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의 작품은 물결의 너울거림에 몸을 맡기게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특징이다. 개인의 취향이나 취미, 의심이나 비판, 위화감이나 저항 등의 감정을 일단젖혀두고, 말하자면 몰주체 몰아의 경지로 나아가 거기에 몸을 두고 크나큰 물결의 너울거림에 몸을 맡기는 것, 그것이 바그너의 음악에서 감명과 도취를 얻는 최상의 방법이다. 또 그런 태도만큼 파시즘에 바람직한 것도 없으리라.
‘예술과 정치는 별개다‘ 라는 말을 받아들여야 할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대와 사상을 깊이 담지 못한 범용한 예술이라면 오히려 어떤정치체제하에서도 편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그너의 예술이 빼어난 것은, 그것이 이 두 가지를 완벽할 정도로 융합해놓았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서 고민도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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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반전 데모에 참가하자"는 권유를 받았을 때도 ‘나는 너희들과는 입장이 다르다"며 거절했다. 정치활동에 참가하고 싶은 의욕은 남 못지않았지만 내게있어서의 그것은 일본인의 그것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자에게 마음이 끌릴 때마다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식민지배자의 자식과 피지배자의 자식이 행복하게사귈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만약 결혼해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전혀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재일조선인이라는 사실이 갖는 의미를 상대 여성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언제나 안절부절했다. 그러나 사실은 나 자신도 그 복잡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왜 모든 것이 이렇게 어색하고 딱딱한가. 아무리 해도 더 자연스럽게 살 수는없는 걸까. 그 원인이 나 자신이라는 외곬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자의식이너무 강한 것 같은 나 자신을 애처로워하고 미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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