경쾌한 죽비와도 같았습니다. 82P

"조금만 다르게 봐도 현실은 신비롭게 다가올 수 있다“는 마그리트의 따듯한 낙관성이 그를 ‘생각하는 그림’을 그리는 ‘철학적 화가’로 만들었을 겁니다. 79P

“양손에 모두 다 쥐고 있으면 다른 걸 잡을 수 없지요. 저는 한 손에 제 인생을 던진 신념이 있으니 행복합니다. 게다가 다른 한 손은 여전히 빈손이거든요. 이건 다른 걸 쥘 게 아니라 제 손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내어줄 수 있으니 제일 부자지요.”

“금과 은을 앞에 놓고 하나를 고르라 하면 당연히 금을 집어들지요. 그건 은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몰라서가 아니라 금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 때문이지요.” 1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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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개의 사람꽃 - 임종진의 삶 사람 바라보기
임종진 지음 / 넥서스BOOKS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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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에 글에서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고 나누는 대신 기계의 천리안에 의지해서 남들보다 더 예쁘고 멋지고 그럴싸한 순간을 담겠다는 욕심처럼 보여, 고가의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폼이 영 탐탁지 않게 보였다”라고 쓴 적이 있다.  

나카노 교쿄는 <무서운 그림>에서 말하길,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 키클롭스가 외눈박이가 된 이유를 “눈으로 탐하는 데에 골몰한 나머지 양쪽 눈이 모이고 모여 … 미쳐버린 외눈”되었다고 풀이한다. 신화에 따르면 키클롭스는 원래 태어날 때부터 외눈박이지만 탐욕을 경계하라는 의미심장한 해석이다. 가끔 길을 가다가 망원렌즈를 얼굴에 바짝 붙이고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 볼 때마다 키클롭스가 떠오른다. 키클롭스가 제우스의 천둥과 포세이돈의 삼지창을 만들어준 뛰어난 대장장이라는 걸 상기해 보면 키클롭스와 카메라는 이래저래 인연이 깊지 않나 싶다.  

점점 커지고 길어지는 망원렌즈를 두고 탐욕스런 관음증 운운했지만 키클롭스의 외모가 그의 전부가 아니듯이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고 해서 다 파파라치는 아닐 것이다.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 그 작은 나눔이 목숨을 살리는 생명줄이 되기도 한다.  

월간 <말>지와 <한겨례 신문>의 사진기자였던 임종진의 사진 에세이집 <천만 개의 사람꽃>에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전, 바그다드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사연이 실려 있다. 사진기를 든 그를 미국 정보요원으로 착각한 민병대에게 잡혀 꼼짝없이 처분만 기다리는 급박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연히 전에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서 선물했던 대원을 만나게 되고, 분위가가 반전되면서 다같이 “우리는 친구”가 된다.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의 인연’ -p.254) 

다른 사진기들이 이라크의 심각한 전시 상황을 찍기 바쁜 그때 그가 한 오래된 성당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또 일하는 청소부 노인을 찍지 않았다면, 또 그 사진을 선물하지 않았다면 이 사진집은 영원히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청소부 노인은 전쟁이 벌어지면 자신이 청소를 하고 하는 이 낡은 성당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목이 메지 않았을까. 그리고 랍비도 아니고, 비록 청소나 하는 잡부지만 신앙인으로 며칠 후면 총을 들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답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전시를 앞둔 이라크를 찾아온 외국의 수많은 사진기자들의 냉정하고 날카로운 시선이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것만 같아 곱게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 낯선 동양인 한 명이 관광객이 다 떠나고 없는 이때에 한가롭게 성당을 찾아와서 사진을 찍고 있다. 그리고 언제 찍었는지 자신에게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건넨다. 그 사진이 자신에게 생전의 마지막 모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짠하지만 총 대신 빗자루를 든 모습은 군인이 아닌 신앙인으로의 모습이라 아이들에게 물려줘도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해 주리라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다.  

노인은 이 고마운 사진을 준 남자의 웃는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본다. 동양인의 생김새란 게 엇비슷해 보이지만 그래도 꼭 기억했다가 좀 있다 있을 예배 시간에 그의 평화를 빌어야겠다는…. 임종진의 사진기 안에 당시 여느 사진기자처럼 총을 든 민병대의 굳은 얼굴만 잔뜩 있었다면 어땠을까. 다시 말해 사람에게서 꽃을 보려는 사람꽃 애정이 없었다면….  

사진집의 구성이 특이하다. 보통의 사진집이 나라별, 시기별로 구분하는 게 보통인데, 총 네 단락으로 나뉜 사람꽃은 상황과 장소가 뒤죽박죽이다. 한 장 건너로 미국의 스마트탄 오발로 4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라크 알 아마리야 방공호 폭발 현장에서 추모 연극 현장과 티베트 라싸 시각장애인학교의 개구쟁이 니마의 웃는 얼굴이 나온다. 역시 한 장 건너로 네팔 포카라 티베트 난민촌과 전라도 나주의 시골 마을이 등장한다. 국경, 상황, 장소 구분 따윈 의미가 없다는 투다. 듬성듬성 사람이 등장하지 않거나 흑백으로 찍은 사진도 보인다.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 성당의 엑소더스 이주센터 사진 밑에는 뜬금없이 연락처와 후원계좌가 등장한다. 생각해 보니 자유롭고자 국경을 넘나들며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는답시고, 정작 정리를 할 때는 르포니 풍경이니 인물이니 하는 기존의 잣대를 들이대는 게 웃기는 상황이지 싶다.  

“(코시안이) 튀기니 혼혈아니 하는 거칠고 불평등한 호칭을 대체하기 위한다며 나온 용어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구분의 잣대로 규정하는 것 같아 혼자 헛헛하게 품어봅니다. 그저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똑같은 우리 아이들일 뿐인데.” 

필리핀 어머니를 둔 수진, 민수, 선미 세 남매의 가을 운동회 풍경은 아직까지 아릿아릿 눈앞에 선하다. 뷰파인더를 볼 때 마음을 비울 것, 천만 개의 사람꽃을 보면서 배운 소중한 교훈이다. 

 

<인상깊은 구절> 

(네팔 카루샹 마을 중에서)
옷차림새도 다르고 카메리니 뭐니 이것저것 들고 있는 낯선 이방인에게 아이들은 자꾸 장난을 걸어왔습니다.
이놈들아, 내가 싫어할 줄 알고?
우와~ 하고 장난을 마주 겁니다.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 난 얼굴인데 마치 이게 웬 떡이냐는 표정입니다.
녀석들의 얼굴에 넋이 나가 함께 웃다가 먼발치에 인민을 교육한다는 한자어가 떡하니 학교 담장을 수놓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웬지 어색해서 주인 잃은 티베트 땅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제야 문득, 아이들의 목에 둘러진 붉은 띠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원래가 자신들의 것이 아니었을진대,
그저 남의 나라 일이라 하기에 왠지 가슴이 허허롭기만 합니다.      -p.214-


(함께 찾아가는 꿈 중에서)
고단한 이들과 숨소리를 나누는 것을 충만한 하루로 여기는 사람, 농담이든 진담이든 말 한마디 툭 건네고는 사람 좋은 너털웃음으로 갈무리를 하는 사람, 그리고 그와 더불어 웃음 짓는, 꿈을 찾아 이 땅에 온 사람들. 이들과 함께 당신의 웃음을 나누는 것은 어떠하실는지요.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83-6 녹양동 성당 엑소더스 이주센터 (우:480-824)
홈페이지 happylog.naver.com/kimjoohyuk.do 전화 031-878-6926 팩스 031-878-6927
후원계좌 농협 201019-55-003002 국민은행 235601-04-115813
              우리은행 1005-301-081853 지로 6406608
예금주 (재)천주교의정부교구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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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와 멘티 - 내 인생의 등대를 찾아 떠나는 여행
로이스 J. 자카리 지음, 장여경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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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했다고, 아이를 낳았다고 모두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CEO가 되었다고, 성공의 결과물이 크다고 모두가 멘토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연습과 공부가 필요하듯 멘토도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멘토와 멘티>에 실린  소개 글이 가슴을 친다. 그렇다. 결혼과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어른이 아니라는 말은 주변의 몇몇, 아니 사방팔방 수두룩한 꼬락서니들을 보아 백번 공감을 한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어른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멘토(mentor)의 자격을 갖추었는가의 여부이다.  

그리스신화에서 유래한 멘토란 ‘지혜롭고 믿을 만한 조언자(a wise and trusted advisor)라고 할 수 있고 멘티(mantee)는 조언을 받는 사람, 멘토링(mentoring)은 지도(coaching)하는 일을 포함하여 그와 관계된 모든 역할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즉, 멘토의 역할은 조언자(advisor), 후원인(sponsor), 후견인(Tutor), 옹호자(Adocata), 인도자(Guide)’라는 의미이다. 논어에서 "셋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과연 나는 스승 즉, 멘토의 자격이 있을까. 그러니까 난 어른일까.

그러나 주눅들 필요는 없다. 공자께서도 말씀하시길, 같이 걸어가는 셋 중 한 명은 분명 스승이 될 만하다고 했다. 이 구절은 누구들 배울 점이 없으랴, 는 의미로도 많이 쓰이지만 그보다는 배움과 가르침의 관계란 서로 늘 열려 있어야 한다는 유연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호혜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스승이 될 만한 자를 엉뚱한 곳에서 찾기 시작하면  평생을 스승만 찾다가 허비하게 될 일이다. 다시 말해 멘토란 훌륭한 멘티이기도 한 셈이다.

멘토와 멘티를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 실전 가이드북임을 내세운 <멘토와 멘티>에서도 가장 경계하는 점이 바로 멘토와 멘티 사이의 관계 설정이다. 지배하거나 혹은 매달리거나, 멘토와 멘티의 관계가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인 상황이 되면 반드시 그 관계는 깨지고 만다고 내내 경고를 한다. 내용, 일정 등 소프트웨어는 상황마다 천차만별이라도 하드웨어로 멘토와 멘티의 관계는 서로 똑같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하고 있다.

멘토링 전문가로 컨설팅 회사 대표이기도 한 저자 로이스 J. 자카리가 쓴 이 책의 장점은 관계를 처음 맺고 매듭짓는 모든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사례를 통해서 문제를 제시하고 예제와 연습을 통해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 있다. 다만 그 사례가 주로 회사 업무와 관련하여 ‘일적인 관계’에 집중된 경향은 있지만 예제와 연습에서 제시한 과정은 멘토와 멘티 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만하다.  

무엇보다 인간적인 유대, 오해, 불만족, 불의의 상황 등으로 자칫 흐지부지되기 쉬운 마무리 관계(어쩌면 가장 어려운 단계)에서 확실히 좋은 결과와 마무리를 이끌어낼 수 있을만한 팁과 지침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간과하기 쉬운 부분을 비중을 두어서 짚는다. 종료 단계가 “관계의 적극성 여부와 상관없이 성장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멘토와 멘티가 학습의 결과를 수확하고 전진할 수 있는 발전의 기회가 된다”는 점을 역설한다는 점에서‘멘토와 멘티의 여행은 이 책 안에서 시작되고 끝이 난다!’는 추천 평처럼 지나침이 없다.

마르크스, 케인즈, 하이에크에 이어 협동조합과 시민의 주체를 내세운 경제학자 칼 폴라니의 사상연대, 즉 호혜와 공정을 바탕으로 한 경제체제가 몇몇 이상주의자의 주장이나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대접받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도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형성하는 멘토와 멘티의 관계가 단순히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 아님을, 또 실용서인 <멘토와 멘티>를 읽기에 앞서 그 가치에 우선 주목해봄직하다.  

 

<인상깊은 구절> 

오늘날 "지혜는 권위적인 스승에서 복종하는 제자에게로 전해지지 않으며, 스승과 제자 모두 직장과 세상에 대해 좀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 견지하고 있는 학습관계에서 발견된다."
25P

일부 멘토는 개인 간의 궁합을 상당히 중시한다. 마치 그것이 멘토링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멘티와 멘토는 공감, 우정, 융화, 유대, 유사함을 멘토링 화학작용에 대한 리트머스 테스트로 간주하고 있다. (중략) 화학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성공적으로 멘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화학반응이 아닌 존중은 개개인이 효과적으로 참여하고 서로에게서 배움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198~1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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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 개벽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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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인 1860년 4월, 봉건사회의 사회경제적, 사상적 내부 모순이 서양의 종교와 무력에 의해 더욱 촉진될 즈음이었다. 위기 극복 능력을 상실한 유교와 불교에 반대하고 서학인 천주교에 대항하는 동학이 등장하였다.

철학자 김용옥이 쓴 <천명․개벽>은 임권택 감독의 1991년 영화 <개벽>의 원작으로 동학을 천명으로 알았던 사람들을 다룬 시나리오집이다. 전봉준과 최시형은 인내천의 새 세상을 같이 보았으나 가는 길이 달랐다. 전봉준이 반외세, 반봉건이라는 난국을, 동학을 매개 삼아 응축한 힘으로 타개해 나가고자 했다면 최시형은 종교적인 면을 강조하며 신원교조운동을 바탕으로 ‘멀리 뛰고자’ 했다.

최시형의 바람대로 인내천의 세상이 도래했다면 이후 일제와 6.25의 격정을 비켜갈 수 있었을까. 이제 와서 말할 수 있는 건, 전봉준과 최시형의 죽음 이후 기세를 소진한 동학은 그렇게 민중의 삶속에 단단히 뿌리내리지 못한 채로, ‘동학의 역사적 이해는 불행하게도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동학란”이라는 정치사적 사건의 틀’ 속에 갇혔다는 것이다.

미래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오는 것이며 ‘정보화시대’니 ‘제3의 물결’이니 하는 변화와 미래를 외부에서 찾는 의식은 식민지 의식의 전형이라는 신영복 교수의 지적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1세 교주 최수운의 죽음에 바라보며 “도술이 용하기 때문에 모가지가 안 떨어질 줄 알았다”던 백성들의 대화는 뜬소문에 홀릴 만큼 어수룩했다기보다는 믿을 수 없는 것, 믿지 못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극단의 믿음을 가져야만 견딜 수 있는 막장에 몰린 와중에 동학을 어둠을 깨면서 솟아오를 개벽으로, 정치적 사건으로 발화하길 바라면서 나온 순박함이다.

‘사물이 다 하늘님’이라는 순박한 믿음을 가지고 개벽(開闢)을 이끌어 내고자 한 해월 최시형의 방침은 개혁주의를 표방한 전봉준의 눈과 전봉준‘들’의 눈에 ‘민중의 현실을 외면한 관념의 사치주의자’로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허나 수없이 반복된 개혁의 바람이 이상주의적인 발상에서 멈추고 또 다른 억압의 형태로 변질될 때 ‘우리의 삶에 변화가 와야 되며, 우리의 생각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역설한 해월의 부르짖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봉준과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납접과 북접으로 갈려 대립된 상황에서, 동학의 와해를 가져올지 모를 기포(起包)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해월의 결단은 인간 평등과 회복을 중시한 동학사상이 품은 서글픈 운명의 결단이다. 그러나 교주로 모든 희생을 각오한 결단이야말로 동학이 말하는 천명(天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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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조용히!>를 리뷰해주세요
쉿, 조용히! - 풋내기 사서의 좌충우돌 도서관 일기
스콧 더글러스 지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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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너하임 공공 도서관 사서가 쓴 ‘좌충우돌 도서관 일기’의 서평을 쓰는 지금, 모니터 위에는 음식물 반입 금지, 유해사이트 접속 오락 시 퇴관 조치, 소음, 소란 주의, 그리고 마지막 줄에 기타 문의사항은 데스크에 문의하라는 주의사항이 행정9급 공무원 명의로 붙어 있다. 그렇다. 짐작하신대로 지금 여기는 우리 동네 도서관 디지털 정보실 17번 컴퓨터이다. 

요즘 같이 찌는 여름이면 난 시간이 날 때마다 집을 박차고 나와 도서관을 찾는다. 뭐, 책을 읽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기 위해-나처럼 1/3 정도는 다른 이유로 온 사람들이라고 짐작하지만- 모인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돌아가는 에어컨의 혜택을 보기 위해서이다. 더욱이 정보자료실에서 컴퓨터 한 대를 끼고 앉아 망중한을 즐길 수만 있다면 이런! 시간이 어떻게 후딱 지나가는지 모른다.  

PC방처럼 담배를 피우지도 않고, 흥분해서 “지금 쏴! 쏴!”하고 소리치는 덩치가 산만한 10대도 없고, 으슥한 곳에 미라처럼 큉하게 박혀서 도박사이트인지 음란사이트인지를 들여다 보는 이른바 페인도 없다. 하여, 이곳은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들르는 제2의 아지트면서, 에어컨 바람에 모니터 위를 살랑살랑 지나갈 때마다 문득 “정부에 세금을 좀 더 많이 내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유일한 장소인 것이다.  

그런데 <쉿, 조용히!>의 저자 스콧의 분류에 의하면, 나는 ‘공공컴퓨터로 종일 포르노를 보는 아저씨’와 ‘도서관에 가전제품을 가져와 충전하는 아줌마’ 사이의 어디쯤에 속한다! 이럴수가!  

주위에서 한창 온라인 강의를 받을 때 -혼자 기사 검색을 하고 있거나 채팅을 하고 있으면-가끔 광고처럼 뜨는 여자 연예인의 화보를 어쩔 수 없이  클릭을 하면서 옆 자리 눈치를 보긴 한다-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주위를 떠돌며,-감시라기보다는 뭐랄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알게 모르게 눈치를 주는 사서와 아르바이트 학생과 자원활동가의 압박이 있는 건 모르지 않지만, 가끔 노트북을 들고 오면서 덩달아 휴대폰을 충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난 사서를 비롯한 안내대 안쪽에 자리를 잡은 부류에게 적어도 골치를 주는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내 생각이 아주 착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애너하임과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수도권의 어디쯤 별 볼일 없는 그저 그런 중소 도시가-저자는 애너하임이 바로 미국에서 그런 도시라고 소개한다- 사이에는 1만Km 정도 거리 차이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지만, 이 책을 늘 나를 싸늘하게 노려보는 도서관 사서가 읽는 순간, 위에서 내가 속한다고 생각한 분류에 내가 속하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사서에 대한 내 모든 편견을 모조리 깨부수는 시니컬하다 못해 봉사정신이 투철해야 할 것 같은 도서관 근무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저자를 비롯한 책에서 언급한 수많은 동료들이 겪는 시시콜콜한 얘기는 꽤나 유쾌하다. (미국에서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자체를 아주 지겹고, 단순하며, 할 일 없는 이들이나 한다는 편견을 심어주기에, 대충 맞는 말이라고 본다만, 딱 좋은 책이다.) 정말 도서관 배경의 코미디 시트콤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 도서관 관련 도서-예를 들어 멜빌 듀이의 십진분류법 등등-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죽 치고 사는 노숙자, 게임이나 음란 사이트에 빠진 10대, 갈 데 없는 노인네들의 성가신 간섭, 약간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까지, 골치 아픈 성가신 일은 최대한 남에게 떠밀고 해결하는 대신 한 발 뒤에서 “지루한 도서관에서 가장 신나는 사건”을 보기에 몰두하며, 늘 도서관 지침을 내세우는 불량 공무원의 대표 격처럼 자신과 주위 동료들을 묘사했지만 적어도 가식이나 허위는 1g도 넣지 않고 솔직히 까발리고 있어서 밉지 않은 악동 일기를 보는 듯하다.

그렇다고 스콧이 무능한 사서라라는 얘기는 아니다. 당연히 저자 자신이 쓴 글이니 그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만, 재치가 넘치는 글만큼이나 도서관과 동네 주민들에 대한 애정이 여름에 먹어도 질리지 않는 도서관 근처 분식집 찐빵 속 단팥처럼 가득 배어난다.

아무튼 바라옵기는 도서관 사서계의 ‘우디 알렌’이라고 불릴 만한 스콧의 유쾌하면서도 솔직한 도서관 일기를 적어도 나를 어느 정도 꿰고 있는 우리 동네 도서관 사서들만은 읽지 않았으면 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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