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배고픔과 질병, 가난에 찌든 끔찍한 얼굴을 보고 경악하고 있어요. 하지만 배고픔과 질병, 가난은 적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진짜 힘들이 드러나는 방식에 불과한 겁니다. 배고픔은 힘이 아닙니다. 물이 매개체인 것처럼 그것은 매개체에 불과해요. 고기가물 속에 살 듯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의 배고픔 속에서 살아가지요. 

진짜 힘들은 권력의 중심, 거기에서 일어나는 상호이해가 충돌하는 가운데서 생기는 것이죠. 당신은 당신의 이름이우리 명단에 들어 있을지 몰라 두려웠다고 얘기했었죠. 당신한테 거듭 말하지만, 맹세코 당신 이름은 거기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명단에는 거미줄의 한복판에 앉아 있는 거미들과 흡혈귀들만 들어 있어요. 일단 거미와 거미줄을 없애면 이와 같은 아이들은 해방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 전역의 어린이들이 지하실에서 나올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음식과 옷과 제대로 된 집이 생길 겁니다. 할 일도 많겠지요!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은행과 증권거래소, 내각이 있던 건물들을 부수는 겁니다. 다시는 세워지지 못하도록 완벽하게쓸어버리는 겁니다."

본다는 것은 단지 눈의 문제만은 아니지요. 그것은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있느냐의 문제지요.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은 쥐나 바퀴벌레조차도 살 수 없는 이 지하실의 비참한 물질적 상황일 뿐입니다. 당신은 굶어 죽어가는 세 아이들의 비참한 상황을 볼 뿐입니다.

 만약 당신이 조금만 더 기다린다면집으로 빵부스러기를 가져오기 위해 거리에서 몸을 파는 아이들의 어머니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찢어지게 가난한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당신은 이런 사람들이이런 식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힘들은 보지 못하고 있어요!
당신이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힘들입니다!"

 이제 하느님이 말을 해야 할 때다. 이제 하느님은 더 이상 침묵하고 있을 수 없다. 아이를 타락에 빠뜨리는것은 하느님에 대한 폭력이다. 활 모양으로 휘었다가 용수철처럼 닫히는 그가 만든 덫, 하느님을 잡기 위한 덫.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안다. 동시에 그는 하느님과누가 더 교활한지 싸우는 동안, 제 자신도 아니고 어쩌면 제정신도 아니다. 그는 자신과 하느님이 서로의 둘레를 빙글빙글 도는 동안 어딘가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 시간도 정지한 채 지켜보고 있다. 시간이 정지되어 있다. 추락하기 직전, 모든 것은 정지되어 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내 영혼 속의 자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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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수레를 끌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지. 말은 맞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말은 자기가 맞을 때 도망가지 못하도록 자기를 묶어놓은것이 바로 수레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말씀 마세요."
그녀가 속삭인다.

그는 그가 제시하는 세상에 대한 견해를 그녀가 온 마음으로 거부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녀는 선을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녀의 믿음은 잠정적인 것이고 탄력이 없다. 그는 그녀를 전혀 가엾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러시아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 말을 그녀에게 강요하고 그녀의 얼굴을 그말 속에 비비고 싶다. 네가 러시아에서 고운 꽃이 될 여유는없다. 러시아에서는 넌 우엉이나 민들레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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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하게도 그는 이제부터자신이 그녀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할 만한어떤 행동이나, 그녀가 그의 행복에 영향을 끼치게 될지도모른다는 희망으로 의기양양하게 만들 행동은 절대 안 하도록 특별히 주의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만일 그녀가 그런희망을 품게 되었다면, 그것을 확인시켜 주거나 좌절시키는 데, 마지막 날 자신의 행동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계획을 충실히 실천하느라, 그는 토요일 내내 그녀에게 채 열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은 단 둘이서만 반시간가량을 보냈음에도 아주 성실하게 독서에만 몰두한 채, 그녀를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 P87


"제 손가락은,"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이 피아노 위에서 능란하게 움직이지 못해요, 다른 많은 여성들은 그렇게하던데 말이에요. 제 손가락에는 그 여성들 같은 힘이나날렵함도 없고, 또 그만한 표현력도 없어요. 하지만 전 그게 항상 제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거든요. 제가 열심히 연습하지 않았으니까요. 제 손가락이 다른 아가씨들의손가락처럼 탁월한 연주를 할 능력이 없다고는 생각하지않는다고요."

다아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당신은 시간을 훨씬 더 유용하게 사용했던 거지요. 당신의 연주를 듣는 특전을 얻은 사람치고 누구도 그연주에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당신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지 않고, 나도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거죠."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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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작품은 물결의 너울거림에 몸을 맡기게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특징이다. 개인의 취향이나 취미, 의심이나 비판, 위화감이나 저항 등의 감정을 일단젖혀두고, 말하자면 몰주체 몰아의 경지로 나아가 거기에 몸을 두고 크나큰 물결의 너울거림에 몸을 맡기는 것, 그것이 바그너의 음악에서 감명과 도취를 얻는 최상의 방법이다. 또 그런 태도만큼 파시즘에 바람직한 것도 없으리라.

‘예술과 정치는 별개다‘ 라는 말을 받아들여야 할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대와 사상을 깊이 담지 못한 범용한 예술이라면 오히려 어떤정치체제하에서도 편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그너의 예술이 빼어난 것은, 그것이 이 두 가지를 완벽할 정도로 융합해놓았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서 고민도 시작된다.
- P71

"베트남 반전 데모에 참가하자"는 권유를 받았을 때도 ‘나는 너희들과는 입장이 다르다"며 거절했다. 정치활동에 참가하고 싶은 의욕은 남 못지않았지만 내게있어서의 그것은 일본인의 그것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자에게 마음이 끌릴 때마다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식민지배자의 자식과 피지배자의 자식이 행복하게사귈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만약 결혼해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전혀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재일조선인이라는 사실이 갖는 의미를 상대 여성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언제나 안절부절했다. 그러나 사실은 나 자신도 그 복잡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왜 모든 것이 이렇게 어색하고 딱딱한가. 아무리 해도 더 자연스럽게 살 수는없는 걸까. 그 원인이 나 자신이라는 외곬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자의식이너무 강한 것 같은 나 자신을 애처로워하고 미워했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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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나 남자나 다 똑같이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다른 성에대해 근원적이고 공평무사한, 그리고 절대적으로 공정한 의견이란 결코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우리가남자이건 아니면 여자이건, 우리가 냉정한 사람이건, 아니면감상적인 사람이건, 우리가 젊은이건 늙어가고 있건, 어떤 경우에라도 삶이란 그림자의 행렬일 뿐인데, 그런데 왜 이다지도 우리는 그 그림자를 열렬히 껴안는지, 그리고 그들이 떨어져 나가 그림자가 되는 것을 그렇게 고통에 차서 바라보는지.

그리고 왜, 만일 이것이, 이것보다 더한 것이 진실이라면, 왜우리는 아직도 창문 모퉁이에 서서 이 갑작스러운 영상, 즉의자에 앉아 있는 그 젊은이가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보다 더실재적이고 가장 견고하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것에 이다지도 놀라는 것인가? 왜 진정으로? 왜냐하면 이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거면서도.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보는 방식이다. 또한 우리의 사랑의 조건이기도 하고.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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