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가끔씩 추락하는 것도 우리에게 좋은 일인지 모르지요.부서지지만 않는다면요. - P253

내 사건은 욕망의 권리에 관한 것이다. 작은 새들조차 몸을 떨게 만드는 신에 대한 것이다. - P135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은 욕망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그렇지만
나이든 사람들에게도 추한게 될 수 있지. 나와 가까웠던 모든 여자는 내게 내 자신에 대해서 가르쳐줬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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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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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작가 서보 머그더의 <도어>를 읽으면서 그녀와 동시대를 살았던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가 떠올랐다. 유대인이었던 리게티는 전쟁 중에 가족을 아우슈비츠에서 잃었고 헝가리 혁명 이후에는 작품을 검열받았다.  전쟁의 상흔을 기억하고 자신과 살아남은 이들을 위로하고자 그는 <진혼곡>을 썼다. 리게티가 흐느끼는 울음소리 가득한 곡으로 전쟁의 참상과 학살을 오늘날의 청중들에게 상기시키고자 했다면, 작가 서보 머그더는 제 2차 세계대전과 혁명 시기를 살아온 한 여성, 에메렌츠를 등장시켜 굴곡진 헝가리의 역사를 들려준다.

    

 

전업 작가인 화자 ‘나’는 글쓰기에 집중하기 위해 집안일을 할 사람이 필요했다. 13살 때부터 가정부로 일을 했던 에메렌츠는 지역의 많은 일을 도맡아하고 있었다. 환자들에게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동네 집집마다 쌓인 눈을 매일같이 쓴다. 이웃의 도움이 필요하면 곧장 달려가는 그녀지만, 정작 자신은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질색한다. 정치, 예술, 스포츠에는 관심이 없고 일기 예보만을 챙겨보는 특이한 성격을 가진 에메렌츠. 그녀가 돈을 모으는 목적은 가족의 석조무덤을 만드는 데 있다.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지만 고집불퉁이고 비밀이 많은 에메렌츠. 그녀는 집의 모든 문을 잠그고 창문을 나무판으로 가려 놓고 집안에 아무도 들이지 않는다. 도대체 문 뒤에 그녀는 무엇을 숨겨놓았을까, 라는 궁금증이 독자를 이끌어가는 축이 된다. 어릴 적, 에메렌츠의 쌍둥이 동생은 번개에 맞아 죽고 그녀의 엄마는 우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전쟁 중에 약혼자는 몸이 갈기갈기 찢겨 죽게 되는 등. 에메렌츠의 삶은 불행으로 가득하다. 여러 집에서 가정부 일을 하며 오로지 노동으로 삶을 살아온 에메렌는 화자인 ‘나’와 대립에 서있다. 에메렌츠가 빗자루질을 하는 여자였다면 ‘나’는 헝가리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나’는 지역 사람들과 왕래는 거의 없고 오로지 에메렌츠와 소통을 한다. 그런 그녀를 에메렌츠는 “자신의 손으로 해야 할 일을 수행하지 않고 타인이 그 일을 대신하는 인텔리겐차”로 비꼰다.

 

 

성격과 살아온 환경이 다른 둘이지만 점점 사이가 가까워진다. 그리고 에메렌츠는 '나'에게 문을 열고 방안을 보여준다. 전쟁의 잔해가 남아있는 방. 젊은이들을 피신시키고 청산가리를 마셨던 유대인 그로스만씨의 조부가 쓰러졌던 소파, 유대인의 가족에게 받은 식기와 가구, 그리고 아홉 마리의 고양이들.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고, 숨겨주고 싶어하는 전쟁의 과거. 에메렌츠는 자신의 물건을 작가에게 유산으로 남기고자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에메렌츠는 바이러스성 감기에 심하게 걸린다. 에메렌츠를 집밖으로 불러내기 위해 '나'는 그녀 몰래 의사와 작전을 짠다. 에메렌츠가 밖으로 나오면 따스하게 맞아주고 병원에 데려가 줘야 했지만. 유명한 작가가 된 '나'는 에메렌츠를 뒤로한 채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달려간다.

    

작가 서보 머그더는 제 2차 세계대전과 헝가리 혁명의 참화를 보며 이성 중심의 세상과 책임을 회피한 지식인들을 비판한다. 오롯이 자신의 노동으로 삶을 살아온 에메렌츠의 생애를 통해 작가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헝가리인들에게는 필요했던 사람은 지성인이 아닌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성녀가 아니었을까.

 

 

에메렌츠가 문 뒤에 보호하려고 했던 것은 전쟁의 희생자들의 유산였다. 화자는 에메렌츠를 자신의 집에 데리고 와서 살고 싶은 마음을 가졌으나, 결국 에메렌츠의 마음을 끝까지 헤아려 주지 못했다. 그래서 밤마다 구급차가 서있는 그녀의 집으로 달려가지 못한 채 철문에 갇힌 자신이 등장하는 악몽을 꾼다. 에메렌츠가 작가에게 물려주려 했던 가구는 너무 오래되어, 덮었던 천을 올리자마자 부서져 버린다.  에메렌츠가 남긴 유산이 가루로 변하여 없어졌듯이, 전쟁이 남긴 참상과 책임의식은 이제 우리에게도 사라져 버린걸까. 비참한 역사는 단지 매일 밤 우리를 괴롭히는 환영으로만 남게 되는 걸까. 서보 머그더는 과연 우리가 죄의식 없이 역사 앞에 설 수 있는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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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11-16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리게티의 <Grand Macabre>를 ‘아주 간혹‘ 듣습니다. 음반 내지를 잘 읽지 않는 습관 때문인지 리게티가 유대인인지는 몰랐습니다. 그래 그렇게 괴기스러운 유머를 깔 수 있었군요. 좋은 것 배웁니다.

청공 2020-11-17 13:31   좋아요 1 | URL
Falstaff님 덕분에! 시간을 잡고 영상으로 grand macabre 보려고 했으나, 끝까지 못보고 말았네요. 내용 따라가기가 넘 어렵네요 ㅠ 시간이 넉넉할때 다시
시도해보도록,시도가능할까나요? ㅠ
사전에 공부해가서 공연 실황 보면 딱일듯요. (Falstaff님 아이디와 Grand Macabre로 미루어보아, 오페라 팬이신가 봅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운명적으로 뒤엉겨 있으며, 예측 불가능한 감정인지를 나는 철저히 분석할 수 없었다.하지만 나는 열정 이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한 것도 아닌 그리스 문학을 알고 있었고, 죽음,사랑,애정이 맞잡힌 손과 그 손에 쥐고 있던 번득이는 우리 둘의 도끼도 알고 있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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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방 한쪽에 놓여있는 피아노 건반에 손을 안 댄지 오래 되었다. 피아노 옆을 지날 때마다 15여 년 전, '음악'이라는 언어를 가르쳐 줬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린다. 내게 들려줬던 클래식, 재즈 작곡가들의 기법, 함께 들었던 음반들, 썼다 지웠다 했던 음표 자국들. 그 당시의 장면들이 조각조각 떠올라 금방이라도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것만 같다. 

주변에 놓인 사물이 말을 걸어 이야기의 실타래가 풀리기도 한다.  어느 날, 리베카 솔닛 앞에 살구가 가득담긴 세 개의 상자가 도착한다. 어머니가 더 이상 살지 않는 집 옆, 살구나무에서 따온 것들이다.  솔닛은 살구를 침실 바닥에 쏟아놓고 오며가며 살구의 변화를 살핀다. 초록색 살구는 익어가고 익었던 살구는 썩어가고. 솔닛은 살구 더미를 마치 인생의 여러 단계로의 이동 같음을 느낀다. " 문드러진다는 건 뭔가가 썩고 있음을 암시하는 과정이지만 그건 또한 무언가가 자라는 과정, 자신의 바로 옆에 있는 것을 취한 다음 더 큰 환경으로 흩어질 준비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책에 파묻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솔닛은 분노와 불만으로 가득 찼던 어머니를 기억한다. 그녀는 그런 ‘어머니처럼 되지 않기’가 인생 목표였다. 하지만, 여러 해 전에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게 되면서 솔닛은 이야기를 잃어가는 노모를 붙들고 싶어한다. “어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잃어버렸다. 특히 나에 관한 이야기를.”


어머니 이야기로 시작한 솔닛은 자신의 회고록을 써내려간다. 독서, 글쓰기, 친구들, 여행했던 장소에 얽힌 경험담을 담담하고도  깊은 성찰이 담긴 목소리로 들려준다. 극지방 관련 전시에 글을 쓰면서 어린 시절 읽었던 메리 쉘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소환하고, 우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자살한 소방관이야기, 북극에서 사체를 먹는 이야기, 수술을 받으며 겪었던 두려움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삶의 단절과 죽음, 살아가는 일상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때 우리는 가끔 감정을 이입하여 마치 내 이야기인양 빠져 든다.  혁명가가 되기 전 체게바라가 만났던 나병 환자 이야기, 버마의 독재정권에 시위하는 승려들의 이야기를 통해 솔닛은 ‘감정이입’을 잘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경계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통을 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것이 마치 내 일인 것처럼 함께 아픔을 나누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연대의 첫 걸음이라고.


누가 말하느냐, 또 누가 듣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전하는 감정과 의미는 다를 것이다. 솔닛이 쓴 글로 인해 아이슬란드의 낯선 이들과 만남이 이어졌듯이, 그녀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이 가진 이야기는 무엇인가? 멀리 있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로 인해 가까워질 수 있을 테니. 한때 신선한 살구와도 같았던 우리의 과거는 이제 절여져서 유리병 안에 담겨졌다. 쓰지 않은 이야기는 사라지겠지만  당신이 글로 남긴다면 그 이야기는 언제든, 누구와 연결될 수 있다.

 

 

“글쓰기는 아무도 아닌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고 청중 앞에서 낭독할 때라도 여전히 부재하며 멀리 있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미지의,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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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1-09 0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공 님 글은 참 깔끔하고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며 쓴 글처럼 느껴져서 감정과잉인 제가 읽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늘 들어요. 오늘 글도 아주 좋네요!^^

청공 2020-11-11 07:20   좋아요 0 | URL
저는 감정과잉 글을 쓰고 싶어요.^^ 라로님처럼 풍성하고 유쾌하게요!
우리말 어휘가 많이 부족해서 저는 심심하게 쓰고 있답니다ㅠ열심히 모국어 배워 나가려고요~

다락방 2020-11-09 0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아노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다가 피아노를 갖게 되었을 때, 너무 좋아서 며칠동안 열심히 두드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피아노 의자에 앉는 횟수가 줄어들더라고요. 그러다 결국 한 쪽 구석에서 자리만 차지하게 되었고, 몇 년전에 팔아버렸어요.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지만 피아노에 대해서라면 그래서 마음 한 구석에 묘한 감정이 있고 또 가장 완벽한 악기가 아닌가,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참에 청공 님의 이 페이퍼 첫 문장은 저를 확 끌어들이네요.
저도 솔닛의 이 책을 좋아했어요.
잘 읽었습니다, 청공님.

청공 2020-12-17 19:25   좋아요 1 | URL
피아노는 방치되기 십상인 악기인가봅니다ㅎ
그쵸. 감정을 표현해 줘서 그런지 항상 미묘한 느낌이 흐르는 것 같아요.
제게 모든 것을? 내어주셨던 스승님이 생각이 나서, 피아노 볼때마다 맘이 아련아련하네요^^ 글 공감해주셔서 감사해요.
 

 자신이 속세의 모든 사람보다 못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대해, 사람들의 죄, 세상의 죄, 개개인의 죄, 이 모든 죄에 대해, 모든 사람 앞에서 스스로 죄가 있음을 깨달을 때, 그때야 비로소 우리의 하나됨이라는목적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왜나하면, 사랑하는 여러분, 알아두십시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이 땅의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대해 틀림없이죄가 있으며, 세상의 보편적인 죄에 관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이들과 모든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도 각자 개인적으로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각이야말로 수도사가 나아가야 할, 아울러 지상의 모든 사람이 나아가야 할 길의 월계관입니다. 

왜냐하면 수도사란 무언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지상의 모든 사람이 마땅히 되어야할 그런 사람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마음은 포만을 모르는 무한한 우주적인 사랑의 감격에 충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사랑으로써 온 세상을 얻을 수있고 자신의 눈물로써 세상의 죄악을 씻어버릴 힘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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