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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ytimes.com/2026/01/30/opinion/david-brooks-leaving-columnist.html?unlocked_article_code=1.IlA.sAIr.lCeGY485xMjZ&smid=url-share

데이비드 브룩스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직을 떠나며 고별 칼럼을 내었다.

그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한다. 문화가 우선적으로 변하고 정치와 같은 다른 분야를 이끈다고 한다.

하지만 바빙크가 지적하듯 문화는 종교에 기반한다. 종교가 변하면 문화가 변한다. (물론 브룩스도 슬쩍 '영적'인 것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문화는 종교적 문화라고 볼 수도 있다.) 종교가 세속화된 지금, 무엇보다 종교가 성경을 버리고 '탈 진리'화되어버린 지금. 문화에 기대를 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종교가 탈 진리화되었는데 문화와 정치가 탈 진리화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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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음모론에 기반한 적들과 우리의 이분법적 세계관이며 

(친일파, 검찰 음모론 vs 부정선거 중국 음모론)

둘 다 법원의 판단을 무시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념이 아니라 아이코닉한 인물을 추종한다는 결정적 공통점까지.

그들의 머릿 속은 검증된 텍스트가 아닌 유튜브로 채워져있기도 하다.

스스로를 애국시민 또는 민주시민으로 자처하며 자위질도 한다.


서로가 서로를 상종 못할 족속으로 비난하지만 사실 그 둘은 본질상 동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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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Barth and Charlotte von Kirschbaum: My Response – Athanasian Reformed 번역


칼 바르트와 샬로테 폰 키르슈바움: 나의 반응

최근 저는 크리스티아네 티츠가 칼 바르트에 대해 쓴 '칼 바르트와 샬로테 폰 키르슈바움'이라는 논문을 읽고 개인적으로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바르트의 신학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비서'였던 키르슈바움이 단순한 비서 이상의 연인 관계였다는 소문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 이야기는 늘 근거 없는 소문에 불과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 사실을 확실히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티츠의 논문은 바르트와 키르슈바움이 주고받은 서신들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이 편지들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에 바르트의 자녀들이 세상에 공개하기로 결심한 것들입니다. 편지를 통해 드러난 진실은 키르슈바움과 바르트가 서로 사랑했다는 것, 그 이상으로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바르트는 아내 넬리와 다섯 아이가 있는 자신의 집으로 그녀를 데려와 함께 살기까지 했습니다. 바르트는 키르슈바움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이로 인해 아내 넬리와의 관계는 이혼 직전까지 치달았습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당연히 파경을 맞았겠지만, 아마도 아이들을 위해서였는지 넬리는 그 견딜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바르트 곁에 남았습니다. 티츠의 논문은 제가 여기서 짧게 언급한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제가 적은 몇 줄만으로도 충분히 경악할 만한 일입니다.


이 사실이 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소문이 사실과 현실로 바뀌는 순간을 마주하며, 저는 티츠의 논문을 읽는 내내 신체적인 거부 반응까지 일어났습니다. 말 그대로 머리가 어지러웠고 속이 메스꺼웠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온라인에서 바르트 신학을 열렬히 지지해 온 사람이었기에, 이 소식은 실망이라는 단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허탈함을 안겨주었습니다. 바르트와 키르슈바움의 사랑 관계가 사실로 입증된 이 상황을 정리하며, 저는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는 생각을 떠올려 봅니다. 물론 이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읽는 모든 신학자는 매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결함 많고 복잡한 인간들입니다.


하지만 바르트의 경우는 다릅니다. 처음에는 그와 키르슈바움도 자신들의 관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국 그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합리화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신학적이고 성서적인 개념들을 동원해 이를 정당화했습니다. 그 결과 바르트는 키르슈바움을 아내와 다섯 자녀가 있는 집으로 들이는 파렴치한 결정을 내릴 만큼 뻔뻔해졌습니다. 이것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게다가 키르슈바움은 실제로 바르트의 비서이자 연구원, 학술 조교로서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이제 제가 그의 '교회교의학'이나 다른 저작들을 읽을 때마다, 이 모든 글이 키르슈바움과의 관계 속에서 쓰였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의 아이디어들은 서재와 여러 장소에서 그녀와 대화하며 다듬어지고 자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당분간 바르트로부터 거리를 두기로 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더 깊이 숙고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며, 어쩌면 이번 일이 바르트로부터 영원히 돌아서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는 사도 바울의 경고가 떠오릅니다. 바르트의 삶에서 제가 본 것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정절과 결혼의 침소를 지키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아내 넬리와 다섯 아이를 향한 사랑은 없었습니다. 오직 아내와 아이들보다 자신과 키르슈바움을 우선시한 자기애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이 편지들을 공개한 그의 두 자녀는 당시의 상황을 가리켜 "이치에 맞지 않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그 고통을 매우 절제해서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저에게 이 말은 무겁게 다가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며, 끊임없는 개인적인 투쟁과 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바르트가 선택한 삶의 방식은 죄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굴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싸우지 않았고, 자발적이고 의도적으로 그 상황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신학이나 다른 신학적 범주들을 끌어와 그 모든 것을 합리화했습니다. 다음은 바르트가 키르슈바움에게 직접 보낸 편지는 아니지만, 자신의 상황에 대해 다른 이들에게 남긴 두 구절입니다.

"나라는 사람은 결혼이라는 현실과 내 사랑이라는 현실 중 어느 하나도 부정할 수 없었고 지금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내가 기혼자이며, 아버지이자 할아버지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두 사실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처음에 잠시 망설인 후, 어느 한 쪽과 헤어지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또한 1947년 그가 알고 지내던 한 목사에게 쓴 글입니다.

"내 인생에서 주어진 가장 큰 지상의 축복이라는 바로 그 사실이, 동시에 내 지상의 삶에 대한 가장 강력한 심판이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나는 어느 쪽으로도 피하지 못한 채 하나님의 눈앞에 서 있습니다. [. . .] 어쩌면 나의 신학 안에서 발견되는 경험적 요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삶의 현장이라는 요소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다른 상황이었다면 빠졌을지도 모를 율법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매우 구체적인 방식으로 금지당해 왔습니다."

지금 저는 무척 슬픕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글을 쓰는 저에게 화를 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 이 문제로 큰 마음의 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의 이 반응은 조회수를 늘리려는 자극적인 블로그 포스팅이 아니라 진심 어린 토로입니다. 과거에 저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칼 바르트를 "칼 삼촌"이라 부르며 애정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의 관점은 바뀌었습니다. 현재로서는 더 이상 양심상 바르트의 신학을 옹호하거나 전파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토마스 토런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를 접하는 것뿐일 것 같습니다.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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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여러가지 말이 나왔던 인물이지만 그래도 2018년에만 해도 자식한테 교회 물려준다고 하면 도끼로 자기를 찍으라고 하던 사람이 어쩌다가 저렇게 망가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나는 정당한 절차와 실질만 지킨다면 자녀가 후임 목사가 되면 오히려 좋다는 입장이다. 신앙의 계승의 차원에서) 


이는 남포교회 뿐만 아니라 합신 교단, 한국 교회 전체에 오물을 사정없이 뿌린 것이다.

정말이지 이 나라 교회에는 어른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모두 전멸했다.

한국교회에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진 것만 같다...


한국교회는 차별금지법 같은 것으로 파괴되지 않는다... 스스로 자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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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교회 지하 예배당은 대법원 판결로 불법 건축물로 확정이 된 상태이다.

그런데도 사랑의교회는 지자체의 원상회복 명령에 불응하며 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그 이유는 원상회복 과정에서 사고 발생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1심은 그럼에도 불법건축물이기 때문에 철거하고 원상회복 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2심은 사고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에 불법건축물이라고 하더라도 원상회복은 불가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2심 결론이 나오자 사랑의교회는 홈페이지 공지로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셨고, 하나님의 은혜다'라고 주장했다. 불법 건축이지만 너무 크게 사고를 쳐서 돌이키기 어렵다는 내용의 판결에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리는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뜻하는 기도는 무엇이고 은혜는 무엇인지... 그들의 심리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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