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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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이 과연 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것일까요? 이 책의 표지에 소개하기로는 이 소설은 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 그러한 이해는 이 소설에 대한 심각한 오해입니다. 오히려 저는 이 소설이 겨냥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이데올로기적인 삶 일반이라고 생각해요. 이 점을 해명하고 저 나름대로의 독해를 제시하는 것이 이 글의 주된 목적입니다.

 

벤이라는 존재를 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아마도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점은 바로 벤이라는 존재의 비현실성일 것입니다. 그런 아이는 전문가인 브래트 박사도 이전에는 본 적이 없는 특이한 존재이죠. 그런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은 그리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이데올로기에도 벤과 같은 특이한 괴물들을 가정할 수 있거든요. 헤리엇과 데이비드가 거리를 두는 ’68 이데올로기의 경우, 그것을 철저히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존재, 예컨데 성교로 전염되는 괴물과 같은 바이러스를 상정할 수가 있죠. (더군다나 이미 HIV라는 현실의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책을 이데올로기 그리고 괴물에 관한 이야기로 독해했습니다. 데이비드와 해리엇이 건축하고자 한 상징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세계가 이야기의 한 축이고 그것을 붕괴시키는 벤이라는 괴물의 침입, 곧 실재의 침입이 또 하나의 축이죠. (여기서 상징적, 실재적이라는 단어는 라캉적인 의미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데이비드와 해리엇이 구축하고자 했던 세계는 삐그덕거렸습니다. 혼외 정사를 거부하고, 산아 제한이나 약물도 거부하는 세계 안에서 행복을 구현하려고 했지만, 데이비드는 그것을 위해 시작부터 자신이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친부의 재정지원을 얻어야만 했지요. 마찬가지로 해리엇은 자신들의 계획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친모 도로시의 도움을 얻어야만 했습니다. 이데올로기의 순결함을 더럽히는일종의 대체 보충이라고 할까요? 이러한 대체 보충의 예는 어느 이데올로기에서나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컨데 단일민족임을 자부하고 외국인을 배척하는 순혈주의적 민족주의의 태도는 사실은 순혈주의의 불가능성을, 한민족이란  여러 인종의 혼종이라는 사실을 은폐하는 것 아닐까요?

 

결국 이러저러한 곤경을 헤쳐나가 그들은 4번째 아이까지 낳는데 성공했습니다. 고풍스러운 저택을 장만했고, 절기가 되면 친척들과 친구들의 가족들이 모여 단란한 담소를 나누죠. 그렇지만 그들의 모습에는 어쩐지 불안함이 내비쳐집니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 (그리고 그에 따르는 재정 문제)가 있으며, 가족들 간의 담소 속에 담겨있는 날선 비난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아기를 안고서 자신들의 만들어나갈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며 미소를 짓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들의 세계에 벤이 던져집니다. 벤의 출생은 처음부터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급작스러운 출현이지요. 벤이라는 괴물과 함께 그들의 세계는 비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애시당초 그들의 가치관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마저 벌어집니다. 바로 아기를 유기하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라도 부부는 자신들의 세계를 지켜내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 행위 자체야말로 해리엇에게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모순이었고, 그 자체로 증상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벤은 회귀하여 그들의 세계를 해체해버리고 말죠.

 

실재는 언어화 될 수 없는 무엇이라고 정의되지요.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적 세계는 그것이 설명할 수 없는 실재를 대면하는 순간 비틀거리기 시작합니다. 벤이 바로 그러한 경우입니다. 부부는 벤을 신이 보낸 존재, 또는 우연한 돌연변이 등으로 설명하고자 애쓰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실재란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상태로 우리의 세계가 변화될 때까지 고집스럽게 세계의 바깥, 그리고 속에 박혀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 역시 다양한 병리적 증상들을 겪고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증상은 무엇인가가 억압될 때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억압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우리의 세계는 과연 그것을 말할 수가, 언어화할 수가 있을까요? 제가 이 책을 읽으며 떠올리게 된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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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1-11-02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리뷰입니다^^

자꾸때리다 2011-11-02 23:3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2011-11-04 0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꾸때리다 2011-11-04 22:30   좋아요 0 | URL
아이유를 모르시나요? 당연히 저 아니죠. 저는 남자입니다.ㅋㅋㅋ

2011-11-04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